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물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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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눈물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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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입에서 나온 탤런트와 가수, 심지어 댄서들까지 합하면 놀랍게도 30명이 넘었다. 육체 관계를 맺은 것이 짧게는 두세 번에서 길게는 일 년 이상을 제멋대로 데리고 놀고 있는 중이었다. 신인들은 물론이고, 현재는 주연급으로 성장한 애들도 상당수 끼여 있었다. 녀석이 열거한 여자들을 떠올려보면 한결같이 인물보다는 몸매가 뛰어난 애들이라는 것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녀석의 입맛은 인물보다는 몸매에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민소영이는 어쨌나?”

태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른 애들 얘기를 다 들은 끝이어서 녀석이 의심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자타가 인정하는 이 나라 최고봉에 있는 탤런트,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고 싶은 욕구를 주는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는 말처럼 물으면서도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진희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긴장된 눈빛으로 녀석의 입을 바라보았다.

소영이는 태진이 사랑하는 여자이고, 태진의 인생 전부이기도 했다. 만의 하나 녀석이 소영이마저 건드렸다면,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신경의 마디마디가 끊기는 듯한 고통 속에 죽어가야 할 것이다.

“…… 민소영이는 내가 가장 아끼는 여자였습니다.”

녀석의 말을 들은 순간, 태진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적개심이 솟구쳤다. 다음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웠다.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슨 뜻이지?”

태진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느낄 지경이었다.

급하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녀석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녀석이 앞서 말한 30명도 넘는 애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만약 그 애들처럼 소영이마저 건드렸다면…….

“걘 쉽게 손댈 수 있는 애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손을 못 댔단 말인가?”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탤런트인데 잘못 건드렸다가는…… 또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서 아직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태진은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녀석은 생과 사의 기로에서 그 말 한 마디로 일단은 목숨을 건진 셈이었다.

녀석의 말을 들은 진희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네가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태진은 유도 심문을 했다.

“…… 민소영이는 제 마지막 여자였습니다.”
“마지막 여자? 그게 무슨 뜻이지?”

이번에는 진희가 물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였습니다.”
“결혼?”

태진은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결혼’이란 말이 너무 생경하게 들려 되물었다.

“이번에 제 프로 '‘스타 쇼’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때 제 마음을 고백하려 했습니다. 녹화를 끝내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식사와 더불어 술을 한 잔 하면서…….”
“걔가 네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태진은 녀석의 속마음을 떠보았다.

“그렇다면 말 안 듣는 애들에게 했던 것처럼…….”
“물이나 술에 약을 탔을 거란 얘긴가?”
“…….”

녀석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지?”

태진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애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이라도 동원했겠지요. 일단 한 번 꺾이면 전들 별 수 있겠습니까.”

‘개새끼!’

태진은 금방이라도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꿀꺽 삼켰다. 이제 녀석에게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녀석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소영이에 관한 한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이 미우면서도 가슴 한 구석엔 연민의 정도 생기는 것은 왜인지 몰랐다. 참으로 자신도 알 수 없는 묘한 마음의 변화였다.

진희가 올라가자고 눈짓을 했다.

거실에 마주 앉았다.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그 무거운 침묵이 싫었는지, 진희가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태진의 눈은 창 밖을 보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은 온갖 상념에 젖어있었다. 진희가 커피를 들고와 마주 앉았다.

“어떡할 거예요?”

진희는 태진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 살려주지.”

진희는 말이 없었다.

“아직 소영이는 건드리지 않았잖아.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적당히 손을 봐주고 놔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진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빨리 끝내는 게 좋겠죠? 더 데리고 있어봐야 우리에게 조금도 이로울 게 없을 테고.”
“그래.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다 알았으니까.”
“그럼 마시던 커피나 비우고 내려가요.”
“이번 종이 장미는 진희가 접어. 첫 작업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로.”
“…….”

시선이 마주쳤다.

진희의 눈은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호수의 표면처럼 감정을 담지 않고 있었다. 아니,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보지 못하는 건지도 몰랐다.

“넌 이 곳에서 살아서 나가기 위해서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고통을 참아내면 살아서 나가겠지만, 죽어도 상관은 없다. 그것은 어차피 네가 견뎌내야 할 몫이니까.”

진희가 채찍을 손에 들고 말했다.

“단단히 각오는 됐겠지?”
“…….”

진희는 녀석을 노려보다 채찍을 높이 치켜들었다.

“으윽!”

채찍에 맞은 녀석의 가슴팍이 금세 피로 물들었다. 채찍이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며 연달아 녀석의 몸 위에 떨어졌다. 채찍을 맞을 때마다 녀석은 온몸을 비비꼬며 괴로운 듯 몸부림쳤다. 채찍을 휘두르는 진희의 표정은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녀석의 몸은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피가 흐르다 말라붙고 또 흘러 이젠 누더기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진희의 채찍질은 여지껏보다 훨씬 더 강도가 높았다.

한동안 휘두르던 채찍을 멈춘 진희는 녀석의 몸에 몇 바가지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 놓인 전기봉을 들었다. 태진은 의자에 앉아 진희가 하는 것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전기봉을 들고 녀석에게 다가서는 진희의 얼굴은 채찍을 휘두르느라 흘린 땀에 범벅이 돼 괴기스러운 분위기마저 주었다. 녀석은 헐떡이고 있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과 같을 고통은 겪은 것은 처음이리라.

진희가 전기봉을 대자 녀석은 진저리를 쳤다.

“으아아아…!”

소름이 돋는 괴성이었다.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비명을 멈춘 채 입을 쩍 벌리며 굼벵이처럼 몸을 잔뜩 움크렸다. 그러나 진희는 녀석에게서 전기봉을 떼지 않았다. 태진이 진희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일어선 순간, 녀석은 동백꽃이 지듯, 고개를 ‘툭’ 떨구었다.

“너무 심한 거 아냐?”

태진은 녀석이 그대로 죽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

진희는 대답도 없이 양동이째 들어 녀석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잠시 후 녀석은 고개를 흔들며 깨어났다. 진희는 다시 녀석의 몸에 전기봉을 댔다. 녀석은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쩍 벌리더니 또 고개를 떨구었다.

태진은 뭔가 심상찮은 느낌에,

“뭐하는 짓이야!”

라고 외치며 진희의 손에서 전기봉을 낚아챘다.

트랜스 다이얼을 보았다. 세상에! 전압이 200볼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만 해! 죽겠어!”
“죽어도 할 수 없죠.”
“뭐야?”

태진은 어이가 없었다.

진희는 태진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말대꾸를 했다. 그것도 얼음 조각을 씹어 뱉어내듯 싸늘한 투로.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화나게 했을까.

“죽이기까지 할 건 없잖아. 소영이를 건드린 것도 아니고.”
“차라리 건드렸으면 덜 미웠을지도 모르죠.”
“…!”

태진은 진희의 말을 들은 순간, 뭔가 느낌이 왔다. 본심이 뭔가? 진희는 지금 소영이에 대해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진희가 표출하고 있는 감정의 굴곡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따금 자신이 진희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처럼, 진희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단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태진은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떡할 거야? 그래서 정말 죽일 거야?”
“……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자기 모멸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할 거예요.”
“자기 모멸?”

진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자기 모멸’이란 무엇을 뜻할까?

“그렇게 수많은 여자들을 건드리고 울렸으면, 그에 상응한 벌을 받아야죠.”
“어떻게?”

태진은 진희가 말한 ‘자기 모멸’이란 말이 자꾸만 뇌리에서 맴돌았다.

“다시는 여자를 건드리지 못하게 거세를 해야죠.”
“거세라고!”

태진은 어이가 없었다.

앞으로는 함부로 여자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한 다음 풀어주려던 계획보다, 진희는 한층 더 가혹한 형벌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희가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몰랐다.
‘불쌍한 녀석!’

태진은 쇠고랑에 매달린 채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앞으로 닥칠 자신의 불행한 운명도 모르고 피범벅이 된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의 이 모든 것은 녀석이 자초한 일이었다.

진희는 녀석을 쇠고랑에서 풀었다.

“다리를 드세요.”

태진은 진희의 말에 따랐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녀석을 침대에 옮기고 팔목과 발목에 단단히 수갑을 채웠다. 이제 녀석은 해부를 위해 마취된 개구리처럼 사지를 벌리고 누워있는 꼴이 되었다. 녀석의 남자는 무성한 음모에 둘러싸인 채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어떻게 거세하려고?”
“보기만 하세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쉽게 죽지는 않아요.”
“자신 있지?”

태진은 진희의 실력을 믿으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축 늘어진 녀석을 보고 있자니, 이 정도에서 그냥 풀어주었으면 싶었다.

진희는 녀석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깨어났다. 진희는 녀석에게 다가가 배꼽과 치골 경합부를 잇는 정 중앙선 상 배꼽에서 사타구니 쪽으로 3센티미터 정도에 있는 기해(氣海) 경혈을 엄지 손가락으로 세 번 눌렀다. 태진도 전에 몇 번 지압을 받아본 적이 있는 경혈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 곳에 납치된 이후 풀이 죽어 있던 녀석의 남자가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불끈 솟아올랐다. 남자인 내가 봐도, 보면 볼수록 우람하고 실하게 생긴 멋진 놈이었다.

“지금 뭐, 뭐하는 거요?”

잔뜩 겁 먹은 목소리였다. 녀석도 자신에게 시시각각 다가서는 엄청난 시련의 검은 그림자를 느낌으로 안 것일까.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잔뜩 성을 내고 있는 자신의 남자를 의식했는지 부끄러워 몸을 뒤척이려 했다. 하지만 녀석의 몸은 이제 거미줄에 꽁꽁 묶인 나비처럼 꼼짝할 수도 없었다. 수직으로 우뚝 솟아있는 남자는 하늘을 찌를 듯이 힘찬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걸 바라보는 진희는 탈을 쓴 것처럼 표정이 없었다.

진희의 오른손이 녀석의 남자를 향했다.

“으헉!”

진희의 손놀림이 빠르게 움직이는가 싶었는데,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 같은 신음이 녀석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구슬 같은 진땀을 흘리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표정이었다. 진희는 두 손으로 녀석의 남자 근처의 혈들을 찾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녀석의 고환 두 개를 한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그와 동시에 손에 힘껏 힘을 주어 쥐어짜듯 비틀었다. 마치 거봉 포도알 두 개를 손에 쥐고 으깨어 버리듯이…….

“으으으…!”

녀석은 이를 악물었다.

얼굴이 흑장미 색깔로 상기되며 이마엔 시퍼런 지렁이 같은 핏줄이 솟았다. 얼마나 세게 입술을 물었는지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흥건하게 흘렀다. 우람하던 녀석의 남자는 어느 새 번데기처럼 바짝 오그라 들고, 끝에서는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태진은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끝났어요. 이제 평생을 이렇게 살 거예요.”

진희의 표정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이제 갖다 버려요. 더 이상 잡고 있을 의미가 없어요.”

진희가 손을 씻으며 말했다.

녀석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이 헐떡이고 있었다. 이제 녀석은 남자로서의 인생이 끝났다.

진희는 녀석의 사지에 채웠던 수갑을 풀었다.

“종이 장미는 제가 다 접어 놨어요.”

진희는 검은 종이 장미를 붉은 실로 묶어 녀석의 목에 걸어주었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테이프로 봉했다. 손과 발도 묶었다. 그리고 준비한 마대에 꾸겨 넣었다.

진희는 녀석을 차로 옮기기 전, 마대 속의 녀석을 발로 내지르며 경고했다.

“널 죽일 수도 있었지만 살려주기로 했다. 넌 앞으로 여자들에겐 쓸모 없는 인간이 됐으니, 평생 죄를 반성하며 살아야 할 거다. 한 마디만 더 하겠는데, 우린 네 녀석을 너무 잘 알아. 만약에 지금까지 너에게 있었던 일이 경찰에 알려지면, 두 번 다시 하늘을 보지 못할 거야. 영리한 놈이니 무슨 뜻인지 잘 알아 들었겠지. 우리가 어디선가 늘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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