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방물장수를 기다리는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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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방물장수를 기다리는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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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마음따라] 경북 문경 '꽃갯펄'

 
   
  ^^^▲ 문경 금백포 강변
ⓒ 경상북도^^^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 내 마음 속 깊숙히 달겨드는 이 허전함을 달랠 수가 있을까. 바다로 갈까? 아니. 그럼 섬으로? 아니. 산? 아니. 계곡? 아니. 그러면 어디로 가지? 인적 없는 강변? 그래. 허전함을 달래고 봄을 맞이하기에는 잔잔한 강변이 꼭 어울리지. 게다가 고운 모래밭 옆에 지금은 버려진 옛 나루터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지.

그래. 이렇게 앉아서 마음이 추워 떨고 있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따사로운 봄을 찾아 떠나야겠다. 기왕 나서는 길에 길동무가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는데. 특히 가고자하는 그 지역을 햇살처럼 환히 잘 아는 그런 동무 말이야. 마당발을 놔 뒀다가 어디에 쓸 건데? 전화를 해. 어디로? 그쪽 역사와 지리를 잘 아는 그 친구 있잖아.

간다. 고향이 문경이라는 손 아래 길동무 한 명을 데불고 간다. 술 핑계 대며 아직까지도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나. 자가용에다 길동무에다 운전수까지 하겠다며 나서는 후배를 바라보면 나는 염치가 너무 없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대부분 혼자서 버스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낯 선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말을 걸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 가는 그곳에 얽힌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까지 잘 알고 있는 길동무까지 있으니, 그동안 간단한 자료만 들고 혼자 혹은 낯 선 사람들과 회오리바람처럼 역사의 언저리만 빙빙 돌던 그때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살포시 다가와 슬며시 현기증 일게 하는 저 봄빛처럼 말이다.

점촌에 도착한 나는 언뜻 눈에 띄는 슈퍼에 들어가 소주 두 병과 오징어 두 마리를 샀다. 왜냐하면 이목리라는 마을에서는 먹을 것을 마음대로 구입하기가 어려우니 미리 사가지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영순면에 있는 관계자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스렌지의 파란 불 위에서 순식간에 몸을 비트는 오징어 굽는 냄새가 몹시 고소하다.

"꽃갯펄이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 꽃이 만발한 갯펄이라는 그런 뜻이지요."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부를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은데?"
"지금이야 초봄이니까 그렇지요. 진달래 필 때 한번 와서 보면 그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 질 겁니다."
"그리고 갯펄이라는 말은 바다에서 쓰는 말이 아닌가?"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래서 갯벌이라 하지 않고 갯펄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이크! 이건 농담입니다."

금백포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경북 문경시 영순면 이목리이다. 이름이 다소 색다르게 느껴지는 금백포는 금포와 백포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금포와 백포는 또 뭔가? 금포는 이목리 마을 앞을 흐르는 강에 검은 바위가 있어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검은 바위인데 왜 또 금포인가.

길동무는 웃으며 말한다. 아마도 처음에는 거무스럼한 바위가 있는 물가라는 뜻에서 한글과 한자가 겹쳐진 이름인 '검포' 라고 부르다가 뒤에 '금포'라고 불리워졌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백포라는 이름이 이목리 마을 앞을 흐르는 그 물가에 있는 약간 희끄무레한 바위의 이름이라고 하니깐. 하지만 금포가 '검포'에서 비롯되었다는 근거는 확실치가 않다.

"근데 그 검은 바위와 흰 바위은 어디 있지?"
"차암! 형님도 순진하기는. 저기 절벽 같이 생긴 곳에 나란히 있는 저 바위가 금포, 백포가 아닙니까. 바위가 검고 희다고 해서 진짜 숯처럼 까맣고 눈처럼 하얀 줄 알았습니까?"
"근데 나루터는?"
"시인의 탁월한 영감으로 한번 찾아 보십시오. 어디쯤 나루터가 있었겠는가를."

 

 
   
  ^^^▲ 고운 모래 위에 새겨진 저 발자국의 주인은?
ⓒ 경상북도^^^
 
 

꽃갯펄이란 '꽃개'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꽃개'의 다른 이름이라. 그렇다면 '꽃개'가 한자어란 말인가, 아니면 꽃갯펄의 준말이란 말인가. 하긴 영남지역의 말들을 살펴보면 그런 단어들이 제법 있다. 할머니를 할매, 할아버지를 할배, 고구마를 고매, 아주머니를 아지메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대충 이해가 되기는 된다.

지금은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지만 한때 이 금포와 백포 사이에는 제법 큰 나루터가 있었단다. 또한 불과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부산에서 소금이나 새우젓 등을 실은 배가 이곳에서 나는 곡식과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수없이 왕래했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방물장수들이 떼지어 몰려 들었으며, 남도의 문물이 가장 빨리 전해지던 곳이 바로 금백포라고 한다.

"저 정도 깊이면 바지를 걷고 그냥 건너도 되겠다. 그런데 이렇게 얕은 물에 무슨 배가 다녔다는 말이지?"
"큰일 날 소리.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보여도 꽤 깊습니다. 그러니까 낚시꾼들이 몰려오지요. 보기에는 별 거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저 곳에서 씨알 굵은 잉어와 메기도 낚이고 어떤 때는 뱀장어와 은어가 올라올 때도 있답니다."
"근데 예로부터 물이 너무 맑은 곳에는 물고기가 잘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형님도 참! 아직까지 마시지도 않은 술이 벌써 취기가 올라오는 모양이지요"

쥐색 눈빛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진달래의 마른 나무가지 끝에 매달린 꽃망울에선 제법 파아란 물기가 언뜻언뜻 내비친다. 강물에 촐싹이는 은빛 모래가 너무나 고와 발자국을 새기기조차 아깝다. 이 모래가 만약 떡고물이라면 한입 볼이 미어터지게 집어넣고 싶다. 어디선가 방물장수의 노랫가락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봄이 왔네~ 봄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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