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무슨 여자 팔자가 이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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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무슨 여자 팔자가 이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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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이런 남자에게 시집을 왔지. 참 한심한 년이야. 하늘이 준 운명이라도 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갈 거야.’ 연지는 화장대 앞에 앉자마자 부천 수미한테서 전화가 왔다.

“연지이니? 우리 내일 백화점 갈래?”
“가기는 가야겠는데 영양크림도 떨어지고.”
“그래 잘 됐다. 나도 화장품 사려고”
“그렇지만, 카드가 한도초과야.”
“내가 빌려줄게.”
“백화점 것은 좋기는 한데 비싸서. 동네 세일하는데서 사지 뭐.”
”화장품은 비싼 것 발라야 한다. 젊었을 때 미모야 이목구비 예쁘게 생긴 것에 달렸지만 우리 나이가 되면 그저 덜 늙게 가꾸려면 백화점 것 써야 해. 불란서 제품인데 아이크림 한번 발라봐. 잔주름이 싹없어진다. “
“그런 것도 있니? 아직 안 써봐서.”
“네처럼 타고난 미모 자랑하지 마. 세월을 속이진 못해. 여자란 말이야 한꺼번에 늙고 폭삭 가버린다. 목에 주름살 생기면 어느 놈도 거들떠보지 않아. 남편인들 바람 안 피겠니?”
“알았어. 내일 보자.”

연지는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기왕에 문밖에 나온 여자 소리 들을 바에는 돈 많은 남자나 구할걸.’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화장대 앞에 앉아 영양크림 뚜껑을 열었다. 바닥에서 얼마 남지 않았다. 스킨로션도 떨어지게 생겼다. 떨어지려고 하니 하나같이 한꺼번에 다 떨어져갔다.

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구해야 돼. 이게 무슨 여자팔자야. 차라리 내일 친구나 만나 돈 많은 남자나 구해 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기왕 깨어진 그릇 더 이상 깨질게 없다고 생각하니 얼굴을 더욱 예쁘게 가꾸고 싶었다. 연지는 대충 얼굴을 문지르고 자리에 누웠다. 낮에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좀처럼 눈이 감겨지질 않았다. 연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벌떡 일어나 훈이에게 메일을 보냈다.

-자기 뭐해. 자기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는다. 사랑해-

메일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이 흘러갔는데도 한 시간이나 지난 것 같다. 눈을 붙이려 해도 답이 올 것 같아 잠이 오질 않았다. 행여나 남편이 메일을 보자고 할 것 같아 냉장고 속을 뒤졌다. 냉장고에는 며칠 전에 사다 넣어둔 감자떡이 있었다. 워낙 배가 고파 잠이 오질 않는가보다 하고 시루에 몇 개를 넣고 데우기 시작했다. 훈이 메일이 도착했다.

-전화해도 돼?―

-안돼- 자기한테 예쁘게 보이도록 화장품 사 줄래-

-응, 내일 신촌에서 만나자-

훈이의 대답을 듣고서야 배고픈 줄을 몰랐다. 역시 하소연 할 때는 훈이 밖에 없었다. 정이란 하나 밖에 없나봐. 훈이를 알고부터 남편과의 정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번 멀어지기 시작한 남편의 행동거지는 하나부터 열 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만 없어도 당장 보따리 싸 들고 나가 살고 싶었다. 20년이 넘도록 한번도 남편으로부터 화장품을 선물로 받은 적이 없다. 단 한번도 백화점 나들이를 간 적도 없다. 억지로 끌려가서는 양말 한 짝도 못 사게 인상을 그려 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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