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주치의를 거부한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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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주치의를 거부한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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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을 넘어 나홀로 의료활동, 수복을 하루남겨두고 유명 달리해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신 나의 외할아버지 그 두 번째 이야기

필자의 외할아버지는 중국,소련,아랍국가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다 해방 후 귀국해서 병원을 설립한 당시나이가 31세였다.

지금의 서울대병원인 경성의료원장을 역임하시다 후임자에게 내주고 각 지방을 돌며 의료활동에 뛰어들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정동교회를 섬겼는데 그곳에는 우리나라의 초대대통령을 지낸 이승만 박사도 있었는데 당시 그분의 외교력과 뛰어난 의술을 인정받아 보좌관의 눈에띄어 이 사실을 이박사께 알렸다고 한다.

"우리교회에 선교사 출신 명의가 있는데 한번 진단을 받아 보심이" 이에 이박사는 선뜻 응하여 의사인 외조부를 찾아왔다.

"국부가 되실분이니 건강상태를 봐달라..."며 그분을 맞았다.
당시 이박사의 건강상태는 상당히 양호 했지만 이박사는 외조부님의 의술을 극찬 하셨다고 한다.
며칠 뒤 정부가수립되고 이기붕 당시 대통령비서가 찾아와 주치의가 되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렇지만 외조부님께서는 비서의 부탁을 완강하게 거절하셨다.
그후로도 수차례 자택을 방문해서 부탁했으나 일편단심 민들레였고 자신은 힘없고 가난한 평민들을 돕겠다며 돌려보냈다.

그렇게 농촌과 빈민들을 상대로 의료봉사를 하다 6.25를 만났다.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정부요원들도 상경하면서 외조부의 비보를 접하자 "그러게 윗사람말을 들었어야"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이듬해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점령군 사령관은 "만주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을때 군의관 조차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이었는데 그 의사분의 치료로 완쾌되었다" "그 의사분은 나에게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분이셨다...그런데 그분을 왜"라며 북한군을 비난했다고 한다.

만약 외조부님께서 당시 대통령을 따라 가셨더라면 초대대통령 주치의로 명예를 누리며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살았을 텐데...라시며 아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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