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지식인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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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지식인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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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민주주의를 만든 놈들을 탓해야

종합 대학에서 총장은 물론이고 주요 보직을 두루 지낸 원로 교수와 자리를 함께 했다. 원로 교수는 평생 교육에 종사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한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외국 나들이를 위해 공항을 출입하면 어디선가 제자들이 나타나서 VIP처럼 모셔주고, 세무서에 가도 알아서 세금을 깎아준다고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그 노교수는 자리를 함께 하는 동안 한심하게 돌아가는 현실 정치 비판과 세태 한탄과 무능한 공무원과 타락한 국민성을 신랄하게 성토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내가 제자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든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말이나 반성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최고 엘리트 과정을 평생 걸어온 지식인이라면 일말의 책임감은 있어야 했다. 책임은커녕 최소한의 사회적 양심조차 없었기에 아예 생각이나 두뇌가 없는 저능아처럼 보였다.

그래도 학생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교수라고 했을 때는 이들에게 배웠을 젊은이들의 수준과 한국의 미래가 더욱 암담하게 느껴졌다. 만남이 계속 되었지만 항상 내가 밥과 차를 샀다. 물론 그 이전이나 그 전전에도 언제나 내가 밥과 차를 샀다. 단 한 번도 얻어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내가 나이도 어리고, 경제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계속 나만 대접했다.

그 교수는 나에게 항상 성공해서 대접받는 당연한 입장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학교에 다닌 이유, 교수가 된 동기를 보았을 때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거나 함께 나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남에게 베풀려고 생각했다면 아예 배우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교수는 유구한 민주주의도, 대단한 학문도, 박사학위도 이미 만들어진 것을 타고난 자질과 약간의 노력으로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 교수를 보면서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라도 잃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럼에도 도저히 공경할 수가 없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모든 방향에서 공경을 생각했지만 정답은 마찬가지였다.

현실 사회를 존중해서라도 그 교수를 공경하는 것을 도리로 여겼지만 내 스스로의 양심과 표정과 행동까지 속이는 위선자가 되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사회적 전통인지 개인적 미덕인지를 기어코 따라서 대면이라도 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고 수년을 버텼다. 하지만 도리보다 결국에는 휜 것은 휜 것이고 검은 것은 검다는 사실과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교수보다 내가 더 사악하고 이중적인 위선자라는 양심의 가책까지 감당할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는 그 교수를 만나지 않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 교수를 마지막 만나던 날 그는 나에게 “어쨌든 한국에서는 S대를 나와야 하겠데.”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이 S대 출신이라면 장관을 지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교수의 아들이 S대를 가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그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유명 대학의 원로 교수는 자신이 졸업한 모교 대학과, 거의 한 평생 몸담았던 직장(대학)과, s대가 아닌 일반 대학을 졸업한 수많은 국민들과, 자신이 가르쳐낸 수많은 제자들과, s대를 가지 못한 자기 자식까지 단 한마디 말로 내팽개쳐버릴 정도의 의식수준이었다. 이런 교수에게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거나, 찾아다닌 내가 잘못이었다는 아쉬움만 남겨졌다.

나는 그에게 배운 것을 모두 토해냈으며 수없이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한국에서 배운 졸업장과 국적까지 반납하고 싶은 생각으로 치를 떨었다. 그리고 그간에 보고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버려놓고 다시 하나씩 정리해서 주워담고 바꾸고 버리는데 몇 년이 걸렸다.

모든 과정을 지내놓고 보니 이런 말조차 공허한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내 스스로도 변함이 없는 현실에 치를 떨고 있다.

우리 국민성을 계속 탓할 바에는 최초에 민주주의를 만든 놈들, 민주주의를 한국에 가져다 준 놈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혼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태초에 우주와 세상과 인간을 만든 이(놈)들을 비난하는 것이 후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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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 들 2005-12-28 01:52:54
나두 선생질(?) 하는 친구가 몇 있는데 , 그 친구들 공통점이 지 돈으로 친구들 에게 밥 사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점입니다. 딱 한번! 70km 떨어진 학교를 찿아 가니 수제비 어죽 한그릇 사드그만, 유명 하다 어쩌구 하면서...그 친구 안지 50 수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 으로 .... 모두가 학부형 으로 보이는 난치병에 시달리는 환자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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