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계승했으므로 그것을 충족할 명칭을 찾는다면 그냥 ‘우리역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초의 국명으로 하여 ‘구리후예사’로 명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남선, 백남운, 이청원, 이병도, 전석담, 손진태(1949)까지 ‘조선사’라고 했다. 그런데 1950년부터 ‘국사’로 표현하다가 진단학회에서 ‘한국사’라고 하여 큰 틀에서 ‘조선사’가 ‘한국사’로 변경되고 말았다. ‘조선사’라 한 것은 이씨 조선의 후기이고 ‘한국사’라 칭한 것은 대한민국이 재건된 이후 완성된 것이다. 이는 대륙을 호령했던 대륙의 역사를 버리고 한반도로 쪼그라든 반도사관이다.
고대, 상고, 상대, 중세 근세 현대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현대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유구한 역사를 계승했다면 고대, 중세, 근세, 현대로 구분할 필요가 없고 왕조로 구분한 것처럼 그대로 표현하면 될 것이다. 사서에서 세계 최초의 국가가 ‘구리’이듯 아시아역사는 우리역사에서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족보를 가첩하듯 하지 말고 정통적인 족보를 만들어야 한다. 최초 국가의 국호 ‘구리(九黎)후예’를 하나로 하는 역사를 수용하고 과거가 미래로 연결되도록 연구하고 우리는 인도해야 할 것이다.
[정노천의 우리역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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