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사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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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사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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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의 의식 깊은 내면에는 섹스에 대한 지독한 혐오증이 있었다. 그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부모,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였다. 한창 이성에 눈 뜰 시기에 결코 보아서는 안 될 장면을, 어머니의 불륜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 이후로 여자에 대한 선입감은 불결함, 더러움, 쾌락을 쫓는 성기만 가진 발정난 암컷으로 각인되었는지도 몰랐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 사건 이후 자신의 남자가 구실을 못 한다는 거였다. 남자가 여자 앞에서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었다. 그것은 남자로서는 자기 혐오를 넘어서 모든 것으로부터의 패배자와 같은 심정이었다. 그 고통은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었다.

태진의 집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가난했다. 그러나 이후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운 좋게도 성공을 거듭했다. 얼마 후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게 되자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가난하지만 사이가 좋았던 부모는 그 일로 자주 다투곤 했다. 아버지는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못 배우고 예쁘지도 않은 어머니보다는 훨씬 세련된 여자들에게 눈을 돌렸던 것이다. 돈의 위력 때문에 아버지 주위에는 여자들이 넘치고 있었다.

태진이 고등학교 2학년 때인 여름이었다.

급기야 더 이상 참지 못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차라리 깨끗이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혼만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빈정대듯 말했다.
“너도 니 맘대로 해. 나처럼 바람을 피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을테니까. 난 이제부터라도 남은 내 인생을 즐기며 살 거니까.”

그날 이후, 어머니는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외박을 했고, 화장도 점점 진해져 갔다. 아버지는 여자 문제만은 돈으로 해결할망정 집 안으로까지 끌어들이지는 않았는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남자들 차가 집 앞까지 와서 대기할 정도였다. 두 사람에게 있어 태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덩그렇게 큰 집에서 혼자 자는 날이 늘어만 갔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막 나가는 행동을 보다 못해 역으로 이혼을 요구했다. 따라서 태진은 두 사람 사이에서 끈 떨어진 연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뭐? 차라리 이혼을 하자구? 흥! 누구 맘대로. 좋아. 깨끗이 이혼해 줄 테니까, 당신 재산의 반을 나에게 넘겨.”

어머니의 요구 조건에 아버지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진은 집에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온기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가정. 그나마 태진 또래의 아들을 뒀다는 가정부가 친자식처럼 챙기고 따뜻하게 대해줄 뿐이었다. 아버지 입에서 이혼 말이 나온 이후 어머니의 행동은 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어린 태진이 보기에도 어떻게든 아버지를 자극해서 이혼 도장을 받아내려는, 그래서 엄청나게 불어난 재산의 반을 차지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거리낌 없이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안방에서, 그래도 한 때는 부부라는 인연으로 아버지와 살을 맞대고 한이불을 덮었던 침대에서까지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태진은 소심한 아이였다.

두 사람이 그렇게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학교에 갔다 오면 자신의 방에, 고치 속의 번데기처럼 처박혀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릴없이 거리를 밤 늦도록 방황할 뿐이었다. 갈수록 말이 없어지자 그나마 몇 명 있던 친구들과의 사이도 점점 멀어졌고, 그를 챙겨주던 가정부마저 어머니의 난잡한 생활을 보다 못해 나가고 말았다. 그녀는 집을 떠나면서, 대문까지 배웅 나온 태진의 손을 꼭 움켜쥐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다, 마지막으로 그를 꼭 안아주고는 떠나갔다. 이제 태진은 어디에서나 완벽한 외톨이가 되었다.

그 날은 학기말 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어머니라는 여자는 어제 아침부터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고, 태진은 아침도 굶고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아야만 했다. 이제 어머니란 여자는 태진이 집에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것 같았다. 어쩜 그가 한 달 이상 학교에 가지 않고 못된 짓을 하고 다녀도 관심조차 갖지 않을 여자였다. 그들은 어쩌다 집에서 마주쳐도 서로 남 보듯 했다.

부모와 자식이란 인륜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관계가 유지되는 건, 이따금 태진의 책상 위에 용돈이 넉넉하게 놓여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란 사람은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태진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집 안은 조용했다. 이층에 있는 그의 방으로 올라가려던 태진은 이상한 소리에 발을 멈추었다. 그것은 안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무심코 방문을 연 그는 기겁하고 뒤로 물러섰다.

‘이럴 수가!’

침대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어머니와 젊은 사내가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광경이었다. 놀란 가슴을 억누르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려던 태진은 자석에 끌려가는 쇳가루처럼, 빼꼼하니 열린 문 앞으로 다시 다가섰다.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피둥피둥 살이 쪄 어디가 허리이고 어디가 가슴인지조차 구별되지 않는, 살찐 하마를 연상시키는 어머니란 여자가, 자식 같은 사내 밑에 깔려 괴성을 지르며 두 다리를 천장을 향해 번쩍 쳐들고 버둥대고 있는 것을.

“오메오메, 더 빨리! 그래, 그렇게…!”

태진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하지만 두 눈을 똑바로 부릅뜨고 봐두고 싶었다. 한때 어머니라 불린 한 여자가 더러운 욕정의 화신으로 변해 치닫고 있는 그 끝을.

태진은 방으로 가서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앵글을 맞추었다. 사내는 그때까지 여자를 깔고 앉아 여유만만한 웃음을 흘리며 끊임없이 허리를 거머리가 헤엄치듯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여자의 괴성은 차라리 천둥소리보다 더한 고문으로 태진의 고막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태진은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것도 잊은 채, 두 마리의 짐승들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비디오 테이프에 담았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사내 밑에 깔린 여자가 경련을 일으키듯 온몸을 부르르 떨며, 허리를 활처럼 휘며, 남자의 목을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그 순간 사내의 유연하던 허리 동작이 우뚝 멈추었다.

“오늘 차를 계약해 줄 거야, 말 거야?”

사내는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어린 채, 여자를 느긋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 줄게, 줄게. 아아, 어서…… 니, 내가 미치는 걸 보려고 그래, 응?”

땀벅벅이 돼 눈엔 핏발까지 선 여자가 애원하듯 몸부림을 쳤다.

“분명 약속했어. 이따 계약하러 가는 거야.”

멈추었던 사내의 허리가 다시 할미새 꽁지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의 등은 흘린 땀으로 풍뎅이 등껍데기처럼 번들거렸다.

“알았어, 알었다니께. 오메, 오메, 내가 미쳐…….”

태진은 주먹을 쥔 손에 경련이 일었다.

당장에라도 식칼을 들고 뛰어들어가 두 짐승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역시 그는 소심한 아이였다. 미칠 것 같은 분노를 행동으로까지는 옮기지 못하는 바보였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방금 촬영한 비디오를 다른 테이프에 복사했다. 이 짐승들의 축제를 꼭 보여줄 사람이 있었다. 그도 사람이라면, 소포로 배달된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보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을 터였다. 그 자신이 딸 같은 여자들과 어울려 육체의 향연을 벌이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태진은 한때 ‘어머니’라고 불리었던 여자와 짐승의 축제를 벌인 수컷의 뒤를 밟았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그의 거처를 알아냈다. 수컷은 잠실 장미 아파트에서 혼자서 살고 있었다. 철저하게 뒷조사를 했다.

―김태구. 나이 25세. 미혼. 미도 수영장 코치. 사기 전과 3범.

태진은 아버지에게 보낼 내용을 몇 번이고 면밀히 검토했다. 만의 하나 잘못될 경우를 생각해서 컴퓨터로 원고를 작성했고, 프린트는 학교 프린터를 사용했다. 소포 발신인의 주소는 당연히 엉터리였다.

…… 여기, 짐승들의 축제 광경을 찍은 비디오 테이프를 한 개 보낸다.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길. 축제의 주인공인 암컷에 대해선 당신이 더 잘 알 테고,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수컷의 기본 인적 사항을 함께 보내니 참조하길. 내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 말 것. 나도 수컷에 대한 원한이 큰 사람이라는 것 정도만 밝힌다.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나에겐 이 테이프의 원본이 있는데, 당신의 아내와 축제를 벌인 수컷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응징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테이프의 원본을 대량으로 복사해서 당신 회사 직원들과 당신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으로 배달할 것이니 알아서 하도록.

만약, 수컷에 대한 응징이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할 경우에도 복사 테이프는 지체없이 발송될 것이다. 단, 당신의 암컷에 대해서는 당신이 어떻게 처리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기억할 것은, 이 소포를 받은 시간으로부터 정확히 일 주일의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명심하도록…….

왜일까?

태진은 소포를 부치고 돌아오면서 가슴 한 쪽이 구멍이 뻥 뚫려 겨울 칼바람이 지나가는 듯 허허로웠고, 미친 녀석처럼 낄낄 웃으면서도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왔다.

그날 태진은 자신의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난생 처음으로 깡소주를 몇 병이나, 의식을 잃을 때까지 나팔을 불었다. 그날도 발정난 태진의 집 여자, 살찐 암코양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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