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축제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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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축제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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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트렁크를 열자 구린내가 진동했다.

진희는 얼굴을 찌푸렸다. 녀석은 테이프에 묶인 채 벌레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극심한 통증과 공포감 때문에 바지에 똥을 싼 것이 틀림없었다. 태진은 상아 손잡이가 달린 나이프로 손과 발을 묶은 테이프를 잘랐다. 그리고는 버둥대고 있는 녀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거칠게 밖으로 끄집어냈다. 녀석은 재갈이 물려 말도 못하고 공포에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일으켜 세워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쓰러졌다. 30여 분 동안 좁은 공간에 단단이 묶여 있어서 다리가 마비된 것 같았다.

태진은 녀석이 처음부터 딴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겁을 주기 위해 발로 엉덩이와 사타구니 사이를 냅다 내질렀다. 녀석은 콩벌레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데굴데굴 뒹굴었다. 급소를 맞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고통이 심할 것이다.

잠시 후, 지하실로 끌고 갔다.

녀석은 순순히 따라왔다. 이런 상황에서 반항해봐야 조금도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린내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태진은 콘덴서 마이크를 사용해 명령했다. 그의 음성은 전혀 엉뚱하게 변조돼 들렸다.

“지금부터 옷을 다 벗는다. 실시!”

녀석은 잠시 망설였다.

지금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는다는 것은 상당한 수치심을 동반하리라.

“나는 원래 두 번 얘기하는 건 아주 질색이다. 다시 한 번만 반복한다. 옷을 벗는다. 실시!”

녀석은 마지못해 느린 동작으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또 하나, 눈을 가린 테이프에는 손만 대도 그 순간 허파에 바람 구멍이 날 줄 알아라!”

태진은 느린 동작으로 옷을 벗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나이프의 날카로운 끝으로 목덜미를 쿡 찔렀다. 잘 벼린 칼 끝이 녀석의 목덜미를 살짝 파고 들었다. 녀석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잘 벼린 칼날이 살갗을 파고들어 목덜미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제야 녀석은 서둘러 옷을 벗었다. 진희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은 금세 벌거숭이가 되어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당당한 체격이었다.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양 다리를 최대한 벌리고 선다. 실시!”

녀석은 명령에 빠른 동작으로 따랐다.

태진은 수도꼭지에 호스를 끼우고 물을 틀었다. 그리고 호스 끝 부분을 죄어 세게 나가는 물살을 녀석의 사타구니를 향해 쏘았다. 차가운 물이 녀석의 몸에 묻은 오물들을 씻어주었다. 녀석은 찬물 세례를 받고 비 맞은 생쥐처럼 오들오들 떨었다.

태진은 녀석에게 비누를 던져주었다.

“비누를 주워 냄새나는 몸을 깨끗이 씻는다. 실시!”

녀석은 자신의 사타구니와 엉덩이에 비누칠을 해 거품을 냈다. 지독하게 풍기던 냄새가 가셨다. 태진은 몸을 닦은 녀석을 쇠창살이 쳐진 방으로 끌고 가, 두 팔을 천장에 있는 쇠고랑에 채웠다. 그리고 입에 물렸던 재갈과 테이프를 뗐다. 녀석은 몹시 추운지 이빨을 덜덜 부딪치며 떨었다. 녀석의 사타구니에 붙어 있는 남자가 번데기처럼 바짝 오그라붙어 웃음을 자아냈다. 몸에는 닭살처럼 소름이 잔뜩 돋아있었다.

진희는 채찍을 들고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채찍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 동시에,

“으악!”
녀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채찍은 쉬지 않고 몇 번 더 허공을 갈랐다. 따라서 녀석의 비명은 더 커져만 갔고, 몸이 금세 벌겋게 부어오르거나 터져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진희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고통스러우면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좋다. 이 곳은 네 녀석이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방음 장치가 완벽한 곳이니까.”

다시 채찍이 바람을 갈랐다.

녀석이 얼마나 몸부림을 쳐대는지 쇠고랑을 채운 팔목이 까져 피가 흘렀다. 채찍질이 멈춘 것은 잠시 후였다. 극심한 고통을 이를 악물며 참아내느라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상체는 흘러내리는 피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당, 신, 들이 나에게 원, 하는 게 뭐요?”

폭풍 같은 채찍질이 멈춰지자, 녀석은 신음 섞인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물었다.

“급할 거 없어. 차차 알게 되겠지.”

진희는 이죽거리며, 주먹으로 녀석의 명치를 내질렀다.

“으헉!”

녀석의 몸이 크게 출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회초리로 맞은 개구리처럼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태진은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할까?”

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저 새끼 똥 싼 바지는 태워버려. 흔적조차 없애야
하니까.”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가 내리는 동안 태진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이어서일까, 커피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느긋했다. 녀석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행한 전투의 전리품이었다.

진희가 커피잔을 들고 왔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태진은 커피향을 음미하며, 쇠고랑에 두 팔이 매달려 있는 녀석을 보았다. 녀석은 아직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벌거벗은 채 매달려있는 녀석의 모습은, 푸줏간에 매달려 있는 고깃덩어리를 연상시켰다. 상체에서 흘러내린 피가 발목까지 적시고 있었다.

진희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죽여버려야 겠죠?”
“다 저 새끼 하기 나름이지.”

태진은 녀석이 이 와중에서도 두 사람의 대화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대화를 엿들으면서, 어쩌다 자신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졌는가를 생각하리라. 지금 녀석의 머리는 맞바람을 안은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방송국 PD이고 보면, 지금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을 여러 각도로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일 것이다.

진희는 얼굴은 웃음을 띤 채, 말은 일부러 신경질적으로 했다.

“꼭 이렇게 귀찮게 해야 돼요?”
“그럼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태진은 짐짓 모르겠다는 투로 장단을 맞췄다. 두 사람은 녀석을 두고, 잘 짜인 각본처럼 연극을 하고 있었다. 녀석에게 심리적인 압박감과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때리고 괴롭히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산 속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려요. 그것도 귀찮으면 소각기에 넣고 태워버리든가. 서너 시간 태우면 뼛가루조차 연기로 사라져 버릴텐데, 저런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진희는 커피를 홀짝이며, 입은 아주 험악하게 놀리고 있었다. 녀석은 진희의 말에 몸을 움찔했다. 바짝 겁을 먹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글쎄, 그것도 한번 고려해 볼 만한 일인데.”

태진은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녀석을 보았다.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먹이를 보며 느긋하게 웃음짓는 거미처럼 한껏 여유를 부렸다.

태진은 담배불을 끄고 일어섰다.

상아 손잡이 나이프를 들고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잘 벼린 칼날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싸늘한 서기를 허공에 뿜어냈다. 이미 피 맛을 본 칼은 피를 부르고 있었다.

“김상수, 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너는 서서히 미쳐가고 말테니까.”

태진은 나이프 끝을 녀석 목에 대고 약간 힘을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가슴을 지나 배로 내려갔다.
“움직이지 마라. 네 녀석이 움직이면 이 칼 끝이 사정없이 파고 들어 배를 갈라놓을 테니까.”

칼 끝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살갗이 갈라졌다. 그리고 이내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다가는 주르르 흘러내렸다. 김상수의 몸은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긴장되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정말 칼 끝이 파고들어 자신의 배를 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애써 신음을 자제하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당신들에게 납치된 거요?”

그는 아직도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애써 침착한 체하지만,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방금 던진 질문이 얼마나 웃기고 부질없는 질문인가를.

“후후후, 차차 너 스스로 불게 되거나 황천으로 가거나 둘 중 하나겠지. 넌 우리의 명령에 복종만 하면 돼.”
“난 알고 싶소.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고통과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녀석은 잠시 말을 끊었다.

“당신들은 무사하지 못할 거요. 내일 아침이면 범퍼가 부서진 내 차가 발견될 것이고……”
“그리고?”

태진은 나이프를 든 손을 잠시 멈추고 비아냥거렸다.

“내가 행방불명된 것이 밝혀지면,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명색이 방송국 PD인 내 행방을 찾기 위해 모든 경찰력이 동원될 것이오.”
“그래서?”

태진은 그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녀석은 태진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녀석의 말처럼, 녀석이 PD라면 태진은 방송 작가였다. PD가 어떻게 작가의 치밀함과 구성력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속된 표현으로, 녀석은 지금 완전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날 풀어주시오. 무사히 보내주기만 한다면,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은 하늘에 맹세코 입을 열지 않겠소. 내 머릿 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리겠다고 약속하겠소.”
“개새끼! 추리 소설깨나 읽은 모양이구만.”

태진이 녀석의 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녀석은 급소를 정통으로 맞았는지 사지를 허우적거렸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뼈다귀를 삼키다 목에 걸린 강아지처럼 꺽꺽댔다. 녀석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사타구니에 고깃덩어리처럼 붙어 있는 남자도 따라서 덜렁거렸다.

한참 허우적거리던 녀석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악을 썼다.

“…… 너희들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너흰 날 죽이지 못해!”
“?”

태진은 녀석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아니, 너흰 처음부터 날 죽일 생각이 없었어. 난 그걸 알아.”

녀석은 마치 두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냉소를 머금었다.

“천만에. 난 널 서서히, 마른 새우처럼 빼빼 말려가며 고통스럽게 죽여줄 거야.”

태진은 녀석과의 대화에 슬슬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녀석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믿음과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어딘가에 허점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걸 알고 싶었다.

진희도 녀석의 말에 호기심을 보였다.

“…… 너희들이 어차피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까지 내 눈을 가릴 필요가 없었어. 그리고 또 하나, 정체가 탄로날 것이 두려워 음성 변조기를 쓸 이유도 없고. 바로 그런 점이 결국은 날 죽이지 못하고 풀어준다는 증거지. 내 말이 틀리다면 어디 틀리다고 말해 봐!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 거추장스러운 음성 변조기를 버리고, 내 눈을 가린 테이프도 떼든지!”

녀석은 악을 쓰듯 말했다.

“!”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맞은 말이었다. 녀석의 추리와 판단은 너무나 정확했다. 사실 처음부터 녀석을 죽이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 살려줄 수도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 지경에까지 온 이상, 녀석에게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는 심적 고통을 배가해 주고 싶었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게 해주고 싶었다. 역시 상대는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방송국 PD는 고스톱을 쳐서 딴 것이 아니었다. 여우 같은 놈.

“후후후, 바보 같은 자식!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돌대가리 같은 놈!”

태진은 일부러 웃으며 허세를 부렸다. 녀석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녀석은 태진의 비웃음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 딴엔 꽤나 머리를 굴려서 자신만만하게 내린 판단이 뭐가 잘못됐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녀석의 머리를 더 혼란스럽게 해야 했다. 마음에 어떤 확신이 서면, 아무리 지독한 폭력 앞에서도 정신은 굴복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네놈은 사형수의 형 집행 장면을 영화에서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이지?”

태진은 이죽거렸다.

“어차피 합법적인 절차인 재판을 거쳐 형이 집행되는 사형수인데도 교수형을 시킬 때 왜 얼굴에 보자기를 씌울까?”

녀석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자신을 교수형시키는 교도관들은 자신과는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데…….”

태진은 거기서 말을 끊었다. 녀석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사람이란 아무리 선한 인간도 죽음을 당하는 순간엔 한을 품는 법이지. 하물며 이 세상을 걸레처럼 살아온 놈들이야 오죽 하겠어. 더구나 네놈처럼 이런 대접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특히 더 하겠지. 그리고 또 한 가지…….”

태진은 잠시 뜸을 들이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녀석도 지금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태진은 일부러 녀석의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인간은 뭔가 욕구가 있을 때, 살고 싶다는 욕망도 커지는 법이니까.“넌 우리가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들인지, 여기가 어딘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가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심적으로 고통스러운가를 난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이제 좀 알아듣겠나? 이 돌대가리 같은

녀석아! 어줍잖은 해골로 잘난 체했지만 지금쯤 넌 이제 희망이 없다는, 누구도 널 구해 줄 사람이 없다는,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서서히 너의 심장을 얼어붙게 하고 있을 걸. 과연 지금까지 한 내 말이 틀렸을까? 우린 이미 너 같은 놈을 여러 명 저 세상으로 보내봐서 잘 알지.”

녀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진희는 태진을 향해 미소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럴듯한 태진의 말이 흡족한 것 같았다.
“나, 나를 어떡할 거냐?”

그제야 녀석은 겁먹은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주지. 당장 네놈을 죽이면 죄값을 너무 쉽게 받는 것이 될 테니까. 다시 말하지만, 넌 이제 서서히 죽어갈 거야, 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니,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네 놈의 세포 하나하나가 마른 새우 처럼 빼빼 말라 죽어 갈 거야. 넌 분명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차라리 고통없이 빨리 죽여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겠지. 그때까지 우린 절대로 널 쉽게 죽이지 않아. 우린 프로거든.”

태진은 담배에 불을 붙여 녀석의 입술에 물려주었다.

“피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놈을 인간으로 대접하는 거니까.”

녀석은 볼이 홀쪽해지도록 담배 연기를 급하게 빨아들였다. 인간이란 얼마나 볼품없는 존재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나 생존권을 박탈당했을 때, 어느 정도 비참해질 수 있는가를 녀석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별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던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피우면서 녀석은 이 순간에 피운 담배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지도 몰랐다.

진희가 녀석에게 다가갔다.

태진을 보고 빙긋 웃더니, 축 늘어진 녀석의 두 개의 고환 중 오른쪽 것을 향해 가운뎃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펴며 힘껏 튕겼다.

“으악!”

녀석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냄과 동시에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쇠고랑에 팔이 매달린 채 온몸을 비비 꼬며 사지를 버둥댔다. 녀석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한 채 식은 땀을 흘렸다.
태진은 너무도 뜻밖인 그녀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녀석은 고통 때문에 한동안 정신이 반쯤은 나갈 것이다.

“앞으론 잘난 체하지 마. 이건 잘난 체한 대가에 불과하니
까. 그럼 안녕…….”

진희는 녀석의 귀 가까이에 입을 대고, 마치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듯 말했다.

녀석은 그때까지도 삶은 조개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태진은 녀석이 비명을 지르느라 떨어뜨린 담배를 주워 다시 물려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와 모니터를 작동했다. 그리고 녀석의 얼굴을 클로즈업시켜 보았다. 녀석은 그 와중에도 그때까지 담배를 물고 있었다. 거의 필터까지 타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고통이 가신 듯한 얼굴이었지만, 얼굴은 땀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커피 한 잔 더 할까?”
“좋아요.”

진희는 머그잔에 블랙으로 마셨다.

“녀석이 보기보다 보통이 아니지?”
“인내심이 강해요.”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면서도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보통 사내들 같으면 그렇게 그 곳을 맞으면, 한동안 소리소리 지르다 다 죽어가는 시늉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딱 한 번 소리를 지르고는 끝내 참아내는 걸 봐요. 남자들의 가장 약한 급소가 거기거든요.”

진희는 자신이 말하고도 우스운지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거길 튕길 생각을 했어?”

태진이 짓궂게 물었다.

“잘난 체하는 게 얄미워서요.”
“남자의 급소가 거기라면, 여자의 급소는 어디지?”
“왜요?”
“글쎄, 말해 봐.”
“여자들이야 유방이 급소죠. 다음은 허벅지 안쪽도 젖가슴 못지 않은 곳이고 제아무리 지독한 여자라고 해도 주먹으로 유방을 한 번 호되게 치거나, 허벅지 안 쪽을 무릎으로 누르면 꼼짝 못 하게 돼 있죠.”
“그래? 한 수 배웠군.”
“헌데 그런 걸 왜 물어요? 써먹을 곳이라도 있어요?”
“응. 아는 여자 중에 힘으론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그 여자에게 좀 써먹을까 해서.”

태진은 진희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제야 진희는 ‘힘이 센 여자’가 자신을 두고 한 말이란 걸 눈치채고는 눈을 흘겼다. 태진은 때론 지금처럼 순진한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 잔 할래요?”
“그럴까? 일의 성공을 위해서.”

태진은 전등을 끄고 탁자 위 촛대에 불을 밝혔다. 음악도 잔잔한 카페 음악으로 깔았다. 태진이 먼저 진희의 잔에 와인을 따랐다. 진희도 그의 잔을 채웠다. 촛불에 비친 붉은 와인의 빛깔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혀 끝에 와닿는 와인은 감미로웠다. 오늘 같은 밤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두 병의 와인을 비웠다.

“피곤하지 않아?”
“조금요.”
“그만 잘까?”

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 안아줄게.”

태진은 침대에 누워 팔을 벌렸다.

진희는 팬티와 브래지어만 남기고 옷을 벗었다. 그리고 태진의 팔을 베고 누웠다. 태진은 진희의 긴 머리카락을 애무하듯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진희의 머리카락은 매끄럽고 부드러워 매혹적이었다. 머리카락 냄새를 맡았다. 유월의 풀밭처럼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났다. 팔베개를 한 팔에 힘을 주어 진희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눈이 마주쳤다. 진희의 숨결이 느껴졌다. 진희의 숨결에는 약간의 니코틴 냄새와 달콤한 와인 냄새와 향긋한 체취가 함께 묻어 있었다.

“그만 자요.”

진희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은 부분에 뭉클한 젖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태진은 그녀의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부드러운 어깨와 등을 쓰다듬어 내려가다 브래지어 끈이 걸렸다. 브래지어 잠금쇠를 딸까 하다가 그대로 두고, 밑으로 내려갔다. 잘록한 허리를 지나 엉덩이까지 갔다. 엉덩이에 손바닥을 얹고 가만히 있었다. 손바닥을 통해 살의 감촉이 느껴졌다.

여자들의 엉덩이는 참으로 희한했다. 어찌 보면 몸에 비해 비균형적으로 큰 것 같으면서도 어쩜 그렇게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태진이 여자들을 보면서 가장 섹시함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팽팽한 엉덩이였다.

“간지러워요.”

진희가 엉덩이를 슬그머니 뒤로 뺐다.

태진은, 몸을 꼭 죄는 미니 스커트를 입고, 팽팽한 허벅지와 미끈한 종아리,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엉덩이를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살래살래 흔들며 지나가는 여자를 볼 때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송곳처럼 꽂혔다.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이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그 아름다운 봉우리 안쪽엔 분명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신비함이 있는 것만 같아, 입 안의 침이 다 마를 지경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소영이나 진희 두 여자는 만족할 만한 대상이었다.

“졸려요…….”

진희의 목소리가 동굴 속 메아리처럼 들렸다. 나른한 잠의 꼬리가 길게 늘어진 목소리였다.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진희의 얼굴을 가슴에 안아주었다. 길다란 속눈썹이 아침 이슬을 털어내는 잠자리의 날갯짓처럼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태진도 몸이 물 먹은 스펀지처럼 무겁고 나른한데도 눈은 놀란 토끼 눈처럼 말똥말똥했다. 이 밤, 쉽게는 잠들지 못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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