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지폐에 어우동의 초상을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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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지폐에 어우동의 초상을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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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돈에 남녀 차별이 있나요?"

여당의 대선 본부 대책회의실.

오혜빈 후보를 중심으로 원탁 테이블에는 문지수를 비롯해 양천수 등 주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멤버들이 둘러앉았다.

"모바일을 국민생활의 중심에 두자는 안은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두 대의 핸드폰을 가지게 되는 경우 난처한 문제가 많이 생길 것입니다."

대책위 아이디어 위원장인 김마리 위원이 말을 꺼냈다. 물귀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마리 위원장은 나이 예순이 넘도록 독신으로 있으면서 바른 말 잘하고 대인 관계가 냉정하기 짝이 없어 사람들이 부딪치기를 꺼려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온갖 상식을 다 갖추고 있어서 그 지식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여당 대선 캠프에서는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기도 했다.

"그 문제는 양천수 위원이 좀 더 연구해서 다음 회의 때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지요."

오혜빈 후보가 김마리의 입을 막았다.

"남녀 불평등 제도에 대해 남당에서 새로운 공약을 내 놓을 것 같습니다."

사무총장인 허연나가 입을 열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립스틱을 짙게 발라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보여 섬찍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무총장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남녀 관계가 다양해서 한번 몸을 섞는 것은 악수 한번 하는 것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는 프리섹스 주의자였다. 그러나 정보력이 대단하고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내는 장점이 있었다. 일찍 결혼 했다가 남편과 이혼했다. 딸 하나가 있는데 필리핀에 영어 연수를 보내놓고 있다. 딸을 끔찍이 사랑해 한 달에 한 번씩 필리핀에 다녀온다.

"새로운 정보가 있나요?"

오혜빈 후보가 책상 아래 무릎에 손거울을 감추어 두고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오 후보는 연설을 하다가도 숨겨 가지고 다니는 손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우리가 공공장소에 여자 화장실을 남자 화장실의 배로 늘리자고 하자 남당에서는 엉뚱하게 지폐에 시비를 걸고 나왔습니다."

"지폐? 돈 말인가요?"

"예."

"돈에 남녀 차별이 있나요?"

오 후보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만 원짜리 지폐에는 세종대왕 초상화가 있고, 오천 원짜리에는 율곡 이이의 초상, 천 원짜리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 백 원짜리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초상화가 있는데 단위가 제일 높은 오만 원짜리에 왜 여자인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별 시비를 다 거는군. 남자가 쩨쩨하게."

김마리 위원이 얼굴을 찌푸렸다.

"일 원짜리를 포함해 우리나라 화폐 종류는 모두 아홉까지인데, 그 중에 인물이 들어있는 화폐는 다섯 종류 아닙니까? 그 중에 단 한 종류, 오 만원 권에만 여자 초상화가 있다는 것만 보아도 4대1의 불공평인데 무슨 소리요?"

김마리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나이보다 훨씬 많은 주름살이 한껏 부풀어 정말 물귀신 같이 무서운 얼굴로 변해갔다.

"남자 초상화를 다 합쳐도 1만 육천 백 원밖에 안 되는데 여자 초상화는 단 한 장으로 5만원이 되니까 남자의 3배도 넘으니 불공평하다고 합니다."

"정말 남자들이란 못 말릴 생물들이야."

잠자코 앉아있던 장서진이 입을 열었다. 장서진은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지낸 정계의 중진으로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의 물망에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오백 원짜리 동전에 여자 초상화를 넣으면 되겠네요."

양천수도 한 마디 했다.

"남당에서 아직 공식으로 공표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며칠 내로 발표가 있을 것입니다."

사무총장이 위원들을 한 번 둘러 본 뒤 말을 이었다.

"남당의 선대위 정문오 위원이 신사임당이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이퇴계, 충무공보다 우위에 갈 이유가 무엇이냐고 열변을 토했다고 합니다."

"버럭 정이 꼴값하는군."

김마리가 빈정거렸다.

"지폐에서 남자 초상화를 싹 없애고 성춘향이나 논개, 유관순을 넣는 게 어때요?"

허연나의 주장에 모두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여당 후보에서 정보를 입수해서 논의가 된 화폐의 초상화 문제는 실제로 남당 선대위에서도 논의가 되었다.

논의의 발단은 화폐 단위가 너무 높으니 평가 절하하는 화폐 개혁을 단행하자는 금융 정책 분과 위원회의 안건 때문이었다. 선대위에 부의된 이 안건을 심의하던 회의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단위를 절하하는 화폐개혁은 옛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군사 쿠데타 정부가 실시했다가 실패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되풀이하자는 말씀인가요?"

안건 심의를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을 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주경진이 한마디 했다.

"그때는 화폐 단위를 10분의 1로 절하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소. 이번에는 1천대 1이나, 적어도 1백대 1로 하면 됩니다. 천원이 1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화폐 평가절하는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있었어요. 1천원(圓)을 1환(圜)으로 바꾸었지요."

"그러면 현재 단위의 10만 원 권도 만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천분의 일이면 백 원짜리가 되겠지만..."

"10만 원 권? 그러면 그 화폐에는 누구 초상화를 넣을 것입니까?"

"만 원짜리에 세종 대왕인데 10만 원짜리에는 단군왕검을 넣어야 할 것 아닙니까?"

공대성 후보가 책상을 주먹으로 꽝 치면서 말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요,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펴봅시다. 백 원에는 충무공, 천 원에는 이퇴계, 오천 원에는 이율곡 초상화가 있는데 오만 원 권에는 신사임당 아닙니까? 이건 완전히 여성상위가 아닙니까. 신사임당이 충무공이나, 세종대왕보다 위대합니까?"

정문오가 열을 올렸다.

"신사임당의 예술적 업적은 아무도 부인 할 수 없지요."

주경진이 슬쩍 반론을 내놓아 보았다.

"그럼 오만 원 권에서 신사임당을 빼자는 말씀인가요? 도처에서 반발에 부닥칠 것입니다. 신씨 종친회나 오죽헌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여당은 머리띠 두르고 나올텐 데요."

"오만 원 권에 여자 초상화가 들어간 간 것은 엄연히 남성 비하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정문오 위원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오만 원 권이 만 원 권 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면 아마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배덕신 사무총장도 한마디 했다.

화폐의 초상화 논란은 마침내 시중의 큰 화제로 번졌다. 더욱 사람들의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 것은 10만 원 권 초상화에 자유 연애주의자들이 황진이와 어우동을 넣자고 들고 나온 것이었다. 심지어 동성애당 주장자들은 사방지를 넣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방지는 세조 때의 남녀 양성 소유자로 당시 궁정에서도 큰 물의를 일으킨 여자 노비였다.

사방지는 이웃 양반집 안방마님과 간통한 죄로 관아에 고발되어 조사를 받았다. 세조의 명으로 엄밀한 신체검사를 한 보고서에는 사방지가 남성과 여성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었으며, 이웃집 마님 외에도 여러 사람과 간통한 것으로 밝혀졌다.

(계속)

[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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