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기둥 - 2
소금 기둥 - 2
  • 이영철 소설가
  • 승인 2005.08.02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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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잠을 그렇게 깊이 자요?”

진희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집에는 언제 들어온 것일까. 점심 먹고 소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어느 새 창 밖엔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진희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기지개를 켜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어제 밤 늦게야 서울에 도착해 헤어졌었다.

“저녁 먹어야죠?”
“글쎄, 별로 생각이 없는데.”
“그럼 좀 있다 외식해요.”
“그럴까.”

진희의 옷차림이 화사했다. 봄은 여인의 립스틱 색깔과 옷에서부터 온다고 한 어느 광고 카피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어땠어?”

아침에 진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오늘부터 한국그룹 이 회장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진희는 하루 종일 이 회장 뒷조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일 것이다.

“생각보다 만만찮을 거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왜?”
“옆에 항상 비서들이 붙어 다녀요.”
“당연하지. 명색이 재벌 총순데. 황제가 따로 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벌 총수가 황제지. 따라서 황제 옆에 신하들이 따르는 것은 기본이고.”

태진은 이미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의 총수가 혼자서 돌아다니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틈은 있을 거 같아요. 그도 사람인데 혼자만의 사생활은 분명히 있겠죠. 설마 화장실이나 침실에까지 비서들을 달고 다니겠어요?”
“그건 그래.”

맞는 말이었다. 황제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할때가 분명 있을 터였다.

“오늘 뜻밖의 소득을 얻었어요.”
“뭔데?”
“이 회장의 단골 이발소를 알아냈어요.”
“이발소?”

정말 뜻밖의 정보였다.

“L호텔 지하에 있는 이발손데, 몸이 피곤할 때면 자주 찾는데요. 적어도 일 주일에 한 번 이상은. 그곳에 갈 때는 비서도 동행하지 않고 운전기사와 단 둘이만 간대요.”
“어떻게 알아냈어?”
“오전 내내 이 회장 뒤를 따라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려 하는데, 비서도 없이 운전기사와 단 둘이 어딘가로 가기에 무조건 따라갔더니…….”
“그랬더니?”

태진은 진희의 말에, 식어버린 인스턴트 커피의 끝맛처럼 개운하지 않게 남아 있던 잠의 여운이 싹 가셨다.

“L호텔로 가더니 지하 주차장을 통해 이발소로 들어가지 않겠어요? 시간을 쟀더니 정확히 두 시간 만에 나왔어요. 운전기사는 그 시간에 운전사 대기실에서 다른 기사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었고요.”
“내가 궁금한 것은, 이 회장이 그곳에 단골로 드나드는 걸 어떻게 알아냈냐는 거야.”

이 회장이 우연히 이발소에 갈 수도 있는데 진희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다 방법이 있지요.”
“글쎄, 그 방법이 뭐냐니까?”

어쩌면 이 회장을 납치하는 일이 의외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장을 좀 했어요. 경제지 기자로.”
“기자로?”

그 발상은 너무 뜻밖이었다.

진희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진희는 이 회장과 운전기사가 떠난 뒤, 이발소 아가씨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며 호텔 화장실에서 변장을 했다. 만의 하나 훗날에 대비해서. 그리고 퇴근하는 아가씨 중 한 사람에게 접근해, 자신을 경제지 기자라고 밝히고, 물어 볼 것이 있으니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런 다음, 이번 호에 이만덕 회장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싣는데 협조를 부탁한다고 하고, 보다 고급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취재비라며 1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그러자 아가씨는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졌다.

아가씨 말에 의하면, 이 회장은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이나 피곤할 때면 이발소를 찾았다. 이발소 주인은 이 회장이 오면 밀실로 안내했다. 그곳은 귀빈만을 모시는 별도의 공간이었다. 머무르는 시간은 대략 두 시간 정도인데, 이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안마만 받을 때도 있었다. 이 회장은 이발소의 큰 고객으로 아가씨들 사이에 인기가 대단했다. 팁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회장이 나타나면 서로 안마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가씨의 선택 권한은 이발소 주인의 재량에 속했다.

“아가씨는 절대로 기사화하지 말라며 이 회장에 대한 비밀
스러운 부분까지 말했어요.”

이 회장은 손버릇이 고약했다.

아가씨한테서 안마를 받는 동안 손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가씨의 가슴과 허벅지와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은 기본이고, 은밀한 곳까지 더듬곤 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으면, 백만원 짜리 수표를 쥐어주고는, 퇴근 후 어느 호텔 몇 호실로 오라고 유혹했다. 거의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이 회장의 후한 팁에 거절하지 못했다. 취재에 응한 아가씨도 호텔방에서 이 회장과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 회장은 한번 찾은 아가씨는 다시는 찾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여자와든 한 번 이상은 섹스를 안 한다 그
거지?”
“그런 셈이죠.”
“아주 고상한 취미를 가지셨구만. 그렇다면, 이발소에 아가씨들이 많은 것도 아닐 테고, 어떻게 감당을 해내지?”
“그러니까 아가씨들이 수시로 바뀌는 거죠. 아가씨 얘기를 듣고보니, 그곳에 드나드는 VIP란 작자들은 거의 그런 부류라는 거예요. 돈은 많고,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남아돌아, 섹스를 위해 이발한다는 핑계로 드나드는 거죠. 그 아가씨 말로는 이발소에 오는 작자들 중에서도 밀실로 들어가는 놈들 이발비는 정해진 액수가 없다고 했어요. 최하가 10만 원이라고 명목상 정해 놓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일뿐이고 아가씨가 기분만 좀 맞춰주면 기본 외에 따로 팁을 두둑이 준대요.”
“그럼 결국 아가씨 한 명이 상대하는 VIP란 놈들은 도대체 몇 명이란 말야?”
“대략 오륙십 명 정도는 된다고 해요.”

“그럼 일 주일에 일곱 명만 상대한다고 해도…… 두 달을 버티기 힘들겠구만.”
“그런 셈이죠. 대부분 침실처럼 꾸며진 밀실에서 섹스가 이루어지고, 이 회장처럼 불러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보다 더 한심한 것은, 아가씨들이 밀실에서 화대로 받은 금액의 반은 주인 몫이라는 거죠. 그러니 이발소 주인은 눈에 불을 켜고 예쁘고 싱싱한 아가씨들을 스카웃하느라 정신이 없는거죠. 손님들 입맛에 맞는 아가씨를 골라 수시로 교체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한 마디로, 이발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매춘 사업을 하는 셈이죠.”
“그럼 손님들도 아가씨들이 수시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겠구만.”
“그런 셈이죠.”

태진도 언젠가 모르고 퇴폐 이발소에 들어갔다가 혼난 적이 있어, 그 상황이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그때는 얼떨결에 특별 서비스란 말이 뭔지도 모르고 승낙했다가, 끝내 자신의 남자가 바람 빠진 풍선 꼴이되어 결국 아가씨가 제 풀에 지쳐 포기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었다.

“그래도 좀 이상하잖아. 그 아가씨가 처음 보는 진희에게 그렇게 깊은 내막까지 모두 말해준다는 것이.”

태진은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가씨도 이제 이발소에 드나드는 밀실 손님들과 거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오늘 짤렸다고 했어요. 이발소에 온 지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짧은 기간에 몸은 고달펐지만 목돈을 쥘 수 있어서 후회는 없다고 했어요.”

태진은 세상이 참으로 요지경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도 진희는 이 회장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러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야 들어왔다. 이번 일만은 진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로 해서, 태진은 이 회장을 납치해 온 이후에 할 일들을 준비하면 됐다. 하지만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지난번 김상수 PD를 납치했을 때 쓴 것들을 다시 점검하고, 비디오 카메라의 위치를 좀 옮기고, 녹음기의 음질이 더 선명하도록 조정하는 정도였다.

진희는 들어오면서 저녁 찬거리를 사왔다. 음식 솜씨가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음식이 입에 별로 맞지 않았는데, 어느덧 진희의 음식에 길들여져 갔다. 절에서 생활했다는 그녀는 특히 산나물 음식을 좋아했고 잘 했다. 그 중에서도 더덕에 고추장을 발라 구운 더덕구이와 말린 취나물을 물에 약간 불려 된장을 풀고 참기름을 쳐 프라이팬에 살짝 볶은 것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식탁에 마주 앉았다.

“오늘은 어떤 정보야?”

태진은 더덕구이를 베어 물며 물었다.

“이 회장 집을 탐색하고 왔어요.”
“소득은?”
“철옹성이나 다름없어요. 담이 높고, 그 위에 또 철조망이 있고, 이중 삼중으로 설치된 경보 시스템과 경비원과 개들이 있어요.”
“집에서 납치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겠군.”
“며칠 더 뒤를 밟으며 정보를 수집하다보면 의외의 허점이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 지금까지 테러 위협 등 신변에 위험한 일이 발생한 적이 없었을 테니까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거야.”

두 사람은 더 이상의 대화는 생략하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진희는 설거지까지 마치고, 커피와 함께 태진이 좋아하는 배를 깎아왔다. 이제 태진에게 있어 진희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같은 목적을 위해 일하고 있으니 동지이기도 했다. 매사에 신중하고 빈틈이 없는 그녀의 존재가 그렇게 미더울 수가 없었다.

“이걸 한번 봐.”

태진은 배를 먹으며, 진희 앞에 복사지 한 뭉치를 내밀었다.

“이게 다 뭐예요?”
“보면 알아.”

진희는 복사지를 한장 한장 천천히 넘겼다.

태진은 텔레비전을 켰다. 마음에 드는 프로가 없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스포츠 뉴스에 고정시켰다. 소파 깊숙이 몸을 묻고, 텔레비전 화면에 건성으로 눈길을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언제 이런 자료를 다 모았어요?”

진희는 놀란 표정이었다.

“도서관과 조선일보사 자료실 등에서 찾았지.”

지금 진희가 보고 있는 복사지들은 모두가 살인 사건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것을 비롯해 외국 자료들까지 있었다. 신문, 잡지, 소설, 영화 등 장르를 초월해서 망라되어 있었다. 복사지의 내용들은 납치, 살인에 이르기까지 목적 추구는 달랐지만, 참고할 내용이 많았다.

특히 범행 대상을 납치하는 방법, 납치 후 다루는 방법, 죽이는 방법, 대상자의 신상 기록과 당시의 정신 상태, 경찰의 추적 과정을 따돌리는 방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복사지를 다 읽으면 몇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을 얻을 것이 틀림없었다. 진희도 이제 그런 것들을 알 필요가 있었다. 보다 체계적이고 완벽한 공동의 작업을 위해서는.

“참고할 점이 많은데요.”
“그렇지?”
“저도 한 부 복사해서 참고할게요.”
“그러라고 보여준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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