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가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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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가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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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죽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심볼과 사타구니는 개미들에 의해 보기 흉하게 망가져 있었다. 흥건하게 흘러내린 피 비린내가 역겨웠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축 늘어져 있었다. 쇠고랑에 매달린 그의 팔목은 뼈가 허옇게 드러나 피딱지가 엉겨붙어있었고, 사타구니에 달라붙어 꾸물거리고 있는 개미들은 피를 뒤집어써 번들거리며 몸 전체에 퍼져있었다. 개미들의 한바탕 축제였다.

“…… 죽었어.”

태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손목을 쇠고랑에서 풀어내야 하는데 개미들 때문에 손을 대기가 끔찍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진은 목장갑을 낀 손으로 이 회장의 손목을 쇠고랑에서 풀었다. 이미 뻣뻣하게 굳어버린 시체는 통나무처럼 풀썩 넘어졌다. 진희는 그런 태진의 행동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태진이 진희를 보며 물었다.

“이 개미들을 다 어떡하지?”
“죽여야죠.”
“죽여? 이 많은 걸 무슨 방법으로?”

태진은 난감했다. 개미들이 온몸에 붙어 있는 상태로 사체를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수 많은 개미들을 한 마리씩 일일이 잡아 죽일 수도 없었다.

“태워 죽이면 돼요.”
“태워?”

태진은 진희의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가스 토치 램프로 그슬리면 돼요.”

그랬다.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 거 같았다. 강한 불길이 한 번씩만 스쳐도 개미들은 타죽을 거였다.

“이 회장을 개미로 죽일 때부터 생각한 거야?”
“아뇨. 순간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태진은 진희의 빠른 두뇌 회전에 내심 감탄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일을 추진함에 있어 자신보다 한 단계 앞선다고 생각했다.

태진은 철물점에서 사온 가스 토치 램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피를 뒤집어 쓰고 꾸물거리고 있는 개미들을 그슬리기 시작했다. 가스불이 닿기가 무섭게 개미들은 새까맣게 타 오그라 들거나 굴러떨어졌다. 태진은 그렇게 타죽은 개미들을 보면서 진저리가 처졌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붙어 있는 개미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 회장의 겨드랑이와 심볼에 나 있는 털을 태워야 했다. 불길이 털에 닿자 아주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모직물을 태울 때 나는 역겨운 냄새와 똑같았다. 속이 메슥껍기는 했지만, 그 많은 개미들을 죽이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쉬웠다.

“이제 종이 장미를 가슴에 붙여야겠죠?”

진희는, 태진이 개미들을 다 처리한 걸 지켜보고, 감정이라곤 좁쌀만큼도 배어 있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송이는 선생님이 거세요.”

진희의 손에는 목걸이처럼 만든 두 송이의 종이 장미가 들려있었다. 검은 종이 장미를 목에 두 송이 걸고 있는 이 회장의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느 순간, 영감이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아 서늘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태진은 서둘러 지하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진희와 함께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된 내용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편집까지 마치는데는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비디오 테이프를 복사해야겠지요?”
“그래야지.”

태진은 비디오 테이프를 고속 복사기에 넣었다. 이 회장의 고문 과정과 죽음을 담은 테이프가 빠른 속도로 복사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테이프를 만질 때 지문이 남을까 봐 면장갑을 끼고 했다. 복사된 테이프가 수북하게 쌓여갔다.

이제 복사된 테이프는 각 방송국 뉴스팀과 주요 일간지 편집국에 보내질 것이다. 진희는 복사된 테이프들을 미리 만들어 놓은 봉투에 넣고 컴퓨터로 뽑은 주소를 붙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마치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숙련공들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하고 있었다. 태진은 테이프가 복사되는 동안 이따금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후 세시 무렵에야 모든 작업이 끝났다.

“테이프를 선생님과 제가 나누어서 보내요.”
“?”
“한 우체국에서 한꺼번에 다 보내면 직원이 얼굴을 기억할 수도 있어요.”
“!”
“번거롭더라도 한 우체국에서 몇 개씩만 보내요.”

맞는 말이었다. 만약에 진희가 말하지 않았으면, 태진은 보나마나 한꺼번에 부쳤을 것이다. 역시 진희는 자신보다 치밀한 면이 있었다.

“지금 나가서 등기 속달로 부치면, 내일쯤에는 모두 도착하겠죠?”
“그러겠지.”

태진은 진희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먼저 불을 붙여주고, 자신의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두 사람이 느긋하게 뿜어대는 담배 연기가 물에 풀려가는 잉크처럼 허공에 천천히 풀어지고 있었다.

창 밖은 밤새도록 무서운 기세로 내리던 폭우가 그치고, 제법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이었다.

거울 앞에 선 두 사람은 변장을 하기 시작했다. 변장을 마치고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다. 진희의 모습이 영 다른 사람처럼 변해있었다. 그것은 태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불안해 두 사람은 선글러스를 쓰고 모자까지 푹 눌러썼다.

두 사람은 테이프 봉투를 반 씩 나누어 각자의 차에 실었다. 태진은 어쩜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게임의 시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차에 오른 진희가 차창 너머로 태진을 보며 싱긋 웃었다. 태진도 그녀를 향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먼저 출발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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