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남들도 모두 이렇게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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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남들도 모두 이렇게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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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써요.”

연지에게 또 다른 말이 나올 줄 뻔히 알면서도 투박스레 말했다.

“돈 많은 과부를 구하든지. 아니면 어디서 돈을 벌어 쓰든지.”
“말 잘했다. 돈 많은 과부나 구해야겠다.”
“잘 됐네. 제발.”

연지는 배가 고파 밥솥을 열어보았다. 한 숟가락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먹고 들어올 것을 하고 후회했다. 딸아이는 학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이 남았다. 방에 들어가 보았자 남편과 힘 씨름이나 해야 할 것 같아 가급적이면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했다.

“여보, 이리 와봐.”

남편이 불렀다. 저 인간이 왜 부를까 하고 방에 발을 디뎌 놓으려 하자 왈칵 달려들었다.

“이 인간이 왜 이런데?”
“정희 오기 전에 ….”

다음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무슨 행동이 나올 것인가를 연지는 잘 알고 있었다. 20여년 같이 살을 부비고 지내온 사이라서 남편의 눈만 깜박해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가를 알고 있었다. 한번 하고 싶다는 말을 여간해서는 잘 하지 않았다.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낼 때는 유별나게 일찍 집에 들어온다든가 아니면 먹을 것을 잔뜩 들고 올 때다. 이 규칙은 오래 전부터 습관처럼 해 오던 일이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입이 적어진 뒤로는 사들고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일찍 들어와 보아야 돈타령하는 아내 때문에 가급적이면 늦게 들어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큰 장애물은 다 큰 아이들 때문이다. 정희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딸이 잠자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온 연지는 남편 곁에 누웠다. 여름이라 완전히 문을 닫지 않았던지 한참 정을 나누고 있는데 딸아이의 얼굴이 문틈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며 일어난 적이 있다. 이때부터 연지는 딸에게 죄지은 사람처럼 지내야했다. 남편은 이런 일을 금세 잊어버리지만 연지는 머릿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정희 오기 전에.”
“큰 집을 구해요.”

연지는 남편의 팔을 뿌리쳤다. 아내가 절대 응해주지 않을 것을 알았던지 더 이상 보채지 않고 떨어지며 고함을 질렀다.

“당신 말이야. 요즘 이상해. 남자가 있는 것 아니야?”
“남자? 남(男) 자만 들어가도 소름끼쳐. 정말 내가 돈 많은 남자를 구하던가 해야겠네. 정희가 오면 학원비 달라고 조를 텐데.”

연지는 숨겨 놓았던 병기를 내놓았다. 남편은 더 이상 말을 듣고 싶지 않았든지 이불을 깔고 드러누웠다. 연지는 남편의 곁에 가지 않으려면 딸이 올 때까지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그래서 빨래를 잔뜩 세탁기에 집어넣고 돌리기도 하고 교복을 다림질 하며 밑반찬도 만들었다.

남편은 아내를 포기하고 곯아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 하숙생 참 딱하다. 남들도 모두 이렇게 사는 걸까, 연지는 잠자고 있는 남편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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