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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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버의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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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e Talk When We Talk About Love-

^^^▲ 레이먼드 카버
ⓒ 문학동네/정가 9500원^^^
기자가 레이먼드 카버를 만난 것은 1996년 6월이었다.
처음 카버를 대하고 '아하! 소설은 이래야 된다'고 감탄했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몇 장면이 바뀌면, 처녀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아 기른다. 그 스피드와 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카버의 작품을 읽고 나면 아름다움과 슬픔이 밀려오고 이야기 전개가 명쾌하면서도 산뜻하다. 그리고 스토리 전개가 빠르면서도 독자들에게 깨온함을 준다.

문학평론가 데니스 도노휴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카버의 소설에서는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위험하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 치명상을 입힌다. 문장 하나를 내뱉는 것, 이름 한 번 부르는 것만으로도 파멸이 예고된다. 이것이 카버의 소설이다. 그리고 나는 이보다 강한 소설을 알지 못한다.

이번에 정영문 번역으로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출간됐다.

레이먼드 카버의 미망인과 공식 계약한 판본인 카버 전집은 작가의 작품집 구성 의도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완역본으로, 전집의 첫 권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는 전문번역가 손성경이, 둘째 권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독특한 문체로 파헤쳐 온 소설가 정영문이, 그리고 셋째 권과 넷째 권인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와 『대성당』은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을 맡았다.

레이먼드 카버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열 일곱 편의 빛나는 중기(中期) 단편소설.
레이먼드 카버는 흔히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체호프의 정신을 계승한 작가’ 등으로 불린다.

1960년 첫 단편소설 「분노의 계절」을 발표한 이후 1988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삼십 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는 소설집, 시집, 에세이 등 십여 권의 책을 펴냈다. 그러나 카버의 진면목은 무엇보다도 단편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런 까닭에 전 세계의 많은 젊은 소설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주저 없이 레이먼드 카버를 꼽는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카버의 팬을 자처하며 그의 소설을 직접 번역했고, 미국 영화감독 로버트 알트만은 그의 작품을 각색한 <숏컷>이라는 영화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카버의 중기 단편소설 열일곱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의 부모와 예약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대는 제빵사,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파산자와 그에게서 낡은 가구와 함께 그의 절망도 사들이는 어린
커플, 휴일을 망치기 싫다는 이유로 어린 소녀의 시신을 강물 위에 묶어둔 채 태평하게 낚시를 하는 사내와 예민한 그의 아내 등의 등장인물들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섬뜩하고, 단순한 듯하면서도 다면적인 모습을 통해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제공한다.

반석처럼 단단한 언어와 그림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의 고전.
이 소설집 속에는 약국 배달원, 제재소 직원, 병원 수위, 교과서 편집자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작품을 써야 했던, 마치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신산하고 힘든 삶을 살았던 카버 자신의 경험과 직관이 녹아들어 있다.

그가 「에스콰이어」, 「하퍼스 바자」 등 미국의 대중잡지들을 통해 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이 문예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원고료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유명하다. 작품들은 대부분 열 페이지를 넘지 않는 짧은 분량이고 문체 역시 간결하기 이를 데 없다.

첫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보여준 그러한 심플한 문장들은 이 둘째 작품집에서 정점에 달한다. 카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스승이자 소설가 존 가드너는 그에게 스물다섯 단어로 할 말을 열다섯 단어로 해내라고 충고했으며, 절친한 편집자 고든 리시는 그에게 이른바 ‘미니멀리
스트적’인 미학을 제시했다.

그들의 충고하에 점점 더 짧고 간결해진 카버의 단편들은 단단한 반석 같은 언어, 스냅 사진 같은 선명한 이미지, 그리고 거대한 깊이를 숨긴 빙산 같은 함축성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문학적 성취를 통해 카버에게 ‘완전한 거장’ 이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평론가 도널드 뉴러브는 1981년 『새터데이 리뷰』 지에서 '얼음을 넣은 스미르노프만큼이나 투명한 산문으로 이루어진, 절망과 파탄, 중독에 관한 열일곱 편의 이야기'라는 평을 남겼다.

지옥과 희극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기이하고도 진실한 초상!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는 전작에 담겨있던 평범한 미국 소시민들의 일상이 깊은 성찰과 더욱 날카롭게 벼려진 형식을 통해 제시된다. 위기를 목전에 둔 인물들의 삶을 스케치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와 인습, 도덕의 부조리함, 인물들의 무기력함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을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으로 포착해낸 것.

그것은 매우 기이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나 현대 사진의 극사실주의적 묘사를 접할 때 오히려 초현실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처럼, 카버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드러난 일상의 한 순간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삶의 지평으로 독자와 등장인물을 인도해간다. 표제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담아내고 있다.

인물들은 조용한 오후에 한가로이 둘러앉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간간히 끼어드는 유머와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를 통해 슬그머니 드러나기 시작한, 삶의 주름 사이사이에 끼여 있던 사랑의 상처와 이기심, 진실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대화거리도 이제 다 떨어지고, 이제 아무 일 없었던 양 다시 일상을 살아내야 하지만 그들은 단 한치도 움직일 수가 없다.

삶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카버의 이러한 시선에는 감상과 동정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지만, 그 건조함 이면에는 소외되고 뒤틀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동류의식이 깔려 있다. 카버는 이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지만, 그들에게 결코 단 한마디도
설교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설파하는 전도사가 아니라, 지저분한 술집의 바에 앉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같은 처지의 옛 친구에 가깝다. 그가 들려주는 파산과 알코올 중독, 이혼과 불륜, 지옥과 희극을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애써 모른 체해왔던 삶의 사소한 징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집 근처에 흐르는 너무나 많은 물소리’일 수도 있고, 잠 못 이루는 밤에 이웃집 마당에서 보았던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책장을 덮고 나서 그 징후들을 잊어버릴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는 독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카버가 정말 거장인 것, 귀한 소설가인 것은 그것을 온전히 말하는 유일한 작가인 까닭이다.

카버는 현실을 그리되 어떤 치장도 하지 않는다. 그는 삶이라는 사실의 부서지기 쉬움과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치부와 상처와 주름이 그대로 그려진 누드화와 비슷하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에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가슴을 압박하는 아픔이 있다.

그것은 마치 영화관에서 가슴 아프지만 아름다운 어떤 영화를 보고 난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자막이 올라가고 음악이 그친 후에도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게 될 때 느끼는 막연함과 유사한 어떤 것이다.

카버의 소설에 대해 언론들도 극찬이 대단하다.
뉴욕타임스는 리얼리스트로서의 위대한 재능이 빛나는 단편소설의 정수라고 펴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도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그의 눈길은 너무나 투명하여 우리의 심장을 부숴버릴 듯하다.' 고 평했다.

지은이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1980년대에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하였으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체호프의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

1938년 5월 25일 오리건 주 클래츠케이니에서 태어나 1988년 8월 2일 워싱턴 주 포트 앤젤레스에서 폐암으로 사망했으며,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분노의 계절』,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내가 전화하는 곳』, 에세이·단편·시를 모은 작품집 『불』, 시집 『클래머스 근처』, 『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 『겨울 불면』, 『밤에 연어가 움직인다』, 『울트라마린』, 『폭포로 가는 새 길』을 펴냈다. 1979년에 구겐하임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됐으며, 1983년 밀드레드 앤 해럴드 스트로스 리빙 어워드를 수상했다.

1988년에는 전미 예술 문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됐고, 하트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 20개국에 번역돼 널리 읽히고 있다.

옮긴이 정영문은 소설가로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작가세계』 겨울호에 장편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꿈』, 『달에 홀린 광대』, 중편소설
『하품』, 『중얼거리다』, 장편소설 『핏기 없는 독백』 등을 펴냈으며, 『쇼샤』, 『발견 :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1999년 『검은 이야기 사슬』로 제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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