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설로 만든 것은 풍수설로 해석해야
풍수설로 만든 것은 풍수설로 해석해야
  • 김호년 선생
  • 승인 2015.11.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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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 ⓒ뉴스타운

풍수지리설이 미신이냐 아니냐 하는 단순논리의 문제는 풍수지리설의 다양성과 미신의 의미 등 여러 문제와 연관되므로 일단 뒤로 미루자.

우선 풍수지리설은 우리 선대들이 오늘의 과학만큼이나 믿고 생활해왔다는 역사상의 사실적 현상으로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적인 것과 우리의 뿌리를 거론하는 현시점에서는 선대들이 생활한 시대의 풍수지리설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왕조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풍수지리설에 의해 자리 잡았고, 그 이론에 맞게 건설했다. 풍수로 시작하고 풍수가 원인이 되어 이뤄진 것은 풍수로 풀어야 정확한 이해와 해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비록 일제에 의해 헐렸다 복원되고 그 위치가 약간 바뀌긴 했지만 광화문 앞의 해태상을 어느 외국 조각연구가가 한국에 와서 거리의 환경조각 예술로만 관찰한다면 그는 끝까지 그 해태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경복궁에서 조산(朝山)에 해당하는 관악산이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뾰족뾰족한 불의 형상이어서 그 화기(火氣)를 제압하기 위한 풍수적 의미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 동대문의 옹성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전사연구가가 동대문의 바깥쪽에 쌓은 옹성을 전투적 개념으로 파악하고 조선시대의 방어전술을 상상해 보았자 헛수고만 하게 된다. 이 또한 실전(實戰)용이 아니라 풍수지리설에 따라 허약한 동쪽을 보강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쌓은 성벽이기 때문이다.

동대문의 이음인 흥인지문(興仁之門)도 풍수지리설로 작명하였다. 오행설로 풀이하면 인(仁)은 동쪽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대문 이름만 유난히 흥인지문이라고 넉자로 한 이유도 풍수에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은 선대들은 풍수지리설로 보았을 때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보다 좌청룡인 낙산이, 즉 동쪽이 허(虛)했기 때문에 동인(東人=일본인)들에게 당했다고 생각, 문 이름에 지(之)자를 보강한 것이다.

지(之)자는 현(玄)자와 같이 그 모양이 꾸불꾸불해서 마치 산맥의 형상을 닮았으므로 실제 인조(人造)산으로 보강하기에는 너무 벅차 상징적인 풍수문자로 보강한 것이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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