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가 자칭 또라이를 만난 것은 '좋은세상'이란 까페였다. 헤즐럿을 즐겼던 나는 유난히 그곳 분위기가 좋아서 곧잘 발길을 옮기곤 했다. 서울 사당동 '만원'이란 여관방 1층을 근거지로 삼은 이 까페는 그러나 서넛 젊은 기자들이 드나들 뿐,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첫 대면부터가 독사형 눈매를 가진 그의 표정에서 민완기자 뺨치는 독기가 베어나는 것을 나는 감지했다. 그러나 그가 나의 방문을 반기는 표정을 짓는 바람에 그만 내가 홀딱하고 빠져든 것이 원죄라면 원죄다.
"나는 또라입니다. 또는 럭비공이기도 하고요" 경상도 특유의 톤이 우러나는 발음에다 연신 헛기침을 끙끙하고 내뱉어가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자랑을 일삼는 그를 나는 마치 '야전사령관'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이래보여도 내가 왕년에 고속도로 쓰레기소각장을 없앤 장본인입니다"라는 말은 그가 쉴 새 없이 주억거리며 읊조리는 세리프의 첫 대목이다. "그것을 위해 무려 1년 동안 사회부 민완기자로 활동했습니다. 고속도로를 오락가락하면서 기사 쓰느라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스콘 콘크리트를 까고 부셨습니다" 그렇게 취재했던 과거사를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떠벌렸다.
습관성 다변가인 그는 인터넷신문에 맛을 들이고부터 "나는 인터넷 무식쟁이라서 한 줄의 기사도 올리지 못하는 컴맹이지만 매력에 끌려 이것이 장래 될성부른 나무다 싶어 운영한다"면서, 시민기자에게 된 소리 무른 소리로 이 말 저 말 주절거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그를 만나자 그는 대뜸 나를 "大기자/논설위원'이란 명함을 만들어 주었다. 한 1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그나 나는 별다른 말이 없이 그런 직함을 잘도 썼다. 나는 정규직이 아니라 오갈 데 없이 제멋에 동가식서가숙하는 얼간 대기자임을 자랑하고 다녔다.
그렇게 경주, 울산, 진도, 목포, 광주, 강릉, 태백, 수원 등지를 돌면서 현장취재를 같이 하는 동안 그는 나에게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세상이 좀 더 밝아졌을 것'이라는 가하면, "앞으로 사는 날까지 형님으로 모실 테니 저를 아우처럼 여겨주세요"라면서 연신 마르고 닳도록 갖은 아양을 부렸다. 물론 大기자 논설위원 예우를 허구한 날 깍듯이 나팔 불었다.
그런 와중에 나중을 위해서 한 마디 뒷전 눌러놓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또라입니다. 럭비공이라서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본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여자사냥에다 주먹세계를 돌다보니 의리하나는 제대로 배웠으나 다른 것은 잘 모릅니다"라고 미리 빠질 구멍을 마련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좋은세상’처럼 "노무현 정권을 하야하라고 큰 소리 친 신문은 천하에 없다"며 그 입버릇을 밥 먹듯 하는 그를 나는 웃으면서 대견스레 바라보기도 했다.
워낙 돈이 없는 그는 하루하루가 기적인 듯 빈 주머니 자랑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에게 장기가 있었으니 울산이라는 시(市)의 홍보비를 받아내는 데는 천재적인 기술을 발휘했다. 그것을 빌미로 인터넷 사이트 10개에서 스무 개를 만들겠다고 호언하는 바람에 나는 그것을 돕고자 사이트 개발자 김성식이를 합류시켰다.
그러나 웬걸 내가 성식이를 불러 온 그날부터 찰싹 그 개발자에게 붙은 그는 한 1년 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우려먹고 나서는 입을 싸악 닦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내가 그 부당성을 따따부따하자 한다는 소리가 "그 정도의 연출력은 나의 생존전략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임을 얼굴하나 붉히지 않고 드러내 놓는 바람에 얼굴이 다시 보이기까지 했다.
비로소 그의 독사 성 눈길이 섬뜩하게 와 닿는 순간이었다.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유독, 육체적으로 건강을 타고났다고 뽐내는 그는 여자문제에 동물적인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의 와이프가 1시간이 멀다하고 그를 체크하곤 한다. 혹시 어느 질펀한 곳에 빠지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는 그녀를 위해 시나브로 그가 먼저 이실직고하기가 십상이었다.
"여보 내가 지금 大기자/논설위원과 함께 있어요. 어디 전화 바꿔줄테니 얘기 나눠보세요"라면서 전화기를 나에게 건네주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녹음기에다 대고 하듯 "사모님, 걱정 마세요. 제가 지금 옆에 잘 지키고 있습니다'라며 안심시키곤 했다.
한 때, 내가 오성건설의 재개발건축 비리사건을 기사화 했을 때, 그는 '잘 걸렸습니다. 나도 옛날 그 회사를 사정없이 쳤는데 얼마나 강하게 들이쳤던지 그 회사 오너 이준희 회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나를 건축더미 흙 벼랑 속에다 몰래 묻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얘기가 회자됐겠습니까. 이번 잘 걸려들었으니 우리가 끝까지 싸워 본 떼를 보입시다. 뒤는 내가 책임질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맘껏 쓰세요"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오성건설이 뒤를 대고 재개발조합장이 나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제출한 덕분에 나는 1년 가까이 경찰이다, 검찰 출입하느라 고생을 밥 먹듯 했다. 그런 나를 그는 멀리서 전화통에다 대고 또라이 같은 말을 내뱉는 게 고작이었다.
"끝까지 싸우세요. 제가 뒤를 봐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은 大기자 위원 님 자유니까 알아서 하세요"
그런 텃밭을 갈무리 하는 사이 또 한 사람의 또라이 유영섭이 등장했다. '믿음이 통하는 기자협회'를 만들자는 사발통문이 그를 통해 돌았다. 처음엔 그것을 만들겠다는 사람 두엇이 우리가 자주 드나드는 까페 '좋은세상'을 방문해 잔뜩 바람을 불어 넣었다.
"한국 신문의 노불리스 오블리제를 위해 우리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뒤에는 든든한 배경 있는 원로기자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후원하는 멋진 기자협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가입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원투가 해브 예스라 생각한 내가 앞장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격이 사람 만나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터라서다. 내가 그 또라이를 끌어들여 부회장 감투를 씌운 것은 생색나는 절차였다.
그가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했지만, 그래야 나의 그 공로가 인정될 것이라 판단했고 내 앞날의 탄탄대로인 대기자/논설위원으로서의 위상이 더욱 공고해질 것임을 노린 나의 앞을 바라본 포석이었다. 그리하여 일주일이 멀다하고 군주 시 또는 율산 시에서 천리 길을 마다않고 서울모임에 나가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한 것은 마땅한 절차에 다름 아니었다.
장차 협회의 주도권을 꿰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확실한 사전정지 작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또 하나의 또라이가 사발통문을 돌리는데 한 몫 거든 영섭이가 어쩌다 무면허 음주운전 삼진 아웃으로 구치소에서 나온 것이 불과 1 주일이고, 게다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6월 선고를 받고 나온 처지니까 일단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는 것이 좋겠다고 영섭 본인이 나를 비롯, 또 한사람의 대 선배 한길 씨를 만나 철석같이 후속조처까지 해 놓고 나선, 당일 날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바꾸곤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넙죽 엎드려 절하는 해프닝을 구사해 낸 것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좋은세상' 까페에 이런 일이 다 생기다니~, 나는 그들 또라이들의 행진에 그만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만끽해야 했다. 그제야 영섭이가 일건 떠들고 다닌 사기행각에 신경이 갔으나 이미 버스 지난 뒤에 손 흔드는 형국이 된 뒤다.
영섭이는 내가 잘 나가는 大기자 노릇을 할 때, 대구의 팔성산 관광호텔 사건이 터진 것을 기회로 나를 시켜 기사취재를 의뢰해 놓고는 또라이인 그와 둘이서 방석집에서 의기투합 수십만 원 하는 술을 실컷 마셨는가 하면, 형님, 형님 하는 바로 그 동행 취재시킨 부산 전 회장과 한길회장에게 "大기자가 이중 플레이를 했다. 상대편에게 다리를 걸치고 취재해 준다는 명목으로 수백만 원의 돈을 받았다"고 떠들고 다닌 것이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 밝혀졌다.
한 또라이는 왕년에 경상도 지방기자협회장 출마했다가 주먹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다녔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불시에 불명예 아웃 당한 전철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자존심에 먹칠을 했다하여 절치부심 마음이 통하는 기자협회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소원이었다. 또 한 또라이 영섭은 GBS 포항 지방기자에서 출세해 오다 여의도본부에서 노조운동 행세 중 그만 무슨 사연으로 목이 잘린 전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대구의 YKN에서 편집국장을 하다 이참의 무면허 음주운전 삼진 아웃을 당한 것이었다. 그는 그 위에다 '여자와 함부로 놀아나면 큰 코 다친다"는 영문 모를 얘기를 휘날리며 여자관계가 복잡함을 은연중에 자랑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이 영락없이 천하의 또라이라고 나는 하늘과 땅에다 대고 맹세코 확신했다. 또라이도 수준급을 획득하고도 남을 왕 또라이들에 틀림이 없다고 속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강 고수부지에 흐드러진 갈대밭에 나아가 그 성동격서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장 아무개 유영섭 이놈들은 천하의 또라이들"이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에 몸서리가 일었다. 주먹만한 뜨거운 감자가 목젖을 흔들었다.
어쩐지 음흉하고 산만해 보이는 눈동자가 영악스럽다더니~. 형편에 따라 간에 붙고 쓸개에 붙는 일을 다반사로 하는데다, ' 음주운전 무면허 삼진아웃하고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은 하느님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했는데. 그것을 모르고 나잇살을 먹었다고 명함 내밀고 다닌 내가 마냥 소인배로 보였다. 배신감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오죽했으면 한길씨도 화가 났던지 전화통에다 대고 "아, 글쎄 한번 배신한 놈은 두 번 세 번 배신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이 하도 이번 한번 봐주자고 해서 나간 것인데 그래 나를 그들 앞에서 병신을 만들어? 이놈을 어떻게 치도곤이를 내야 직성이 풀리지?"라며 화를 풀기까지 할까.
물어보나마나 인간쓰레기 또라이라 불러서 나쁠 것이 없는 그들일 것이었다. 그들 그 장 아무개나 유영섭이 같은 놈들이 말이다. 그렇게 부르지 않고 달리 부를 이름이 아무래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거짓말의 명수인데다 천의 얼굴을 가져야 행세하는 카멜레온 습성을 가진 세상인심의 모범을 그대로 보여준 형국이 아닌가?
"무슨 말씀? 그들더러 또라이라고? 당신 정말 돌았어? 웃기지마 천만의 말씀이야! 당신이야말로 정녕 또라이 중의 또라이일세 그려. 그렇게 눈 부릅뜨고 묻고 싶은가? 어디 그래 물어봐.
그들과 북치고 장구 치며 놀던 때가 엊그젠데 말이야.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분위기를 잔뜩 띄우고 연출가에다 배우로 줄줄이 연루된 노릇을 만들어 놓은 주제에 지금 와서 무슨 말이 그리도 많아? 진정한 또라이가 무엇인지 내가 말해주랴?
또라이들 세상에서 또라인 줄도 모르고 춤추며 놀아나는 사람을 말하거든? 실컷 또라이 노릇을 해 놓고도 또라인 줄을 전혀 모르는 그런 또라이들 바로 당신과 같이 바람에 날리는 갈대 같은 줏대 없는 존재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 안 그래?
거기에 비하면 그들은 훨씬 인간적이고 인간 냄새가 물씬 나는 호감으로 뭉친 사람들이지 그들더러 또라이란 소리 어디 가서 함부로 내뱉지 말게. 요즘은 침을 뱉었다가도 벌금 무는 또라이 없는 세상인 줄 모르는가? 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걸려서 고생하기 전에 자중자애 하게나"
"????" 나는 끝내 이을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