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의 출토 상황 및 특징 을보면 제2피트 제5패층 아래에서 출토되었으며, 현 해수면보다 2.0m 가량 낮은 곳이다. 제5패층은 비봉리유적의 가장 아래층으로서 신석기시대의 초창기층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출토 당시 배는 동서 방향으로 놓여져 있으며, 강쪽인 남쪽으로 약간기울어져서 출토되었다.
남아 있는 최대길이 3m10㎝, 최대폭 60㎝, 두께 2.0~5.0㎝, 깊이 약 20㎝이다. 선수부와 선미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좁아지고 있는 동쪽 부분이 수부로 추정된다.
최대폭을 보이는 부분은 선미부분으로 선수부를 향해 차츰 좁아진다. 선미부 일부는 훼손되어 다 남아 있지 않으며, 일부분은 선체방향으로 파손되어 약간씩 겹쳐져 있다. 깊이도 선미부분이 가장 깊은 것으로 추정된다.
선미부의 상태를 감안하면 원래의 선체는 4m를 넘을 것으로 보여 대단히 세장한 편이다. 군데군데에 제작시에 불에 태워 가공의 효율성을 높인 것으로 보이는 焦痕(불에 그을려 가공한 흔적)이 관찰되기도 한다.
이것은 통나무를 그을려 석기로 깎기한 흔적으로 돌자귀로 깎기한 후에 이를 다시 磨石 등으로 調整하는 일반적인 공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되면, 배의 재료는 소나무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배로는 안압지 배(8세기), 완도선과 십이동파도선(11세기), 안좌도선(13~14세기), 달리도선(14세기) 등으로 모두 역사시대의 것이다.
비봉리 배는 선사시대의 배로는 최초의 것이며, 아직 과학적인 연대 측정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연대도 고고학적인 층위로 보아 지금부터 약 8,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알려진 도리하마〔鳥浜〕1호나 이키리키〔伊木力〕유적 출토품 보다도 약 2,000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창녕군과 발굴단에서는 이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유적의 보존 방안을 협의 중에 있으며, 극히 일부분만 발굴조사한 상황이므로 유적의 추가 발굴을 위하여 국비지원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이 유적 일대는 지난 2003년 ‘매미’태풍 때 완전 침수된 지역으로, 양배수장의 건설도 시급한 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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