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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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름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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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치료의 마지막 날, 그녀의 사진을 다시 찍었다. 그리고 치료 전과 치료 후의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그녀에게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서는 여드름 자국만 흐리게 남아있을 뿐, 처음 사진과 달리 붉은 기운도 없어지고, 맨 얼굴의 피부도 뽀송뽀송하게 윤이 났다.

비 오는 오후, 잠시 틈을 내어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다. 다기 주전자에 녹차 잎을 띄우고 그 향기를 맡는다. 창으로 밀려드는 부드러운 빗방울과 녹차 향의 싱그러움이 잘 어울린다.

오랫동안 무월경으로 고민하던 환자가 치료 후 감사의 선물로 보내온 녹차였다. 곡우 전에 따서, 우전(雨前)녹차라 하던가. 차나무의 어린 새순이라 그런지, 찻잔에 차 잎이 퍼지는 모습도 아기자기하다.

차 향기를 맡노라니 생리주기를 마침내 되찾았다며 웃던 그녀의 해사한 미소가 떠오른다.

간호사가 인터폰으로 다음 일정을 알려왔다. 잠시의 휴식을 서둘러 마무리하며 환자를 맞을 채비를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여성이 들어왔다.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도 그녀는 나와 눈길을 마주치려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온 얼굴이 여드름투성이였다. 마치 붉은 화산분화구 같은 상처가 얼굴 전체에 빽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여드름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 내 가슴도 함께 저릿해왔다.

그녀는 이제 26살, 한참 젊음을 꽃 피울 나이였다. 그런데 얼굴 여드름 때문에 남들 앞에 잘 나서려 하지 않았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했다 .

“중학교 때부터 이랬어요.”
그녀는 눈자위가 빨개지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여기 저기 유명하다는 피부과에 안 다녀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우연히 원장님이 쓰신 책을 보고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찾아왔습니다. 제 여드름의 원인을 알고 싶어요. 원장님, 저 꼭, 좀 도와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하다 못해 애원하는 듯했다. 부모님 중 아버님이 젊을 때 여드름으로 고생을 했을 뿐, 어머니는 피부가 깨끗한 편이라고 한다.

그녀는 회사에서 상품개발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업무 능력은 그녀를 따를 사람이 없었지만, 외부 손님을 자주 맞아야하는 업무의 특성상 외모에서 오는 컴플렉스가 날이 갈수록 커졌다고 했다. 뿌리 깊은 여드름 흉터 때문에 화장을 해도 잘 받지 않았고, 여드름 자국을 가리느라 갈수록 짙어져 가는 화장 때문에 여드름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했다.

‘ 얼굴이... 안됐네요... 관리 좀 하시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지나가며 한마디씩 던진 그 말들이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

그녀의 제반 증상을 살펴보니, 예상했던 대로 상열(上熱)타입이었다. 즉 체질적으로 화기(火氣)가 유난히 얼굴로 올라가기 쉬운 타입이었다. 평소 성격이 급한 편이라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것도 상열을 심하게 만든 한 요인이 되었다.

무려 13년여의 세월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여드름의 역사에서는 가슴의 열이 얼굴로 올라가면 얼굴이 쉽게 붉어질 뿐만 아니라, 그 열꽃이 여드름으로 피어나오는 원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 배란기와 생리 때만 되면 여드름이 유난히 심해지는 자궁어혈타입을 겸하고 있었다.

인체는 신비하다. 가슴의 열이 얼굴로 오르니 그 열을 토해내기 위해 피지분비가 활발해지고, 심해지면 염증반응을 일으켜 열꽃처럼 여드름이 튀어나온다.

상태가 가벼운 경우엔 얼굴 피부 관리만으로도 호전이 되기도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전반적인 체질 및 자궁어혈증상 개선과 함께 손상된 여드름 피부를 재생하는 특별한 피부관리프로그램을 적용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그 동안 치료와 관리를 통해 개선된 여드름 치료사례들을 들면서 그녀의 현재 상태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아울러 그녀 또한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 주었다. 그 희망이 그녀의 몸과 마음, 내부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여드름의 치료에 있어서 한의학적 처방은 근본적인 치료에 그 목적이 있다. 피부에 나타나는 여드름 치료와 관리만으로는 재발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를 찾는 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여드름이 속에서 올라오는 것 같아요.’하고 하소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우선 그녀의 치료 경과를 관찰해 볼 수 있도록 얼굴 사진부터 찍었다.
“제가 깨끗이 치료를 해 드릴 것이니 걱정 마세요.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시간은 얼마가 걸리더라도 여드름만 나을 수 있다면 원장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녀가 비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현재 여드름을 일으키는 원인을 잘 파악하고, 제가 제시하는 치료와 관리프로그램을 함께 지켜 나가셔야 합니다.”

환자 진료를 하다보면 간혹 안타까울 때가 있다. 최소한 3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체질 개선이 되어 완치가 될 수 있는 병임에도, 4주 정도 치료하다가 병세가 호전되는 기세가 보이면 스스로 치료를 중단해버리는 경우다.

물론 4주의 치료만으로도 건강하게 유지해 나간다면 다행이지만, 이 경우 재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게다가 여드름의 경우, 한의학적 치료는 일시적으로 외용약을 발라 잠시 여드름을 사라지게 하는 국부적인 피부 관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재발을 방지하는 몸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증상과 체질 개선을 위한 치료 기간이 필요한데, 이를 참지 못하는 경우를 이따금 보아왔기 때문이다.
“저, 사실 직장을 그만둘까 생각했을 정돈데요, 낫기만 한다면야...”

그녀는 내게 굳은 다짐을 하고 그날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녀와 함께 1단계로 3개월 프로그램을 짜고 치료와 피부 관리를 시작했다. 여드름을 일으키는 원인은 몸의 치료로 해결할 수 있지만, 여드름으로 이미 손상받은 피부는 소염, 진정, 재생의 피부 관리 과정을 거쳐야 말끔한 피부로 비로소 탈바꿈할 수 있을 터였다.

주된 치료는 단계적으로 상열을 풀어주고 자궁의 어혈을 해소하는 한약 처방과 침, 뜸을 이용한 치료였다. 한방에스테틱에서도 그녀의 피부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했고, 그녀의 치료는 늦봄에서 한여름까지 이어졌다.

1단계 치료의 마지막 날, 그녀의 사진을 다시 찍었다. 그리고 치료 전과 치료 후의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그녀에게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서는 여드름 자국만 흐리게 남아있을 뿐, 처음 사진과 달리 붉은 기운도 없어지고, 맨 얼굴의 피부도 뽀송뽀송하게 윤이 났다.

때마침 꺼내든 그녀의 핸드폰에서는 말끔하게 화장한 모습의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고, 늘 풀이 죽어 어두웠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서려있었다.

피부질환은 비단 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피부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려면 몸 전체의 건강이 좋아야 한다. 인체의 음양(陰陽) 균형이 잘 맞을 때 건강한 것이고 그 균형이 깨지면 질병이 발생한다. 그 깨어진 균형을 의사가 일시적으로 맞춰줄 수 있지만 그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건 바로 환자 자신의 몫이다.

‘내 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한의학의 기본은 바로 음양(陰陽) 이론이다. 인체에 있어서 상체는 양에 속하고, 하체는 음에 속한다. 양에 속하는 상체에서는 따뜻한 불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고, 음에 속하는 하체에서는 서늘한 물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 기혈순환을 활발하게 일으켜야 수승화강(水昇火降: 우리 몸 하체의 물 기운은 상체로 올라오고, 상체의 불 기운이 하체로 내려가야 건강한 균형상태를 이룬다는 원리)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생명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우리 몸은 크게 세 부분(삼초)으로 나눠볼 수 있다. 심장을 중심으로 한 윗부분은 상초(上焦), 위장을 중심으로 한 중간 부분을 중초(中焦), 자궁과 신장을 중심으로 한 아랫부분을 하초(下焦)라고 하는데, 상초, 중초, 하초의 기가 서로 잘 통해야 몸이 건강해서 피부가 좋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만약 이 기가 잘 순환되지 않으면 피부 건강의 기본 원리인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스트레스로 상초에 화기가 쌓이거나, 소화가 되지 않아 중초가 막혔거나, 자궁 어혈로 하초의 기운이 가로막히면 상체의 따뜻한 불의 기운이 하체로 내려가지 못하여 손발은 싸늘해지고, 반대로 서늘한 물의 기운이 상체로 올라오지 못하면 상체의 열이 식지 못하고 계속 쌓이다가 결국 뜨거운 열기운으로 치받아 올라가 얼굴로 터져 나오고 만다. 이것이 바로 여드름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녀의 경우, 상열 증세가 비교적 심한 편이어서 정서적으로 차분하고 안정된 마음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화를 내는 것도 피부에 열을 올려주는 한 원인이 되므로 가능한 자제하는 게 좋다. 또한 불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물을 보충해주는 지혜가 필요한데, 물을 많이 마시거나 잠을 푹 자는 것도 물을 보충하는 한 방법이다.

2단계로 사후 프로그램 관리를 꾸준히 받던 그녀는 종종 홈페이지에 인사를 남기곤 한다. 자신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고도 했다.

그녀의 소원이던 ‘피부미인’의 꿈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그녀의 삶이 좀더 맑고, 차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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