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나 혼자 지내봐서 알아요
스크롤 이동 상태바
(31) 나 혼자 지내봐서 알아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편이 보따리를 싸들고 집을 나간 줄을 부인은 모르고 있었다. 밤 12시가 넘어도 남편이 들어오지 않자 어제 밤 괜히 떨어져 있자고 말한 것을 후회했다. 남편의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거나 놀다 들어오겠지 하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남편의 이부자리를 뒤져 보았으나 남편은 없었다.

‘이이가. 어딜 갔나?'

그로부터 잠이 깨는가 싶었지만 피곤해서 다시 잠이 들었다. 남편이 출근할 시간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무슨 일이 있지 않나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침 8시에 직장을 나갔지만 일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릇을 깨어 먹기도 하고 국그릇을 쏟기도 했다. 이런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다고 돌려대고 집으로 돌아와 갈 만한 친구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다가 핸드폰 충전기가 없자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장문을 열어보고는 ‘이 인간이 집을 나갔구나.’ 하고 짐작했다. 방 청소도 해야 하고, 아침 먹은 설거지도 해야 하지만 일손이 잡히지 않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는데 전화 벨소리가 요란했다. 행여나 남편인가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들었더니 옆집에 살고 있는 쌍둥이 엄마의 전화였다.

쌍둥이 엄마는 남편이 몇 년 전에 암으로 죽고, 아들 둘은 군대에 보내고, 파출부하면서 혼자 살고 있었다. 남편이 죽자 이웃에 살고 있는 퀵서비스 하는 남자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고는 부인에게 발각될 것 같아 타동으로 이사를 옮긴 후 알고 지내는 사이다. 가끔 애인이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가기도 하고 아내 몰래 생활비를 던져주어 혼자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늦은 밤에 웬일이니?”
“혼자 자니까 잠이 안 와서. 그래도 영감이 있는 언니는 좋겠소. 시집이나 가 버릴까봐!”
“왜 그 사람은 어떻게 하구?”
“오늘 온다고 해 놓고 기다려도 오질 않잖아, 화가 나서 맥주 마시고 있어. 언니 이리 올래?”

그렇지 않아도 울적해서 술이나 한 잔 마시려고 하던 참이었다. 좀처럼 술을 먹지 않지만 남편이 집을 나간 것을 알고 울적해서 코트만 어깨에 걸치고 집을 나섰다. 쌍둥이 엄마는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두 번째 소주병을 따고 있었다.

“나도 술 한 잔 줘.”
“왜 언니도 타락했어?”
“그게 아니고.”
“뭐가 아니야. 신랑 있고, 자식 있고, 뭐가 없어 걱정이야?”
“신랑 있으면 뭘 해. 없는 네가 팔자 편하지. 신랑이 딴 여자와 사귀어 봐라, 피가 거꾸로 오른다.”
“딴 여자가 있어?”
“아니, 하도 요즘 세상에 남편들을 잡아가는 과부가 많아서…”
“나보고 하는 것 같애?”

가끔 남편과 쌍둥이 엄마와 셋이 노래방에라도 가는 날에는 두 사람이 서로 부등켜 안고 노는 꼴이 보기 싫어 노래방도 같이 가질 않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쌍둥이 엄마를 두고 하는 것 같아 섬뜩했던 모양이다.

“아니, 노래방에 가면 도우미들이 대부분 과부들이래. 그러니 유부남을 그냥 두겠니?”
“나도 도우미나 될까? 노래 부르다가 좋은 남자 있으면 탁 이렇게 꿰어 차 버릴까?”
“도우미는 아무나 하나?”
“나 잘해. 나 혼자 지내봐서 알아요. 혼자가 얼마나 괴로운지…”

쌍둥이 엄마는 약간 혀가 꾸부러진 투로 김종환의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만 하면 들을 만하잖아. 또 뭐가 필요해? 나 아직 쓸 만해. 남자만 생각하면 팬티가 축축하다.”
“잘 났다. 우리 신랑 품에 안긴 지 몇 달이 됐어. 언니 남편도 내 근처 오지도 않고 나도 근처에 안가. 근심 뚝 끊어.”

[계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