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몸을 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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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몸을 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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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근무하고 있는 정미숙은 부장에게 잘 보여 하루에도 다섯 건 정도 오다를 끊어 한 달 수입으로 4-5백만원을 받아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애인이 되면 돈 벌 수 있을까. 애인의 한계는 어디까지를 놓고 말하는 것일까를 연지는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잘 생각해봐요. 그렇게 벌어서 교통비나 되겠어요? 내가 뒤를 보아줄 테니 퇴근 후에 술이나 한잔 합시다.”

부장은 베스트 리스트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건 중소기업 사장들의 명단이었다. 땅 투기꾼들의 명단이어서 열 명 중에 하나 정도는 관심이 있는 사장들이었다. 그는 마음에 드는 텔레마케이터와 애인이 되어주면 리스트를 주겠다며 술집으로 유인한 뒤에 호텔로 데리고 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나도 일을 잘 안될 때는 그렇게라도 해볼까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부장과 같이 관계가 있었던 텔레마케이터는 오랫동안 직장을 다니지 못했다.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었다. 저놈의 여편네 미친년 엉덩이를 아무데나 돌려댄다는 소문이 나면 창피해서 퇴직한다는 것을 연지는 잘 알고 있었다.

“부장님 호의는 고맙지만 오래 동안 직장에 다니고 싶습니다. 아직 일에 익숙지 못해서 좀더 해보고 부장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나 씨. 기회는 여러 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날으는 새와 같다는 말을 못 들었어요?”
“그렇지만 아직 마음에 준비가”
“준비라니요?”
“마음에 준비가요.”

연지는 정중히 거절하고 문을 닫고 나왔다. 부장도 자기의 말을 거절하는 텔레마케이터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지나에게 대하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 여파는 퇴근 시간 무렵부터 몰아쳤다. 퇴근 한 시간 전에 부장은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라야 언제나 능률을 높이라는 것이어서 회의 시간이 되면 한 건도 못한 사람들은 풀이 죽는다. 지나도 하루 종일 다이얼을 돌렸지만 단 한건도 걸려들지 않았다. 연지는 정미숙의 옆에 앉았다. 미숙은 부장 방에 다녀온 연지이를 하루종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연지의 시선도 자꾸만 그곳으로 갔다. 부장이 이십여 명이 모인 텔레마케터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한 달 동안의 실적을 들고 나와 한사람씩 추궁했다.

“미숙 씨처럼 좀 해보세요. 한 달에 오십 건을 올렸어요. 그런가하면 지나 씨는 이게 뭡니까 한 달에 다섯 건밖에 못 올렸어요. 하루에 어떤 일이 있어도 두 건은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해서는 전화세도 안 나와요. 당신네들이 한 달 동안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아세요. 명심하시고 실적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연지가 부장 방에서 나오자 다른 텔레마케터가 부장에게 불려갔기 때문에 또 애인이 되어달라고 해서 저녁 약속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여느 때 같으면 회의가 끝나면 몇 사람씩 모여 회식이라도 하자고 짝을 지어 나오지만 연지는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미숙이가 바싹 다가와서 말했다.

“지나씨 우리 차 한 잔 했으면 해요.”
“그래요.”

미숙은 앞장서서 호텔 옆에 있는 베오레 카페로 들어갔다. 연지는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미숙은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나씨 뭐 드실래요?”
“커피요.”

연지의 대답이 끝나자 미숙은 카운터를 향해 고함질렀다.

“커피 하나하고 녹차 주세요.”

미숙은 이렇게 고함치고는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잡았다.

“연지씨는 나이에 비해 다섯 살은 젊어 보여요. 피부 관리를 잘 하시는 모양이죠?“
“우리 엄마가 피부가 고와요. 엄마를 닮은 탓이지요.”
“그렇군요. 많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겠어요.”

미숙은 말꼬리를 돌려 좀처럼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 생각이었죠?”

미숙은 연지가 옆구리를 치고 나오자 낮에 부장 방에 들어갔다 나온 것을 떠올렸다.

“저기…”

미숙은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리고 곧 그녀의 입에서는 거품 같은 말을 씹었다.

“이런 말 하지 않으려 했는데 부장님이 리스트를 준다고 하던가요?”

미숙의 입에서 부장에 관한 말이 나올 것이란 것을 알고 이미 점치고 있었다. 연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실적이 없다면서 분발하란 말만 했어요.”

연지의 말에 미숙은 안심이 되었던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사실 나는 부장님과 썸싱이 있었어요.”
“알고 있어요.”
“입이 포도청이라서 어쩔 수 없지만. 당해보지 않고는 그물을 빠져 나갈 수 없어요. 김 부장의 사생활을 알고부터 지금은 내가 피하는 편인데 잘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거에요.”
“미숙 씨가 뭐를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저를 그런 여자로 보지 말아요.”

연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았다.

“표현이 잘못되었다면 사과할게요. 그렇다고 부장님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내가 지나 씨에게 질투하는 것도 아니구요. 나같이 되지 말라고 차 한 잔 하자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회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어요. 부장이 저녁에 만나자고 해서 그날 핑계대고 안만나 주었더니 요즘은 리스트도 잘 넘겨주지 않아요. 다른 여자를 찍으면 난 해고될 거에요.”

“그럼 깊은 관계까지 갔었나요?”
“집에 못 가게까지 했어요. 퇴근시간이면 쪽지를 보내서 어디로 오라고 지시했으니까요.”“오래 되었나요?”
“일년요. 지나씨도 절대 넘어가지 마세요. 아주 나쁜 놈이거던요. 아주 사람을 이용하는데 명수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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