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물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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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눈물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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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김상수 PD의 형이 미국에서 도착했다. 그는 잠들어 있는 동생의 만신창이가 된 몸을 걱정스런 눈으로 꼼꼼히 살펴보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애 꼴이 뭐냐고요?”
“난들 아니? 상수가 말을 안 하니.”

어머니도 답답하다는 듯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니까 얘가 집에 들어오지 않다가 다음 날 밤에 벨 소리가 나서 나가봤더니 이 지경이 되어 집 앞에 버려져 있더란 말이죠?”
“그렇다니까. 조금만 늦게 병원으로 옮겼어도 위험했다지 않니.”
“경찰엔 신고했어요?”
“글쎄, 그게…….”
“그럼, 아직 신고를 안 했단 말입니까?”

형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을 신고 안 하면 어떡합니까? 어머니도 참 답답하십니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그랬는데요?”
“상수가 절대로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된다고 해서…….”

어머니는 큰아들의 눈치를 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얘가 신고하지 말라고 했다고요?”
“그랬다니까.”
“이 자식, 이거 무슨 꿍꿍이속이야?”

형은 온몸이 붕대에 감겨있는 동생을 다시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글쎄 말이다. 나도 답답해서 죽겠다.”
“그건 그렇고, 얘의 그게 잘못됐다는 얘기는 뭡니까?”
“의사들 말로는…… 앞으로 남자 구실을 못 하게 됐다지 뭐니.”
“왜요? 어떻게 됐기에?”
“씨 주머니가 완전히…….”
“답답해요, 어머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속시원하게 말하세요.”
“망가졌다는구나. 수술을 해서 두 개 다 빼냈다.”
“이런 죽일 놈의 새끼들이 있나! 그래, 그걸 망가뜨리면 어떡하자는 거야!”
“이제 어떡해야 하니?”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짐작되는 것이 없습니까? 이 녀석이 평소에 누구에겐가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했다든지, 아니면 술값이나 노름빚이 있다든지…….”
“아니다. 내가 잘은 몰라도, 얘가 그러고 다닐 애는 절대 아니다.”
“그럼 뭐냐고요? 하여튼 이 녀석에게 뭔가 약점이 있으니까 이 지경이 되고도 경찰에 신고를 못 하게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하도 답답해서 널 부른 거 아니니. 넌 그래도 검찰이나 경찰 쪽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깨어나거든 네가 잘 구슬러서 어떻게 된 건지 내막이나 알아보자꾸나. 그러고나서 경찰에 신고를 하든지 말든지 하자. 나한테는 도통 말을 안하니.”

김상수의 형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떤 녀석인지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을 찾아내 당장 박살을 내고 싶었다. 동생이 이 정도의 상처를 입고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아마추어 솜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공개적으로 수사하기보다는 은밀하게 수사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시경 강력계 형사반장으로 있는 절친한 친구인 최명술 형사를 떠올렸다. 최 형사는 강력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그에게 이 사건을 의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빠, 잠깐만 나 좀 봐요.”

그때까지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여동생이 불렀다. 그리고 어머니를 피해 병실 밖으로 나갔다.
“왜. 병실에서 얘기하지 않고?”
“이거 좀 보세요.”

그녀는 동생이 집 앞에 버려진 날, 벌거벗긴 동생의 목에 걸려있던 종이 장미를 봉투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이게 뭔데?”
“나도 모르겠어요. 이 종이 장미가 그날 상수의 목에 걸려있더라고요.”
“뭐?”

여동생이 내민 종이 장미를 대수롭지 않게 보던 그는, 그것을 손에 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얇은 검정색 종이로 접은 평범한 조화였다. 특별한 점이 없는 것이었다.

“이게 상수 목에 걸려있었다고?”
“네. 하도 이상해서 엄마 몰래 내가 보관했어요. 상수도 제 몸에 이게 걸려있었다는 것을 몰랐어요.”
“상수도 몰랐어?”
“네. 나도 너무 이상해서…….”

종이 장미를 유심히 살펴보던 형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것을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아무래도 내 친구 최 형사에게 은밀히 수사를 의뢰해야겠다.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닌 거 같다.”

김 PD는 밤이 깊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는, 사타구니 근처가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 때문에 진정제 주사를 맞고야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의 곁에는 형과 낯선 사람이 있었다.

“이제 좀 괜찮니?”

형의 물음에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해라. 내 친구 최명술 형사다.”

김상수는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형은 동생이 왜 그러는지 알고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와 누나한테서 얘기 다 들었다. 네가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한 것까지도. 하지만 최 형사는 나하고 절친한 친구이고, 네 사건을 비공개로 은밀히 수사하기로 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최 형사는 김상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마지못해 최 형사가 내민 손을 잡았다.

“나 최명술이네. 형한테서 대충 얘기를 들었지. 걱정할 것 없네. 경찰에선 나 외에 아무도 모르니까. 나에게만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말해주기 바라네. 그래야 자네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들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내 말 알아듣겠나?”

김상수는 일단 비공개 수사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놈들이 분명 말했었다. 만약에 경찰에 신고하면 또 납치하겠다고. 놈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었다. 만약에 놈들에게 다시 한 번 잡혀간다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자결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선 자네 몸 상태부터 좀 보세.”

김상수는 자신을 납치해서 테러한 놈들이 두렵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놈들을 체포해서 응분의 벌을 받게 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놈들이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다.

최 형사는 김상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몸에 생긴 상처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채찍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도 몸이지만, 전기 고문을 할 정도의 놈들이라면 프로라는 판단이 섰다. 일반적인 강도나 원한에 얽힌 사건이라면 쉽게 죽이는 것을 택하지, 이렇게 고통을 주기 위해 시간을 끌지는 않을 터였다. 몸의 상처 중에서, 특히 손목에 나 있는 상처가 눈길을 끌었다.

“자네 혹시 어딘가에 매달려 있지 않았나?”
“…….”
“난 자네를 도우러 온 사람일세. 다시 말하지만, 이 사건의 수사는 비공갤세.”

김상수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상수야, 내 친구라고 말했지? 강력계 형사 생활로 잔뼈가 굵은 친구야. 두려워 할 거 없어. 넌 억울하지도 않냐? 너에게 특별한 잘못이 없다면 뭐가 무서워서 말을 못 하는 거야?”

형이 거들었다.

최 형사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뭐에 매달려 있었나?”
“미안하지만, 어머니하고 누나는 좀 나가주세요.”

김상수는 아무래도 자세하게 사건의 전말을 얘기하려면 어머니와 누나가 옆에 있는 것이 껄끄러웠다.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여자들 앞에서는 말하기가 곤란한 내용들이었다. 어머니와 누이가 밖으로 나갔다.

“자, 이제 형과 나뿐이니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말해주게.
자네가 보고 느낀 사소한 거라도 하나도 빠짐없이. 자네에게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김상수의 형은 동생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동생이 당한 불행 때문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다른 곳도 아닌 남자를 거세 당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다. 남자가 남자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거세 당한 남자는 남자로서 가장 큰 매력을 잃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긴다면, 목숨이나마 부지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도…….”

김상수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밝혔다. 얘기를 다 듣고 최 형사는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이건 간단한 사건이 아닐세. 앞으로 당분간 내 부하 중에서 눈치 빠르고 똑똑한 애를 자네 뒤에 붙이겠네. 보디 가드로 말일세. 물론 자네나 놈들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할 걸세. 사건 해결이 쉽지 않겠어. 그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면, 단서를 잡기가 여간 곤란하지 않거든. 대담하기도 하고. 놈들이 자네에게 경찰에 알리지 말라고 경고했다면, 그건 단순히 겁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세. 잘 했네. 정말이지 경찰에 신고해서 수사를 확대하지 않은 것은 자네 입장으로 봐서는 천만다행이야. 당분간은 몸조리나 잘 하게. 특히 집 안 식구들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 하네. 밖으로 사건의 내용이 새나가지 않도록. 내 말 명심하게. 놈들은 프로야, 프로.”

“나도 이곳에 남아 자네를 돕겠네.”

형이 최 형사를 보며, 각오를 다진 듯 단호하게 말했다.

“아닐세. 자네가 나서면 오히려 놈들의 눈에 걸려들 우려가 있어. 내가 책임지고 알아서 할 테니 모른 척해주게. 앞으로는 자네와 내가 만나는 것도 삼가는 게 좋겠어.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전화로 하고. 앞으로는 자네 동생도 내가 직접 만나러 오는 일은 없을 걸세. 누군가를 시키거나 전화로 얘기할 걸세. 철저한 보안을 위해서지. 사건 해결이 장기화될 수도 있네. 그 점은 자네가 이해해줘야 하네.”
“하여튼 난 자네만 믿겠네. 내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든 놈들의 낯짝이라도 보지 못하면 난 결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알았네. 최선을 다하지.”김상수는 형의 말을 들으며 콧날이 시큰해졌다. 형제의 우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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