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여자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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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여자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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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의 말은 부장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성이었고, 곧 다른 직장을 구하여 그만두고 싶다는 말도 했다.

부장과 몇 번 관계를 맺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기회가 오면 같이 떠나자는 말로 다짐했다. 미숙은 그의 사생활을 묻지 않았는데도 털어놓았다. 여기에 오기 전에는 호텔에서 텔레마케이터를 하다가 다른 사람의 소개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멤버십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일을 1년간 했는데 그곳에서도 전무란 사람한테 몸을 바쳤다는 이야기와 남편이 그 눈치를 알고 다니지 말라고 해서 이리로 옮겼다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남편은 직장에서 쫓겨 나와 지금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얘기와 돈을 벌지 않으면 아이들 공부를 시킬 수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여간해서는 남편의 직장까지 들먹이지 않는데 미숙은 무슨 이유로 지나에게 털어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헤어지기 싫어 호프집으로 미숙을 데려갔다. 마른안주를 시키자 그녀는 자기가 낸다면서 안주로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지나 씨. 산다는 것이 참 어렵군요. 여자가 남자를 잘못 만나면 이 고생을 해야 한답니다. 이제는 굶더라도 다시는 텔레마케터를 하지 않을 셈입니다. 어제는 목에서 피가 올라왔어요. 차라리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미숙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연지는 갑자기 미숙이가 불쌍하게 보여 위로하기 위해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에요. 남편의 힘이 될까하고 나왔다가 이런 소릴 듣네요. 나도 자리를 옮길 작정입니다. 좋은 자리가 있으면 같이 가요.”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신세타령을 하다가 헤어졌다. 미숙이와 이야기 하는 사이에 훈이로부터 여러 차례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처음에는 ‘퇴근했니?’로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이제는 전화하지 않기로 했느냐?’로 이어져 있었다.

“나야. 많이 기다렸지?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겨서 미안해.”

연지의 말은 그 어느 때보다 상냥했다. 이젠 훈이에게 바싹 다가가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길이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직장이라는 곳도 마음이 떠났고, 가정도 이미 떠난 지 오래였다.

“그랬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속이 탔지 뭐야.”
“너무 피곤해. 나 언제 데려갈 거야? 생활비 걱정하지 않고 살아보았으면 좋겠어.”

연지의 목소리는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목소리가 꾀꼬리 같다며 아나운서 하라고 권유도 받았고, 성악가가 되면 출세하겠다는 권유도 받았던 적이 있다. 티 없이 굴러가는 목소리 덕택에 그나마도 오다를 끊어내고 있었다.

“알았어. 조금만 참아.”
“참으라는 지가 5년이나 됐어. 이렇게 살다가는 내 운명을 다 채울 수 없을 것만 같아. 알았어.”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애가 타는 것은 훈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훈이의 마음은 더욱 불안을 초래했다. 여태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를 생각하니 인생무상이었다. 누가 사랑이 아름답다고 했던가를 원망하며 포도 위를 걸었다. 양쪽 어깨가 축 늘어진 상태였다.

아침도 먹지를 않고 점심도 굶은 탓인지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다. 땅거미가 한강다리 아래로부터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연지이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돈 밖에는 없었다. 훈이는 돈을 몇 번이나 씹으면서 카페가 있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카페 카운터에는 주인마담이 졸고 있었다.

마담은 손님을 보자 반가웠던지

“어서 오세요”

하고 물 컵을 들고 일어났다. 로터리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다.

“뭘 드시겠어요?”
“커피 두 잔.”

훈이는 마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이, 민망하게. 얼굴에 무엇이 묻었나요?”

마담이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가려는 것을 훈이가 말렸다.

“사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내가 좋아하는 유부녀와 사귄지 5년이 넘었어요. 이젠 안보면 미칠 것만 같고, 그 여자는 같이 살기를 원합니다. 나도 그 여자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고요.”

훈이가 말을 길게 끌어가자 아주 관심을 보이며 턱을 내밀고 바로 앞에 앉았다.

“대답은 나와 있네요. 서로가 좋으면 같이 사는 거죠.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잖아요.”
“국경이라. 많이 들어본 소리구먼.”
“같이 사세요. 천륜이란 어쩔 수 없어요. 나도 나이는 얼마 먹지는 않았지만 이혼을 두 번이나 했어요. 팔자가 사나워서 물장사를 하고 있지만 여자란 단순해요. 여자란 사랑받고 싶어 하는 동물이랍니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면 결혼해서 살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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