“이 버들피리로 불모 뽀뽀하는 거 아이가”
“이 버들피리로 불모 뽀뽀하는 거 아이가”
  • 이종찬 기자
  • 승인 2003.03.13 1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갯버들'

 
   
  ^^^▲ 노오란 꽃술을 내민 갯버들
ⓒ 우리꽃 자생화^^^
 
 

"뻐꾹~ 뻐꾹~ "
"니 저기 홈포 앞 도랑에 가봤더나?"
"와?"
"오요강생이 따 묵을 때가 된 거 같아서".
"뻐꾹~ 뻐꾹~ 뻑뻐꾹~ 뻐국~"
"급하기는. 어제 내가 보리밭 메로 갔다가 보이 인자 노오란 꽃술이 마악 피고 있더라."
"그라모 다음 주나 되모 오요강생이로 따묵을 수가 잇것네."
"모르지."
"뻐꾹~ 뻐꾹~ 뻐꾹~"


마을 앞 듬정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비늘처럼 생긴 솔방울이 조롱조롱 매달린 소나무가 우거진 마당뫼에서는 가끔 장끼가 호오오 호오오~ 홰를 치며 푸더덕 날아올랐다. 연초록 하늘에선 종달새가 한 점 티끌처럼 박혀 진종일 지저귀고 있었다.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 올랐다. 졸음처럼 노곤하게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는 독새풀과 보리가 시퍼렇게 자라나는 우리 마을 들판을 휘감고, 뻐꾸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우는 듬정산을 마구 휘감은 채 마치 투명뱀처럼 하늘로 스물스물 기어올랐다. 비음산과 대암산도 아지랑이에게 휘감긴 채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마을 여기 저기에서 노오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앞산가새에서는 창꽃이 그 가시나가 메롱 하면서 내미는 연분홍 입술처럼 꽃망울을 삐쭘히 내밀고 있다. 바람에 매화꽃이 방앗간에서 쏟아져 내리는 그 하얀 쌀처럼 쏟아지고 있다. 세상에, 우리 마을 곳곳이 그대로 꽃밭이었다.

"아나."
"옴마야~"
"가시나 놀래기는. 이기 벌갱이(벌레)가 아이라 맛있는 오요강생이다. 아나"
"놀래라. 내는 처음에 니가 낼로 놀릴라꼬 그라는 줄 알았다 아이가. 옴마야 정말 맛있것다."
"요새 물이 올라가 살이 통통하게 찠다 아이가. 한번 묵어봐라. 달착지근한 물이 처벅철벅하게 나온다카이."


우리는 갯버들을 '오요강생이' 라고 불렀다. 우리 마을에서는 우리 마을 사람들만이쓰는 독특한 말이 많았다. 뚝새풀은 '독새풀' 이라 불렀고, 진달래꽃은 '창꽃', 철쭉은 '개창꽃', 꿩은 '꽁', 병아리는 '삐갱이', 뱀은 '구리' 등등. 처음에 누가 그런 이름을 지어서 불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3월이 오면 새칫골 들판을 휘돌아 우리 마을 앞을 지나는 냇가에는 갯버들이 노오란 꽃술을 피워냈다. 처음에 우리는 마치 쥐털처럼 털이 숭숭한 갯버들에서 점처럼 조그마하게 솟아나는 노오란 그것이 갯버들 꽃인지 몰랐다. 그저 안방에 매달린 메주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갯버들에서도 그렇게 노오란 곰팡이 같은 것이 피어나는 것인 줄 알았다.

 

 
   
  ^^^^^^▲ 노오란 꽃술을 내민 갯버들
ⓒ 우리꽃 자생화^^^^^^
 
 


우리 마을 냇가에는 갯버들이 무척 많았다. 어떤 것은 아예 머리를 물 속에 처박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갯버들은 잎사귀가 나기 전에 마치 쥐털처럼 덮힌 손가락 한마디만한 눈에서 노오란 꽃술이 먼저 나왔다. 그때가 되면 갯버들의 털이 점점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갯버들에서 마치 애벌레처럼 털이 삐쭉삐쭉하게 삐져 나오면서 깨알 같이 작은 몽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는 갯버들을 따 먹을 때가 아니었다. 갯버들은 그 노오란 꽃이 지고 나면 이내 깨알 같이 촘촘하게 붙은 그 몽오리가 제법 통실통실하게 물이 차오른다. 그때가 갯버들을 수확하는 적기였다.

"우와! 지긴다 지기(죽여)"
"뭐가 지긴다카노?"
"이 봐라! 천지삐까리가 오요강생이 아이가."


우리는 그 살이 통실통실하게 찐 갯버들을 주머니 가득 따서 입술이 시퍼렇게 물들도록 맛나게 먹었다. 갯버들은 입에 넣고 씹으면 이내 달착지근한 물이 나온다. 그리고 풀내음 비슷하면서도 제법 향긋한 내음이 입안 가득 감돌았다.

하지만 갯버들도 시기를 놓치면 따먹을 수가 없었다.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이내 갯버들에서 허연 털 같은 것이 피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되면 우리들은 "오요강생이가 다 샜다" 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학교를 파하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냇가에 나가 주머니 불룩하게 갯버들을 땄다.

"삑! 삑! 삐익~ 삐이이이~"
"어이? 니 꺼는 우째 그래 잘 불어지노?"
"버들피리로 만드는 것도 기술이 있어야 안되나. 그라이 내 맨치로 요렇게 뼉다구를 잘 추리가꼬 구멍을 잘 내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는기라."
"에이~ 내가 하는 거는 이상하게 자꾸 껍데기가 째진다카이."
"마디가 있는 데로 살살 잘 틀어야 뼉다구가 쑤욱 추려질 꺼 아이가."
"삑! 삑! 삐삐삑! 삑! 삑! 삐이이이~"


갯버들은 아무리 따먹어도 배가 부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적당히 먹고 나면 입에서 풀내음이 나면서 약간 역겨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갯버들 가지를 낫으로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었다. 버들피리를 만드는 것은 보리피리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버들피리를 만들 때에는 우선 물이 잘 오른 갯버들 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야 한다. 그리고 마디가 있는 부분을 살짝 잡고 갯버들 껍질을 살살 비틀면 똑, 하는 소리가 나면서 마디와 껍질이 분리된다. 그렇게 마디마다 껍질을 살살 비튼 뒤 껍질 속에 있는 나무를 슬쩍 밀어내면 하얀 마디가 쏘옥 빠져 나온다.

그 다음에는 속이 텅 빈 껍질에 일정한 크기로 구멍을 내기도 하고, 껍질 윗부분을 일정하게 세로로 가른다. 또 버들피리를 부는 부분도 일정한 크기로 겉껍질을 벗겨내면 파아란 속껍질이 나온다. 그러면 그 파란 겉껍질을 이빨로 자근자근 깨문다. 이때 갯버들 껍질에서 제법 쓴 맛이 느껴진다.

버들피리는 구멍을 잘못 내거나 홈을 잘못 새기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또 입으로 부는 부분을 잘못 만들어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잘 만든 버들피리는 새소리처럼 제법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또 버들피리 자체의 굵기와 길이, 구멍 수와 일자 홈 길이에 따라서 제 각각 다른 소리가 난다.

"아나."
"그거는 또 뭐꼬?"
"버들피리다. 이거는 오늘 내가 만든 거 중에 제일 소리가 잘 나는 기다."
"그걸 낼로 주모 니는 우짜고?"
"내는 또 만들모 된다 아이가."
"근데 니가 불던 거로 내가 불라카이 기분이 좀 이상하다."
"와?"
"이 버들피리로 내가 불모 니캉 내캉 간접 뽀뽀하는 거 아이가."




 


핫이슈포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성재영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온종림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