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녀석 밑에서 조연출을 맡고 있는 최명국 PD는 연방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금까지 김상수 PD와 한 팀을 이루어 몇 번 일을 해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아는 바로는, 방송 일에 관한 한 김상수 PD처럼 철두철미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드라마 기획 회의를 앞두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방송국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글쎄 말입니다. 핸드폰도 꺼져 있고.”
기획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답답했다.
그의 차가 집 앞에서 발견되기는 했는데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집 앞까지 차를 타고 갔다는 결론인데, 집 앞까지 간 사람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 사람, 집 앞에 차를 놓고 어딘가 가서 술을 진탕 마시고 뻗은 거 아냐?”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어도 지금쯤은 일어나야 정상이죠.”
“하긴 그래.”
“그건 말도 안 돼.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다른 건 몰라도 김 PD의 일 스타일은 우리가 잘 알잖아. 방송에 대한 열정과 시간 약속은 칼이잖아.”
“그렇다면 뭐냐고? 김 PD가 하늘로 솟았다는 거야, 땅으로 꺼졌다는 거야?”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떠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나갈 ‘스타 쇼’에 민소영이가 나오기로 돼 있지? 그걸 당장 내일부터 녹화에 들어가야 하는데 말야. 일단 오늘 밤까지 김 PD가 나타나지 않으면, 최 PD가 맡아서 진행하라고. 최 PD, 내 말 알았지?”
제작국장이 훌렁 벗어진 이마에 주름을 모으며 말했다.
그는 방송국에서 인생을 다 보낸 노장이었다. 그 역시 일에 대한 열정만은 젊은 PD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방송에서 실수란 있을 수 없는 것’이란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PD를 한 시절에 그 밑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은 한결같이 지독히 그를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존경했다. 연예인들도 그가 맡은 프로에 출연할 때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임했다. 누구든 서투르게 NG를 내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 때문이었다. 욕하는 데는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
“야, 이 씹탱아! 너, 연기를 그렇게 좆같이 할래? 너 그래 가지고 어떻게 탤런트가 됐어? 너 혹시 개구멍으로 방송국에 들어온 거 아냐? 니기미 좆 같아서…….”
이런 정도는 보통이었다.
그는 촬영할 때 입을 열었다 하면 욕을 폭설처럼 퍼부었다. 오랫동안 같이 일해 온 스태프들은, 그의 입에서 욕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했다. 따라서 역으로 그의 입에서 욕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때일수록 수준급으로 진행이 돼가고 있다고 믿었고, 나중에 작품으로 그걸 증명했다.
한 번은 겨울 야외촬영중에 계속해서 NG를 내는 여자 탤런트를 보고, 각본에도 없는 신을 만들어 일곱 번을 물 속에 집어넣으며 같이 NG를 냈다. 결국 그 탤런트는 온몸이 동태처럼 꽁꽁 얼다 못해 실신해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는 일까지 있었는데, 훗날 안 사실이지만 카메라 필름은 돌리지도 않고 NG만 내 연기자를 엿먹였던 것이다.
그 일은 두고두고 모든 연기자와 후배 PD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결국 기획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늘 밤까지 김 PD가 돌아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정을 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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