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축제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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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축제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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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덫만 놓으면 됐다. 진희의 운전 솜씨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자동차 번호판도 훔친 것으로 갈아끼웠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차를 천천히 몰면서 김 PD를 납치할 장소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실수를 하면 안 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재빠르게 도망칠 샛길까지도 익혀두었다.

진희가 언덕빼기 길을 살피며 말했다.

“떨리면서도 흥분이 되는데요.”
“그럴 거야. 더구나 처음이니까.”

태진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현재 진희가 느끼고 있는 심리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일을 앞두고 가벼운 흥분과 함께 밀려오는 불안감을.

“저 쪽 언덕에서 핸드폰으로 말해 보세요.”

두 사람은 핸드폰을 들고 가깝고 멀게 장소를 이동하며 실험했다. 이상이 없었다.
현장 답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커피를 마시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시간을 죽이기 위해 비디오를 보았다. 공포물이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지루했다.

“가볍게 한 잔 할까?”
“좋아요. 오늘 사냥 성공을 위해서 미리 축배를 들어요.”

두 사람은 캔 맥주를 부딪쳤다. 건성으로 보는 비디오 테이프만이 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소파에 기대고 있던 태진은 깜빡 잠이 들었다.

“몇 시예요?”
“열 시.”

태진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나가야죠?”
“그래야지. 평소보다 일찍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태진은 녀석의 집이 있는 방배동 언덕빼기 차도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녀석의 집은 언덕빼기 끝 후미진 곳에 있었다. 중간부터는 차도가 외길이기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좋은 집들과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이 곳은 낮에도 사람의 왕래가 드물지만, 밤이면 더더욱 적막에 싸였다. 어쩌다 승용차나 지나칠 뿐이었다.

‘내가 봐도 기가 막힌 곳을 찾았어’

녀석의 집으로 들어서는 차도 한 쪽에 공터가 있고, 길 쪽은 잡목이 우거져 음침했다. 따라서 외부 사람들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언덕길 차도를 다 내려가도록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았다. 너무 한적해서 으스스할 정도였다. 서울 한복판에도 이런 동네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들려요?”

핸드폰 수화기를 통해 진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잘 들려.”
“차에 혼자 있으려니 무서운 생각이 드는데요. 사방이 쥐죽은 듯이 적막해서.”
“절대 불을 켜면 안 돼.”
“알아요.”

만의 하나, 녀석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불이 켜진 채 세워진 차를 가족 중에서 누군가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눈여겨 볼 수도 있었다.

“떨리지?”
“조금요.”
“잊지 마. 녀석의 차가 이 차도로 들어서서 공터에 왔을 때 세게 받아야 돼. 그래야 녀석이 놀라 차에서 튀어나올 테니까.”

태진은 통화를 하면서 뒤돌아보았지만, 진희가 있는 곳이 잡목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곳에서 온갖 짓이 다 꾸며져도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녀석을 차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한 다음 진희가 급소에 한 방 먹이면 됐다. 쓰러진 녀석의 손과 발을 테이프로 묶고, 입을 봉하고, 눈을 가리면 상황은 끝이었다.

태진은 언덕빼기 길 입구 나무 뒤에 서서 녀석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녀석의 차가 언덕길을 오를 때 진희에게 연락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왜 이리도 더디게 가는지 알 수 없었다. 10분은 지났겠지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 3,4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 이렇게 초조하고, 답답한 것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선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은 아니지만 옷을 적시기에 딱 좋은 빗줄기였다. 어디에 피할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녀석이 올 때까지 마냥 이 비를 다 맞으며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파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썼다. 발 밑에는 어느 새 담배 꽁초가 여러 개 나뒹굴었다.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렸다.

“춥지 않아요? 비도 오는데.”
“견딜 만해.”
“우산 갖다 줘요?”
“아냐, 됐어.”

11시가 지났는데도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다 차가 언덕길로 들어설 때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았지만 번번이 다른 차였다. 발가락부터 춥기 시작하더니, 한기가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은 겨울의 꼬리가 남아있었다. 절기상으로는 입춘이 지났지만 높은 산 응달진 곳에는 눈이 남아있었다.

“왜 안 오죠?”
“곧 오겠지. 기다려보자고.”

녀석이 나타난 것을 알려주고 단걸음에 뛰어가면 30초 정도면 충분했다. 그 사이에 진희는 시동을 걸고 튀어나와 녀석의 차 앞 범퍼를 들이받을 것이다. 체감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피워대는 담배 때문에 입 안이 깔깔했다. 녀석이 이 언덕길을 올라올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때였다.

저만큼에서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언덕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준비해. 방금 차 한 대가 들어섰어.”

몇 번 허탕을 치긴 했지만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진이 서 있는 곳을 차가 지나갔다. 차창을 통해서 보니 녀석의 얼굴이었다. 예상대로 혼자였다.

“왔어! 지금 올라가고 있어. 실수 없이 잘 해!”
“알았어요.”

진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듣는 사람도 긴장될 만큼 목소리가 호두 껍데기처럼 딱딱했다. 핸드폰을 통해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진은 녀석의 차가 지나간 언덕 위를 향해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녀석의 차 꽁무니 후미등이 막 꺽여 외길로 접어드는 것이 보였다.

20여 초쯤 뛰었을까.

태진의 귀에도 선명하게 ‘'쿵’ 하고 자동차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급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의 하나 진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었다. 마음은 급한데 다리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외길로 접어들었다.

아아, 보였다!

저만큼에서 녀석이 진희의 일격에 슬로 모션처럼 쓰러지는 장면이. 태진은 뛰고 또 뛰었다. 그 사이 진희는 녀석을 차 보닛 위에 뉘고 빠른 손놀림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테이프로 봉하고 있었다. 태진도 재빨리 합세해 연습했던 대로 녀석의 손을 등 뒤로 묶고, 발도 묶고, 눈도 가렸다. 그리고는 차 트렁크에 던져 넣었다. 가는 도중에 깨어나 발로 트렁크를 찰까 봐, 돼지 앞뒷발을 묶듯이 다리와 손목을 단단이 연결해 묶어버렸다.

이제 이 곳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했다.

핸들을 잡고 언덕길을 내려가던 태진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차를 세울 수는 없었다. 차는 금세 언덕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시내로 접어들었다. 그제야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고 진희를 보았다. 덥지 않은 날씨인데도 그녀의 콧잔등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태진 역시 핸들을 잡은 손이 자꾸만 떨리더니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혹시나 해서 몇 번이나 백미러로 뒤를 유심히 살펴봤지만 미행하는 차는 없었다.

그제서야 진희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성공한 거죠?”
“완벽했어!”

태진은 만족하다는 표시로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도닥거려 주었다. 긴장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차 속도를 줄이고 담배를 뽑아 물었다. 꿀맛 같은 담배였다. 활짝 연 차창으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한참 갈 거예요.”
“?”

태진은 진희의 말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제대로 손을 봐줬거든요. 집에 도착할 때쯤에나 깨어날지 모르겠어요.”
“잘 했어.”

도심이 다른 날보다 한산했다. 차가 신호등에 걸릴 때 외에는 물 흐르듯 빠졌다. 차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는 혹시 트렁크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릴까 봐 귀를 기울였지만 조용했다. 진희 말처럼 아직 깨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진희는 어느 새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 되었다. 무공을 해서 그런지 감정의 고저를 쉽게 조절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태진은 아직도 긴장과 흥분의 미진이 남아, 계속해서 떨리는 손으로 줄담배를 피워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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