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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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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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은 그녀와 이상한 만남을 가진 후, 하루에도 몇 번씩 수화기를 잘못 놓은 것은 아닌가 해서 점검했고, 휴대폰도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썼다. 만의 하나 그녀가 연락했을 때 받지 못할까봐서였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그녀는 그만큼 강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마침내 그녀에게서 연락이 와 만난 것은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이었다.

그날 태진은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기 회복 치료와 함께 침을 맞아야만 했다. 한 번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날은 치료를 마치고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태진의 몸이 완쾌될 때까지 계속해서 치료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나진희.

그녀의 이름이었다. 나이 24세. 출생은 비밀이었다. 그녀 말로는 가족도 없다고 했다. 자신은 아주 어렸을 때, 반으로 쪼개진 옥(玉)목걸이와 함께 전라도 깊은 산사에 버려졌고, 스님들의 손에서 자랐다고 했다. 제법 규모가 큰 그 사찰은 오래 전부터 무공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며 선을 추구하는 스님들이 있는 곳이었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무공을 익히게 되었고, 여자이면서도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스무살 되어 절을 떠나게 될 때는 무공을 가르치던 스님도 인정할 정도로 고수의 위치에 올라있었다.

그녀는 소문난 침술을 겸한 물리 치료사였는데, 일반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단한 사람들만을 치료하고 있었다. 상류층 사회에서는 널리 알려진 존재였다. 바쁘지 않으면서도 수입은 괜찮았다. 혼자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

“엎드려요.”

태진은 평소에 하던 대로 팬티만 걸치고 침대에 엎드렸다. 둘이서 가까워진 이후, 그녀는 특이한 기 치료를 시작했다. 태진과 똑같이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옷을 벗는 것이었다.

태진의 남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피부 접촉을 통해 자신의 음기(陰氣)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태진의 손을 잡아 자신의 허벅지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지긋이 압박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가 꺾이던 어느 순간, 관절과 관절 사이에서 ‘뚝‘ 소리가 남과 동시에 시원함을 느꼈다. 설탕물처럼 끈적끈적하게 엉겨붙었던 피로함이 봄바람에 양지 쪽 눈 녹듯이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손은 손가락 지압을 마치고, 팔목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팔목을 압박하며 말했다.

“근육이 많이 뭉쳤어요.”
“아, 아파!”

태진은 갑자기 그녀가 팔꿈치와 팔목 사이의 근육을 꽉 누르는 바람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전된 느낌이었다.

“엄살은…… 조금 있으면 시원해질 거예요.”

그녀의 지압은 한 시간여에 걸쳐 계속되었다. 태진은 나른함과 함께 졸음이 밀려왔다. 이대로 잠이 들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바로 누우세요.”

돌아눕자, 그녀의 팽팽한 반추형 젖가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가슴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환자였고, 그녀는 치료사였다. 그녀의 지압은 정수리에서부터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의 엄지손가락이 단전과 사타구니 중간쯤의 한 부분을 누름과 동시에, 태진은 또다시 비명을지르며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순간적이지만 눈앞이 아득해지고, 이마에 진땀이 배어나올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푸후후…… 이건 벌이에요.”
“벌?”
“내가 분명히 말했죠? 마리화나는 더 이상 피우지 말라고.”
“…….”
“잠시 동안은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기가 엄청나게 흐트러진다고 했죠?”

그랬다.

그녀는 진즉부터 마리화나를 끊을 것을 명령했었다. 그걸 어긴 것이다. 내공에 외공까지 수련했다는 그녀는,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상대방의 혈을 눌러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다고 했다.

“미안해.”

태진은 진심이었다.

그녀가 하지 말라는 짓은 안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을 한 사람의 완전한 남자로 만들기 위해 자기의 기를 엄청나게 소진해 가면서까지 고생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압을 하고 기를 불어넣어주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기진맥진했다. 그대로 침대에 엎드려 한 시간 정도를 죽은 듯이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태진의 사타구니 근처에서, 마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었다. 숨어 있던 태진의 남자가 욕망을 참지 못하고 바위처럼 불끈 일어섰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에 느껴지는 풍만한 엉덩이 살의 감촉과 출렁이는 가슴이 눈을 어지럽혔다.
“돌아 누우세요.”

그녀는 태진의 허리에 올라타 어깨 양쪽을 잡아 쭉 폈다. 그리고 엄지 손가락에 힘을 가하며 긴 호흡과 함께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 태진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호흡에 맞춰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은 엉킨 실꾸러미처럼 두 사람의 호흡이 뒤섞였지만, 횟수가 거듭되면서 서서히 일치하기 시작했다.

“더 힘을 빼세요. 머릿속은 진공 상태로 만들고…….”

그녀의 지시에 따랐다.

호흡이 일치되기 시작하는 이 순간부터가 중요했다. 그녀의 기가 자신의 어깨를 잡은 엄지손가락 끝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녀의 강렬한 기가 몸으로 흘러드는 순간에 두 사람의 호흡이 맞지 않아 뒤엉키면 큰일이었다. 기가 잘못 흘러 몸 어딘가에 뭉치면, 그 부분이 마비돼 중풍 환자처럼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진희의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등을 적셨다. 태진의 몸이 사우나탕에 들어간 것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몸에서 땀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침대에 깔아둔 큰 타월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태진은 몸에 있는 땀구멍이란 땀구멍은 모두 활짝 열린 느낌이었다.

그런 어느 순간, 태진은 벌겋게 달구어진 철사가 정수리에서 발끝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듯한 강한 전율감을 느꼈다. 그리고 일이초나 지났을까 태진의 등에서 손을 뗀 진희가 자신의 옆으로 무너지듯 누웠다. 진희는 얼굴이 백 미터 달리기를 마친 단거리 선수처럼 벌겋게 상기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하얀 실크 팬티도 땀에 젖어 은밀한 수풀과 골짜기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거친 숨을 몰아쉴 때마다 매혹적인 배꼽도 따라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수고했어.”
“…….”

태진은 진희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 얼굴에 흐른땀을 닦아주었다. 그녀의 몸매는 정말 아름다웠다. 어느 한 구석 흠잡을 곳이 없었다. 무공으로 다져진 몸매라 그런지 군살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 조각 작품같았다. 소영이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이 두드러진 조금은 비균형적인 육감적인 몸매라면, 진희는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몸매였다.

태진은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는 한 모금을 입에 물고 와 눈을 감고 있는 진희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가 흠칫 놀라 눈을 떴다. 한 점의 바람도 일지 않는, 잘 익은 머루처럼 까만 암사슴의 눈동자였다. 태진은 머금고 있던 물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흘려보냈다. 처음에는 당황해 주저하다가 물을 다 받아 마신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를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이리 와, 안아줄게.”

태진은 팔베개를 해 안았다. 그리고 땀 젖은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주었다. 태진의 품에 안긴 그녀는 거친 호흡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깊은 잠 속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봉긋하게 솟은 유두와 젖가슴의 뭉클한 감촉, 은밀한 곳 부근에 닿은 남자가 이성을 잃으려 했지만 자제했다. 이대로 편하게 잠들게 해주고 싶었다.

창문이 바람에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바람을 타고 간간이 들려왔다. 진희는 어느 새 깊은 잠에 빠졌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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