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새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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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새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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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폭우는 끈질기게 쏟아지고 있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이 회장 집에 전화를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서투른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보나마나 그의 집에는 형사들이 대기하고 있고, 전화기에는 발신지 추적 장치가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정원의 나무들이 강한 바람에 머리채를 휘어잡힌 채 쩔쩔매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쏠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바람이 당장에라도 나무들의 머리채를 통째로 뽑아버릴 기세로 불고 있었다. 마음을 심난하게 하는 날씨였다.

‘뭘 하기에 이렇게 올라오지 않을까?’

지하실에 내려간 진희가 한 시간이 넘도록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태진은 지하실 모니터를 켰다.

세상에!

태진은 급하게 볼륨을 올렸다. 이 회장의 비명이 거실을 가득 메웠다. 그는 발가벗겨진 채로 악을 쓰고 있었다. 진희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롭게 담배를 물고 그런 이 회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태진은 지하실을 향해 나는듯이 뛰었다.

태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발가벗겨진 이 회장의 사타구니에 뭔가 꾸물거리는 벌레들이 뻘겋게 붙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벌레라고 생각했던 것은 피에 젖은 개미 떼였다. 번데기처럼 오그라든 그의 심볼과 사타구니 여기저기에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에 젖어, 불빛에 반사되어 번들거리는 개미들이 맹렬하게 그의 심볼과 사타구니의 살점을 뜯어 뭉개고 있었다. 태진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이게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진희를 향해 소리쳤다.

“보고도 모르세요?”
“뭐야!”
“악마의 최후를 감상하는 중이잖아요.”
“하지만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태진은 너무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일은 분명히 제가 책임을 진다고 했을 텐데요.”

진희의 목소리는 느리면서 차분했다. 아니, 차분하다 못해 싸늘함마저 주었다.

“제, 제발, 나 좀 살려주시오.”

이 회장은 태진을 보고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애원했다. 그의 감기다시피 한 눈을 본 순간, 태진은 심한 갈등을 느꼈다. 어차피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납치하긴 했지만, 최소한 이런 방법은 아니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개미에게 뜯겨 죽게 하다니.

“당신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하라는 대로 다 하리다. 그러니 제발 이 개미들은 좀 떼어주시오. 제발, 제발…….”
“시끄러워, 이 색마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진희가 채찍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볼이 찢겨 주르르 피가 흘러내렸다.

“한 번만 더 그 더러운 입으로 목숨을 구걸하면 입을 불태
워 버릴 거야!”

진희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얼음 조각들을 내뱉는 것 같았다. 옆에서 듣는 자신이 소름이 쫙 끼칠 지경이었다. 그 순간, 진희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굶주림 끝에 피 맛을 본 야수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 개미들은 뭐냐고?”

도대체 이 수많은 불개미들은 어디서 난 것이며, 어째서 그것들은 이 회장의 사타구니에만 새까맣게 붙어 있을까. 이 회장이 고통을 참지 못해 질러대는 비명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더 흐르고, 피에 젖은 개미들의 번들거리는 모습이 괴기스럽기조차 했다. 피가 흘러 허벅지를 타고 발까지 적시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개미들도 흘러내리는 피를 따라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 색마의 죽어가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비디오에 담아 만천하에 공개할 거예요. 물론 가족들에게도 보내고.”
“…….”

태진은 할 말을 잃었다.

진희의 어디에 이런 광마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일까. 태진은 새삼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이 개미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잖아.”

“이 선생님 모르게 유리 어항에 불개미들을 길렀어요. 살아 있는 먹이 사냥을 가르치려고, 살아 있는 벌레며 쥐 등을 넣어주었고요.”

태진은 기가 막혔다.

“난 못 봤는데.”
“지하실 구석에서 몰래 길렀으니 볼 수 없었겠지요.”
“…… 꼭 이런 방법으로 죽여야해?”

태진은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대는 이 회장과 진희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엄청난 불개미 떼가 맹렬하게 그의 살 속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그의 심볼 모습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대로 몇 시간만 지나면 그의 심볼은 개미 떼에게 뜯겨 걸레처럼 너덜거릴 터였다. 태진은 피비린내와 피에 젖어 번들거리는, 꼬물거리는 개미 떼 때문에 구역질과 함께 신물이 넘어왔다. 뒤집어진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담배를 연거푸 피워 물어야만 했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면,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 간 색마를 보고는 누구도 함부로 더러운 짓을 할 생각은 못 하겠지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지나친 방법이라고 생각 안 해?”
“색마들에겐 악마의 방법이 필요한 거예요.”
“솔직히 난 진희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보면서요?”

진희는 호기심을 나타냈다.

“무서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후후후, 선생님도 소영 씨를 울릴 생각이세요?”

진희는 그렇게 말해 놓고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어깨까지 들썩이며 키들키들 웃었다.

“농담이라도 그런 소린 하지 마!”

태진은 기분이 몹시 상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농담이 아니에요.”

진희는 정색을 했다.

“그럼 내가 만의 하나, 소영이를 울리면 이렇게 매달겠다는 얘기야?”
“글, 쎄요.”

진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피하는 걸 보니 정말인 모양이구만?”

태진도 정색을 하며 따지듯 물었다.

“적어도 선생님만은 여자들을 울려서는 안 되겠지요. 전 선생님을 믿어요. 그리고 저에게 종이 장미 접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선생님이에요. 색마들에 대한 테러를 먼저 시작한 사람도 선생님이고요. 벌써 다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진희는 생고무처럼 질기고 유들유들한 표정으로 태진을 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늙은이가 불개미 떼에 뜯겨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 태진 자신이나 진희가 무섭기조차했다. 인간의 심성에는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왜 저 영감의 사타구니와 심볼에만 불개미
들이 붙어 있지?”

태진은 아까부터 그것이 궁금했다.

“알고 싶으세요?”
“궁금해.”
“간단해요. 꿀 한 숟가락이면 되니까.”
“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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