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장애인을 면해서 다행이야.”
연지는 무슨 생각을 했던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아니.”
“부평 친구 있잖아. 아침에 전화가 왔는데 40대에 애인이 없으면 5급 장애인이래. 그리고 50대에 애인이 생기면 가문에 영광이고 60대에 애인이 생기면 신의 축복을 받은 거래.”
“그럼 우리는 장애인이 아니겠네.”
“면한거지. 요즘 40대에 애인 없는 사람이 없더라. 애인 없는 사람들을 보면 쓸쓸해 보이기도 해. 그만큼 젊게 살려고 모두들 그러나 봐. 당신과 이렇게 드라이브를 하니 마치 20대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은 50대이지만 마음만은 20대가 되는 거지. 마치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야.”
“그러게. 나는 간밤에 한잠도 못 잤어. 온통 가슴이 두근거리고, 한편으로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조마조마 하기도 하고.”
훈이는 집을 나왔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질 않았다. 옛날에는 강릉까지 가는데 한계령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으나 터널을 뚫고부터는 30분이나 줄어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일찍 경포대에 도착했다. 차를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 모텔에 세웠다.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5층 방에 여장을 풀었다. 모텔이 깨끗하면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릴 것이 뻔했다. 훈이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웃었다.
“왜 웃어요?”
연지는 웃고 있는 훈이의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옛날 생각이 절로 나서…”
“무슨 생각?”
“이 방에서는 우리 아빠 어디 있어 하고 우는 아들이 없겠지?”
“그건 무슨 말이죠?”
“정자를 모두 여자들이 담아 갈 테니까. 그런데 훈련소에 가면 젊은 군인들이 참질 못해서 손으로 흔들어 빼잖아. 그래서 화장실에 가면 아빠 여기다 버리지 마. 나 살고 싶어 하고 운데.”
연지의 웃음소리는 파도소리에 묻혀 실려 나갔다. 커튼을 열어 재치고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연지는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저기 봐요. 파도가 부서진다.”
“저럴 때는 파도가 부서진다는 것보다 밀려온다고 하는 거야. 부서지는 것은 바위에 부딪치는 것을 말하고.”
“공자 앞에서 문자 썼네. 지난번에 구청의 문학 살롱에서 책을 낸다고 글을 쓰라고 하기에 당신 생각이 나서 바보라는 시를 썼는데, 들어볼래?”
“그래. 외울 수 있니?”
연지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바보의 눈에는
오직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바보의 머리에는
오직 하나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그대를 만난 이후로
눈도 머리도 바보가 되었답니다.
그래도 바보 같은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시인 같은데.”
훈이는 연지의 어깨를 끌어당겨 입술을 포갰다.
“사랑해.”
훈이의 말에 연지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인터넷에 보니까 사랑의 정의를 말해 놓았던데 사랑이 어떤 건지 알아요? 사랑이란 수학과도 같대요. 언제나 여러 개의 조건들로 쌓여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랑이란 물음표래요. 언제나 알 수 없을까요.”
“맞아, 그리고 사랑이란 실타래 같이 풀어나가야 하니까.”
“또 사랑은 바이러스와도 같아요.”
“맞아. 잘못하면 한 사람을 미치게 하니까.”
“바이러스면 괜찮게요. 마약과도 같아요. 당신에게 빠져 버렸더니 이젠 당신의 침을 맞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이젠 당신 곁이 아니면 살 수 없어요.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를 버리면 저는 죽고 말거에요.”
“자기나 날 버리지 마.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버렸어. 당신을 맞아드릴 준비를 할게.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 밥은 당신이 하고 설거지는 내가 하고, 옷은 당신이 빨고 청소는 내가 하고… 또 있다. 일곱 시가 넘어서 들어오면 밥은 내가 챙겨 먹고, 저녁에 밖에 나갈 때는 꼭 동반을 하고.”
훈이의 말에 연지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리고는 힘차게 석호를 껴안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곁에만 있어 준다면 행복할 것만 같았다.
“정말 이혼할 거죠?”
“한다니까. 이젠 도장만 찍으면 돼, 당신은 어떻게 할 건데.”
“내가 나갈 수 있게 준비만 되면 저도 이혼할게요. 내가 들어가서 살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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