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통 빠져나오기
파리통 빠져나오기
  • 안봉규 논설위원
  • 승인 2015.03.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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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이 필요하다. 거친 대지로 돌아가라!

호주에서는 간통죄가 일찍이 없었고, 사회적 우선순서가 역설적이다. 1번 여자, 2번 어린이, 3번 강아지, 남자는 그 다음 끝번이다. 호주 여자는 이혼할수록 홀아비에게 인기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여자가 한번 이혼할 때마다 최소한 전 남편의 재산 절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 남자가 여자에게 약점 잡힐 짓은 애초부터 금물이다. 따라서 야간에 다운타운에서 거들먹거리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기혼자가 아니다. 반면 여자들은 울타리 너머의 자세가 보다 당당하고 여유롭다.

입법하고 62년만의 쾌거(?)인가, 마침내 간통죄가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어느 호사가는 반만년이나 걸렸다고도 지적한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통죄 폐지가 과연 선진국으로 한 발짝 더 진입했다고 평가해도 좋을지, 알 수 없다. 부정직한 남자에게 코 꿰어서 노예처럼 10년째 살아온 어느 한국아줌마의 절규를 한번 들어보자. "잡아다놓은 물고기라고 떡밥 안 주면 굶어 죽는다, 인간아." 숨이 막힌다. 더구나 경제적으로 저출산-저성장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환단고기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편의 금팔조(禁八條)에 "음란한 행동을 하는 자는 태형(笞刑)으로 다스리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진 태형은 율령체제 체벌 중의 하나로, 죄의 경중에 따라 가는 막대로 볼기나 등짝을 10-50 대 후려쳤다. 한편 비슷한 장형(杖刑)은 곤장으로 60-100 대를 내리쳤는데, 이때 수형자가 유배 가는 도중에 사망하기 일쑤였다. 아무튼 간통은 막아야하고, 될수록 줄여나가야 하는 사회적 규범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체벌보다 더 확실한 결과는 따로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공자가 권력파라면, 노자는 낭만파다. 논어가 윤리라면, 도덕경은 놀이다. 이렇게 인물이나 경전을 한마디로 지칭하는 것은 오차범위가 넓어 위험하지만, 그런 반면 "북마크"처럼 즐겨찾기가 쉬운 장점도 없지 않다. 도덕경 제40장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는 사이즈가 작고 간단하나, 겨우 21자로 전체 오천여자를 요약해 놓은듯하다. 편찬자 왕필(王弼 226-249)이 도덕경 앞뒤의 한가운데 위치하도록 배려한 까닭이 뭔가 있을 것 같다.

"도(道)"는 안팎이 하나 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뿐만 아니라, 상수처럼 고정불변의 뜻을 가졌다하기보다 쓰기 나름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변수 X로 보고 싶다. 여기서 "도=놀이"라고 대응시켜 놓는다. 제40장은 구체적으로 놀이가 3번씩이나 역설로 회통한다. 왕필과 다른 필자의 해석은 이렇다. "반작용은 놀이에 따르는 운동이고, 돌아봄은 놀이에 따르는 규칙이다. 하늘 아래 생명은 모두 놀면서 살아가지만, 죽음으로 놀이도 마친다." 컴퓨터게임은 개인의 반사 능력과 모두에게 통하는 규칙 속애서 진행되며, "로그인"에서 "로그오프"까지 한 번의 놀이가 성사된다.

수좌가 득도(得道)했다고, 어느 날 사승에게 번잡을 떨었다. 그러나 스님은 듣는 둥 마는 둥 눈길도 주지 않는다.

"스님, 알겠어요. 불성(佛性)을 깨달았어요." "뭔데?"

불립문자(不立文字) 해탈은 뫼비우스 역설의 깨침이요, 변환이다. 적멸(寂滅)은 4차원 시공(時空)이 하나로 펼쳐지는 광경이요, 도덕경 상도(常道)로의 진입이다. 그러나 시공은 "지금 여기(now-here)"만의 다양체로서 우리에게 열려있다.

"이 자리, 이 순간이죠." "아니다!(喝 때로 棒)"

할(喝)은 겉 멋든 수좌를 꾸짖는 선지식(善知識)의 천둥 같은 사자후다. 그리고 방(棒)은 벼락처럼 주장자로 후려친다. 이때 줄탁(啐啄)이 공진되어 후학의 깨침이 터지기도 한다.

"좋아요. 스님의 불성은 무엇인데요?" "이 자리, 이 순간이다."

스님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수좌가 외운 말을 그대로 뱉으며, 말을 끊었다. 그러면서 스님은 여전히 딴 짓이다. 말은 당연함도 없고, 따라서 부당함도 없다. 스님은 "이곳에 낙서하지 마시오."와 같은 역설적 낙서를 수좌에게 남긴 셈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선지식은 말로써 말을 버렸다(以言遺言). 그의 언어는 먹먹하지만, 문맥으로 행동은 뚜렷하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와 놀이를 하기 전이다. 서재에서 파우스트, 삽살개를 데리고 등장한다.

"우리는 하늘의 계시를 동경한다. / 태초에 말씀이 계셨느니라! / 태초에 뜻이 있었느니라! / 태초에 힘이 있었느니라! / 하지만 벌써 이래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일어난다. / 성령의 도움이로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여전히 서재다. 삽살개는 메피스토로 변신한다. 늙은 파우스트는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절정의 환희를 갈구했다.

"자, 내기를 하자!"

"좋습니다!"

"내가 어떤 순간을 향해 /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 고 말한다면 / 그때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 내 생애는 그것으로 끝이다! / 자, 어떻게 시작하면 되겠나?"

"바로 떠나시지요."

루키(1889-1951, 비트겐슈타인의 애칭)는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지 않고, 변신하며 제2의 인생을 끌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생전에 출간했던 "논리철학 논고(줄여서 논고)"가 전기(또는 청년)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던 "철학적 탐구(줄여서 탐구)"가 후기(또는 장년) 비트겐슈타인이다. 논고 루키가 엄숙한 외골수라면, 탐구 루키는 열린 마음을 다잡아가는 시인 같다. 그러나 철두철미 정직한 영혼으로 언어비판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청년 루키가 법정의 검사로서 "제도권 철학"을 피고로 삼아 그 폐해를 논리적으로 몰아세웠다면, 장년 루키는 변호사로서 "일상 언어"를 원고로 삼아 그 피해를 배심원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나에게 논리의 순수한 투명성은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요청이었다. 현실 언어와 요청 사이의 충돌은 격렬하다. 빙판길은 미끄러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마찰이 필요하다. 거친 대지로 돌아가라!" 탐구 107장이다. 그는 철학을 직업삼아 학술지에 난해한 논문이나 발표하는 전문가를 마치 빈민가에서 월세로 치부하는 모리배처럼 증오했다. 철학자들이 즐겨 찾는 사물의 배후에 본질(빙판길)이란 원래 없고, 언어는 다만 그 일상적 쓰임(거친들)의 차이(마찰)가 다를 뿐이다. "철학의 임무는 파리통에 갇힌 파리에게 그 미로의 출구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탐구 309장이다.

"탐구"의 중심 주제는 "언어 놀이"로 요약된다. 언어는 자체로 죽어있으나, 다양하게 쓰임에서 그 생명을 찾는다. 루키는 언어를 "사적 심리(위의 수좌)"에서 "공적 게임(위의 사승)"으로 넘겼다. 가령 축구와 야구는 규칙이 다르다. 축구가 오프사이드까지 설치하며 골문을 지키려는 완고한 "간통죄 합헌" 규칙이라면, 장외로 나간 볼이 파울도 홈런도 되는 야구는 마치 "간통죄 위헌" 제도와 닮았다. 따라서 경기 도중의 해설은 축구와 야구 사이가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구기종목이란 가족유사성 말고는, 그 배후의 공통점은 없다. 일상 언어도 이와 마찬 가지다. 심지어 같은 단어라도 그 쓰임, 즉 문맥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천차만별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언어는 경계가 흐릿하나 행동으로 나타나고, 마음이 아니라 몸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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