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부모를 명당에 모시려는 것은 조선조의 효행(孝行)사상에서 나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꼭 효도에만 성의를 다 하는 것도 아니고 보면 “저 잘되려고 유골 메고 다니지, 부모 위해 그러는 놈 어디 있어”라고 자주 이장하는 풍습을 비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즉 부모의 시신을 명당에 모시려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라기보다 명당의 지기를 받아 후손의 발복을 원해서라는 비난인 것이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리로 귀착되고 만다.
그 진의야 어떻든 효심이 지극했던 우리 선대들의 풍수지리설에 대한 믿음은 요즘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례가 많다.
역시 1917년 경성일보 11월 20일자 보도는 이색적이다.
평안남도 순천군 사인면(舍人面) 용리(龍里)에 사는 김익추 씨(당시 54세) 선조의 묘 가까이에 차인호(車燐鎬)라는 사람이 그의 할아버지 묘를 17년 전에 썻다. 그래서 김씨의 후손에게 화를 입혔다고 생각, 문제의 묘를 파헤쳐 버렸다. 때문에 차씨로부터 고발당해 관가에 잡혀 가서 징역 10개월을 살고 나왔다. 그러나 김씨는 다시 그 묘를 파 버렸다. 역시 잡혀간 그는 정상이 참작되어 이번에는 곤장 60대를 맞고 나왔다.
그런데 차씨는 파헤쳐진 묘를 다시 보수하면서 그 전보다 배나 크게 봉분을 만드는 등 주위를 크게 단장해 놓았다. 이를 본 김씨는 화가 치밀어 그해 11월 7일 밤에 차씨의 묘를 완전히 파 버린 뒤 유골을 들어다 부근의 하천에다 뿌려 버렸다. 그리고 김씨는 다음날 만주 헌병대에 찾아가 자수했다. 그런데 자수한 진술서의 내용이 기발하다.
“효자 김익추는 차인호의 할아버지 묘를 발굴, 그 유골을 인근의 하천에 던져 버렸다. 국법을 어긴 일은 참으로 변명할 여지는 없으나 나는 나의 선조 및 후세들을 위해 체면을 세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선대들은 이렇게 풍수지리설을 믿고 행동에 옮겼다. ‘풍수’를 도외시하면서 우리 민중을, 그 뿌리를 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겠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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