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죽어서도 남의 명당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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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죽어서도 남의 명당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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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 ⓒ뉴스타운

일반인의 묘 자리를 빼앗아 임금의 능을 쓰기는 광릉도 마찬가지다. 광릉은 조선조 7대 세조와 그의 비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현주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면 부평리 산99의 2.

세조는 단종으로부터 왕자리도 빼앗았지만 무덤 자리도 빼앗은 결과가 된다.

세조는 1468년 9월7일 왕세자(예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튿날인 8일 죽자 당시 풍양현 직동의 주엽산에 자좌오향(정남)에 자리해 묻혔다. 세조는 죽기 전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라”고 유언해 그대로 했다. 이 역시 풍수지리설의 육탈사상을 믿었기 때문이다.

영순군 이박과 영의정 이준 등이 묘 자리는 밀성균 이침, 정흠지의 묘소를 가서보고 산세가 이이하고 빼어 능침에 매우 합당하다고 고하자 정흠지의 묘를 옮기게 하고 능으로 정했다. 이때 정흠지 묘 밑에 있던 유견의 무덤도 옮기게 했다는 기록이 조선조실록에 실려 있다. 또한 ‘인조반정’으로 잘 알려진 인조의 왕비 한씨를 처음 장사 지냈던 파주의 운천리에서도 쫓겨난 묘들이 많았다.

한씨의 능자리는 영의정 윤방, 우의정 홍서봉과 지관 이연창 등 여러 지관들이 상의해 정했는데 부윤을 지냈던 이유 등의 묘를 비롯, 능 내에 았는 고분 756 기를 다른 장소로 옮겼다. 무연고가 667기였고, 연고자가 있는 묘는 89기였다. 이렇게 거창하게 역사를 한 왕비의 무덤에 특히 당시 최고 명사라는 지관들이 잡은 묘 자리가 충(蟲)염, 즉 뱀이나 쥐, 개구리 등 온갖 벌레가 들어 있는 흉지라는 이의가 96년이 지난 후에야 제기됐다. 그래서 인조와 합장할 것을 정한 뒤 능을 팠지만 거론되었던 충염은 없었다. 그러나 예정대로 이장, 인조와 합장을 했다.

인조의 왕릉 또한 그가 죽기 전 본인이 한씨의 능 오른쪽에 묘좌유향(卯坐酉向, 정동에서 정서방향)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백성들의 부역을 덜어 주기 위해 생존시 미리 돌일과 정자각 등을 지어 두었다가 왕위에 오른 지 27년 만인 55세의 나이로 죽자 이곳에 묻혔다.

그러자 영조 7년 인조가 죽은 지 82년 만인 1731년에 총호사 홍치중과 공조판서 권이진 및 여러 지사들이 교하현(현 파주군)의 객사 뒤에 좋은 자리가 있다고 왕에게 고해 현재의 장릉(長陵)인 탄현면 갈현리에 이장, 왕비 한씨와 합장하게 된 것이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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