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당신이 날 버리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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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당신이 날 버리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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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죠? 당신을 알고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도 관심이 없어졌지 뭡니까? 심지어 남편까지도 꼴이 보기 싫어졌으니 말이죠?”

사실 연지는 훈이를 알고부터 친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틈만 나면 훈이를 만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랑의 노예가 되었어도 결코 훈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자기를 사랑해 준다면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훈이 역시 연지와 만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친구들이나 취미마저 모두 잃어 버렸다.

훈이는 연지를 알기 전에는 취미생활이 많았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기원 한구석에 내기바둑으로 밤을 새워가며 두었다. 토너먼트로 한판에 만원을 놓고 바둑알이 크게 보일 때는 십여 만원도 땄다. 그 재미로 기원이 그의 삶터였다. 내기바둑 친구들은 밥보다 바둑을 즐기던 훈이가 나타나지 않자 ‘훈이가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고, 어떤 이는 ‘멀리 이사를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볼링장은 훈이에게 항상 기쁨과 즐거움을 주던 놀이터였다. 훈이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에서부터 집의 가전제품들 모두가 일요게임 해서 받은 상품들이다. 한참 잘 나갈 때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업하는 볼링장 개장 상품을 타려고 돌아다닌 적도 있다. 그러나 연지이를 알고부터 볼링장을 잊어버렸다.

지나도 훈이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열심히 다니던 고전무용 강습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교회마저도 포기했다. 아이쇼핑도 가지 못했다. 오직 시간의 틈을 내어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취미요, 보람이었다.

“나도 그래, 나보고 죽었다는 사람도 있어. 보이던 사람이 안 보이면 농담으로 그러는데 뭐! 우리 이 주일에 한 번씩만 만날까?”

훈이는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연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싫어, 밤낮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무얼 먹고?”
“먹지 않아도 이렇게 있는 것으로 행복해요.”
“배고픈 행복은 있을 수도 없지.”
“안 먹어도 돼요. 이렇게만 같이 있어 준다면.”

사랑은 배고픔도 가져갔다. 친구와 취미,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오직 한 사람만을 그리워하고 토요일이면 어떤 약속도 제쳐놓고 만났던 오년의 세월. 그러니까 토요일에는 시집 식구들의 제사며 경조사들이 있었지만도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지며 살아왔다. 이들에게 더욱 용기와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젠 정말 당신 없이는 못살아요."

연지는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훈이.

한때는 멍청이 같이 밖을 내다보다가 가스 위에 올려놓은 생선마저 모두 태워버린 일도 있었고 길을 가다가 석호 생각이 나서 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행길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어느 때는 이번만 만나고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가도, 만나면 더욱 가슴이 미어져서 울며 돌아온 일도 많았다. 자식도 있고 남편도 있는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돌아서면 더욱 가슴 아픈 시간이었다. 그럴 때는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면 패티김의 <못 잊어>, <잊을 수가 있을까> 나훈아의 노래만 부르다가 울어버렸다. 그럴 때는 누가 있든 상관 않고 훈이에게 전화해서 ‘나 왜 오늘 이렇게 괴로운지 모르겠다.’하고 말하면 훈이는 달려와서 눈물자국을 지워 주었다.

“나 버리지 않는 거지? 만약 당신이 나 버리면 바로 한강 가는 줄 알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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