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산실 도쿄(東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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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의 산실 도쿄(東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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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25)

^^^▲ 다양한 모습을 지닌 도쿄
ⓒ 뉴스타운^^^
도쿄는 워싱턴, 런던, 파리와 더불어 지금은 세계의 도쿄로 비약했다. 도쿠가와 막부 3백년의 도읍지 에도가 메이지 유신 때 오늘의 이름으로 탈바꿈한 후 5백년, 그동안 도쿄는 큰 지진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헤치고 어느덧 1천1백만의 인구를 담은 세계 제1의 메머드 도시로 자리매김 했다.

궁성, 국회의사당, 마루노우찌 빌딩가는 어느 의미에서 도쿄가 가진 일본의 상징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천황제도를 두고 아직도 입씨름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서도 울창한 숲과 녹지대에 뭍힌 궁성은 오염된 공기를 외면한 채 초연하다. 17년의 공사기간과 국내기술, 자재로 지었음을 자랑하는 국회의사당과 새로지은 '수상관저'가 철옹성처럼 관청가 중심에 우뚝 솟아있는가 하면, 일본의 경제를 주름잡는 마루노우치 빌딩가는 경제대국 일본의 산실, 사령탑으로서 세계를 향해 창을 열고 있다.

도쿄는 문화, 정치, 상업, 산업, 경제 그리고 정보통신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의 수도다. 끊임없는 '이전론'을 잠재우고 호연지기를 자랑한다. 도쿄의 한 복판 궁성을 중심으로 반경 50킬로미터 이내에 2천7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도쿄 토박이는 전 인구의 40%, 나머지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행정적으로 도쿄는 23개의 구(區)와 위성도시 그리고 도쿄만(灣) 남쪽으로 태평양상에 흩어진 여러 섬들로 구성돼 있다. 이와 같이 큰 도시이므로 중심부를 어디라고 정하기는 힘들다. 속담에 '도쿄는 3대를 살아봐야 비로소 도쿄를 말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니까 그 크기와 세밀 도를 짐작할 만하다.

실제로 도쿄에는 제각기 개성에 찬 여러 개의 중심부가 있다. 마루노우치 비즈니스구역, 쇼핑센터 긴자, 시부야, 신쥬쿠. 이케부쿠로, 젊은이들이 모이는 유흥가 록본기, 그리고 관청가인 가스미가세끼~ 이런 곳들이 도쿄에서 가장 크고 번창 화려한 중심지일 것이다.

도쿄는 1867년까지 실질적으로 일본을 지배한 도쿠가와 막부의 창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590년에 이곳에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서 많은 가신들과 그의 가족들을 거느리고 옮겨오기 전까지는 자그마한 어촌에 불과했다. 1721년까지 인구 1백만명을 헤아리게 됐으며 오늘날 세계의 거대도시의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도쿠가와 장군 시대의 유물로서 오늘날 남은 것은 얼마 안된다. 요 수세기 사이에 화재와 지진이 모든 것을 상실케 한 것이다. 금세기에 들어서 도쿄는 두 번이나 거의 완전히 파괴됐다. 그 하나가 1923년에 있었던 소위 관동대지진, 또 하나는 1945년에 있은 공습으로 말미암은 파괴다. 유명한 대부분의 고적들은 없어져 버렸거나 아니면 서기 645년에 건립된 도쿄서도 가장 오랜 종교적 건축물인 아사쿠사 관음사처럼 제2차대전 후에 재건된 것이다.

그러나 도쿄는 역사적 기념물이나 고대의 유물만을 제공하는 도시는 아니다. 도쿄만이 갖는 독자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도쿄는 이를테면 일본의 모든 것을 집약한 도사, 그러므로 현대 일본인의 행동과 생활방식을 경할 할 수 있는 거와같은 도시인 것이다. 도쿄는 정보산업의 집산지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일간신문과 출판물이 간행되고 있으며 세게의 모든 정보를 제공해 준다.

주된 호텔에서는 케이블 TV 방송이 제공되고 있으며, 그밖에 공공 방송과 민간 방송에 의한 뉴스와 특집 프로그램이 일본어와 영어로 전파를 탄다. '일본을 통하여 세계는 무엇하나 공개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도쿄는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도쿄 뿐만 아니라 일본에 있어서 '서비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단순한 '다떼마에(겉모습)'가 아니라 '혼네(본색)'로서 그들의 '가치를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란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기간 산업의 본류인 강철왕국을 세우기 까지 철 한톨 생산되지 않는 나라에서 이를 들여와 역수출의 용광로에 들여 부운 파워는 하드웨어의 세계를 소프트웨어에도 접목시킨 바로 이 '서비스 정신'이었다고 세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큰 백화점에서 작은 상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호텔에서 혹은 레스토랑이나 찻집에서 우리는 손님으로서 이 나라의 따뜻한 접대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도쿄의 범죄율은 대단히 낮으며 경관들도 우수하므로 안심하고 도쿄 시내를 걸러다닐 수 있다. 어디를 가나 '고오방'이라 불리는 파출소가 있고 '오마와리 상'인 친절한 경관이 도와 준다.

도쿄는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속된 작은 마을의 모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전하며 조용한, 그러면서도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를테면 떠들썩한 것과 조용한 것이 언제나 조화를 이뤄 하나로 뭉친 그러한 도시인 것이다.

도쿄의 고층화

'이코노믹 에니멀'이란 핀잔을 받으면서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아 세계 굴지의 경제대국으로 뛰어오른 일본, 그 도쿄는 빌딩의 높이에 있어서는 세게 제1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다. 높이 333미터의 도쿄 타워는 파리의 에펠탑보다 13미터가 높아 탑 자체로서는 세계 제1을 자랑한다. 36층의 가미가세끼 빌딩이 세워졌을 때는 그에 대항하기 위해 오오코오타워는 특별 전망대를 신설하는 소동을 벌였던 것이다.

뒤이어 도쿄에는 47층의 게이오 프라자 호텔이 솟아 올랐는가 하면, 52층의 스미또모 건설 회사의 빌딩이 또다시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진 때문에 얼마 전 까지도 건물의 고층화가 억제돼 지하철이 세계서도 으뜸이 될 정도로 발달됐던 것이다. 또 하루 통행차량이 1백만 대나 되는 도쿄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시내엔 1호선 고가 고속도로가 깔렸다.

그후 계속돼 지금은 6호선까지 거미줄처럼 깔려있다. 도쿄는 아카사카 고속도로 입체 교차점의 휘황한 야경처럼 꿈에 부풀어 오늘도 쉬지 않고 위로 위로 치솟고만 있다.

경제대국의 배경

일본 경제의 자본주의화는 근대화를 서두른 주식회사 일본 정부의 정책적 개입으로 급속히 추진됐다. 20세기 초에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방적, 제사 등의 섬유공업과 강력한 군대를 유지, 육성하기 위한 군수공업에 부수되는 야금, 제철공업을 비롯한 주요산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일본경제를 지배하는 재벌과 비근재적 농업, 영세 중소기업이 병존하게 됐고 또 저임금, 저 생활수준, 잠재실업 등 이른바 '일본 경제의 이중구조'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제2차 대전에서의 패배로 일본에 진주한 미군점령 당국의 재벌해체, 농지개혁을 기저로 한 농촌의 민주화 등 철저한 경제적 민주화에 착수했다. 그런 당시의 일본경제는 해외 점령지로부터의 철수, 전쟁 중 산업시설의 파괴 등으로 문자 그대로 붕괴 일보직전에 놓여있었다.

이런 급박한 정세 아래서 1950년 북한 공사군에 의한 전면적인 남침으로 야기된 한국동란은 일본경제를 기사회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리하여 일본은 경제적 위기를 벗어나 '신무(神武:일본의 제1대 천황)이래의 호경기를 맞아 체화는 일소되고, 수출은 준대하여 생산수준이 전쟁 전의 수준으로 향상됐다.

59년 후반부터 60년대 중반에 걸쳐 종래의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전화하게 됐고 메이지시대 이래의 과제인 노동력 과잉 상태에서 해방됐다. 그들의 지나친 이익추구와 상업주의는 세계의 여러 개발 도상국들로부터 혐오와 반발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고, 일본 정부는 수원국 경제 발전에 필요한 기계류와 원자재를 공급하며 그 상환조건도 대폭 완화하여 저리(低利)로 할 것임을 발표한 바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일본은 21세기 경제대국으로서의 여력을 모아 미,일을 축으로한 세게 신 질서의 장을 마령해 보겠다는 평화유지군의 에드벌룬을 띄우면서 정치적 대국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도쿄의 이모저모

긴자의 뒷거리엔 신기한 곳도 많다. 한 빌딩에 1백개 이상의 간판이 다채롭게 붙은 데가 있다. 이른바 바(Bar)빌딩인데 지하에서 6~7층까지 몽땅 1백여개의 바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아사쿠사는 서울로 치면 청량리랄까. 스트립쇼며 반라의 쇼로 밤 깊는 줄 모른는 먹자판 마지자판의 환락가- 긴자가 돈 많은 올드맨의 거리라 하여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반면 신쥬쿠는 젊은 남녀와 샐러리맨들의 열기로 살아있는 거리다.

제2차 대전 전만 하더라도 변두리의 한적한 거리에 불과했던 신쥬쿠는 전쟁이 끝나고 부터 번화가로 클로즈업되어 이제는 긴자를 앞지르는 곳으로 탈바꿈, 땅값도 긴자와 맞먹을 정도. 젊은 활기 그리고 개방적이면서도 다정한 거리 신쥬쿠는 폭발하는 인파의 거리로도 유명하다.

도쿄에는 도쿄 특유의 '맛'이 있다. 초밥, 튀김, 장어, 메밀국수가 도쿄를 대표하는 미각으로 돼 있다. 초밥의 경우 다랑이를 재료로 한 초밥 이외의 것은 대체로 오사카의 것이 맛이 나으므로 반드시 도쿄의 초밥이 일본에서 제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초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전어초밥에 있어서는 많은 초밥집 중에서 '구단아래(九段下)있는 '스시마사'의 것이 제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전통의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장어는 도쿄 제일로 일컬어지던 교오바시의 코마쓰가 양심적인 요리를 만들 수 없다하여 폐업해 버렸지만, 긴자의 치쿠요오와, 후까가와의 이야끼와 등이 옛 맛을 지니고 있다.

메밀국수 본래의 맛은 간다의 이케노바다, 아사쿠사의 아부, 아사부의 나가사끼시라시, 이케부쿠로의 이지후사에서나 맛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서민 요리로서 아귀냄비, 닭냄비, 미꾸라지 요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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