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 전의 사정을 좀 살펴보자.
대통령 선거가 공고되자 남당 정책 개발실의 주경진은 선거 대책위원회에 발탁되었다. 남당 중앙당의 정책 개발 아이디어 모집에 낸 그의 제안이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경진의 여러 가지 선거 공약 중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그림자 내각, 즉 새도우 캐비넷(shadow cabinet)제도였다.
그림자 내각이란 대통령 후보가 집권을 예상하여 총리와 각 부 장관을 미리 발표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예비 후보가 된 국무위원들은 자신의 정치 이념이나, 정책을 미리 발표하여 내각 전체가 국민의 선택을 받는 제도이다. 그림자 내각이란 말이 처음 나온 것은 1907년이었다. 영국의 보수당 체임벌린이 처음 사용했다.
주경진은 대학의 정치학 개론 시간에 괴짜 정치학 교수인 최재우 교수로부터 이 강의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었다. 그러니까 이 정책의 오리지날은 물론 주경진이 아니었다.
대통령 후보 한 사람의 인기에만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정책을 내놓는 것이 후보에 따라서는 유리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여당에서는 누가 뭐래도 따를 수 없는 막강한 대통령 후보인 오혜빈이 있기 때문에 남당에서는 비상한 방법을 쓰지 않고는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남당의 대통령 후보로 뽑힌 공대성는 남당 당원의 23%에 불과한 모바일 지지를 얻어 후보가 되었기 때문에 70% 이상의 여당원의 지지를 받은 오혜빈 후보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대선 전략을 짜기 위해 온갖 묘책을 다 짜낸 남당에서는 주경진의 그림자 내각 안이 가장 뚜렷한 정책의 변화였다.
주경진은 대통령 후보인 공대선이 주재하는 최고 전략 회의에 갑자기 불려갔다.
"자네가 주경진인가?"
"예."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공 후보가 예상하지 않은 기습 질문을 했다. 주경진은 독심술을 활용해 공 후보의 생각을 슬쩍 보았다. 낙선의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떨어질 것입니다."
주경진의 충격적인 대답에
"뭐야?"
"저 사람이..."
"멘붕!"
모두가 놀랐다.
그러나 공대성 후보는 아무 말도 않고 한참동안 주경진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논리적으로 남당 숫자가 여당 숫자를 못 따라갑니다. 그런데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은 여당의 여성 유권자가 오혜빈 후보를 버리고 공대성 후보를 얼마나 누르느냐에 있습니다."
"누르다니?"
공대성 후보가 물었다.
"모바일 예스 키를 누르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남당의 표, 즉 남자 유권자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주경진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기회에 인정받지 못하면 장래가 없다는 각오로 대답했다.
"그러면 자네의 전략은 무엇인가? 새도우 캐비넷?"
"그렇습니다. 그것은 여당과 차별화된 공약입니다. 오혜빈이라는 여자 한 사람에게 우리 남자들은 수십 명이 집단으로 대들어야합니다."
"그게 그림자 내각이란 말이지."
"그림자 내각은 대통령 임기가 끝날때까지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것입니까?"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차점으로 떨어진 정문오 위원이 물었다.
"그야 정하기 나름입니다만, 수시로 모바일 투표로 국민의 의견을 물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림자 내각을 공약으로 내 건다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없나요?"
다른 위원이 물었다.
"헌법과는 상관없습니다. 당에서 정책으로 채택하느냐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좀 앉아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공대성 후보가 황당한 표정으로 주경진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도 되요."
주경진은 모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또 다른 정책은 무엇인가?"
정문오 의원이 다시 물었다.
"만약에 공대성 후보께서 덥썩부리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면 남당 경선에서 과반수를 얻었을 것입니다."
"뭐야?"
모두가 또 기막히다는 표정이 되었다. 한참만에 공대성 후보가 물었다.
"무슨 뜻인가?"
"모든 남자는 여자를 연인이나 친구, 혹은 가족으로 일단 친근감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그러나 남자는 모든 남자를 적으로 생각합니다. 적이 아니라도 경계의 대상으로는 생각합니다. 특히 성(性)적인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공 후보의 수염은 남성적 매력에 상당한 가산점을 줍니다. 다라서 남자는 성적인 경쟁자를 경계하기 때문에 선 듯 누르지 않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프로이트 나왔군."
모두 한마디씩 했다.
"닥치고."
특히 정문오가 버럭 화를 냈다. 그의 별명인 '버럭 정'의 본 모습을 보였다.
"그럼 이 수염이 여성들이 모바일을 누르게 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겠구먼."
공대성 후보는 자기 수염을 양반 흉내라도 내듯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남성적 매력으로 여당 오혜빈 후보의 여성적 매력을 따를 수야 없지요."
모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올해 서른아홉인 오혜빈은 미인은 아니지만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친밀감을 주었다. 개정 헌법에는 20대도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다.
"오혜빈에게 성적 매력이 있다고?"
"허벅지 스캔들이나 만드는 천박한 여자가 무슨 성적 매력이야!"
정문오가 입을 삐죽거렸다.
"허벅지 스캔들?"
다른 위원들이 처음 듣는 것 같았다.
"아직 못 들으셨어요? 트위트나 페이스북, 심지어 카톡, 요즘에도 더러 올랐는데."
정문오 위원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주경진도 며칠 전 오혜빈 후보의 허벅지 스캔들에 대해 문지수로부터 들은 일이 있었다.
주경진은 남당의 사무국 요원으로 취직한 뒤 여의도의 11평짜리 오피스텔로 이사를 갔다. 반려견 홈즈도 함께 갔다. 몇 달 전 분당 중앙 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길 잃은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데리고 와서 지냈다. 시추종인 체중 5킬로그램짜리 강아지는 퍽 영리했다. 시추는 온 집안을 하루 종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다녔다. 함께 데리고 나가면 낯선 풀포기만 봐도 킁킁거렸다. 주경진은 꼭 수사하는 탐정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름을 셜록 홈즈에서 따와 홈즈라고 불렀다. 혼자 사는 원룸에 함께 지내면서 홈즈를 꼭 사람처럼 생각했다. 외로움이 덜했다. 주경진은 독심술을 홈즈를 향해서도 실험해 보았다. 신통하게 홈즈의 생각을 맞힐 때가 많았다.
이사한 다음 날 문지수가 용케 알고 찾아왔다.
"어? 지수야. 여긴 어떻게 알고?"
주경진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문지수는 오혜빈의 선거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과 정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주경진은 그날 밤 오랜만에 홈즈가 멀거니 지켜보는 가운데 문지수와 정사를 나누었다. 문지수로부터 오혜빈의 소위 허벅지 스캔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계속>
[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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