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빗나간 사랑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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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빗나간 사랑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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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는 장롱 속에서 투피스를 꺼내 거울 앞에 섰다. 훈이가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인데 지금 입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으나 이것 말고는 마땅히 입고 나갈 옷이 없었다. 한번 해 보고는 하지 않던 귀걸이도 해보았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보석함에 도로 집어넣었다. 말이 보석함이지 그 속에는 가짜 밖에 없었다. 길거리에서 몇 천원 주고 산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반지 하나만은 훈이가 사준 루비를 꺼내 손가락에 끼었다. 얼굴을 다듬으려고 거울 앞에 앉았다.

연지는 자신의 목에서 삼겹살 턱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목 아래 턱살이 늘어진 것을 보고 자신이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슬펐다. 더 늙기 전에 내 인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 오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늙으면 지는 꽃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너무나 허무했다. 아직도 나는 여러 남자를 죽일 수 있는 테크닉이 남아 있다는 것이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할 육체, 썩으면 물로 흘러갈 것 아닌가. 연지는 자포자기한 듯 핸드백을 챙겨들고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사이에도 부천 친구는 계속 문자 메일을 보내오고 있었다. 연지는 지하철이 오늘따라 느리게만 가는 것 같다. 부천 역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다. 수미는 역전 카페에서 낯선 남자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연지는 수미의 옆에 앉았다.

“얘 인사해. 전자제품하고 있는 사장님이야.”
“안녕하세요. 최춘수입니다.”
“나연지이라고 합니다.”

연지는 인사를 건네고 최춘수를 여러 각도로 뜯어보았다. 입술이 거므잡잡한 것으로 보아 여자를 엄청 밝히게 생겼다. 코는 매부리코에 머리카락은 약간 곱슬에 옥니는 아닌가하고 입으로 눈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옥니는 아닌 것 같았다. 최씨에 곱슬머리, 옥니였다면 그냥 일어나려고 생각했다. 사귀어 보았자 별로 이득이 없을 것 같았다.

“연지야. 최 사장 아주 멋진 분이시다. 그리고 내 친구 연지도 예쁘지요?”

수미는 중간에서 열심히 두 사람의 고리를 연결하려고 애를 썼다.

“정말 미인이시네요.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겠습니다.”

한눈에 반해버린 최춘수의 눈길은 거슴츠레했다. 연지는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네가 내 옷을 벗기는 데는 힘이 좀 들 거야. 능력 있으면 한번 해봐. 이 능구렁이.’ 연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최춘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연지 씨가 미인이란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미인일 줄은 몰랐습니다.”

늑대의 본색이 서서히 들어나고 있었다. 먹이를 두고 도망갈까 감시를 하면 주위를 빙빙 도는 그런 시선에 연지의 눈이 서로 마주칠 때면 얼른 시선을 다른 데로 꽂았다. 이런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점심이나 얻어먹고 자리를 피하려고 애썼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연지는 실망했다. 처음 만난 식사자리이기에 생갈비나 생선요리 집으로 안내할 줄 알았는데 겨우 한정식 집이었다. 흔히 먹는 한정식 집이라서 연지는 은근히 신경질이 났다. 백화점에 가서 화장품이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별로 최 사장에게 관심이 사라졌다.

최 사장은 시장 골목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아주 간판이 허름한 식당 앞에 와서 ‘된장백반이 이 집에 맛있다. 시골에서 담은 된장인데 처음 먹어 볼 것’이라며 안으로 쑥 들어갔다. 연지는 피씩 웃었다. ‘짠돌이.’ 연지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 나올 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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