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이 인생의 품위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유무형의 훌륭한 금자탑을 세우고 간 위인들이 하늘에 가물거리는 은하수처럼 많다. 장소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을 하는 사람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에도 눈에 많이 띤다. 어쩌다 지위는 올라갔지만 판단력 수준이 미천한 경우다. 어떤 장관이 미국 장군들과 파티를 하면서 건배를 할 때마다 “메니 드링크”를 연발했다는 이야기는 파다하게 퍼진 공지의 사실일 것이다.
분위기를 읽는 직관과 그에 대응하는 순발력 있는 센스 그리고 그 센스를 표현하는 언행의 컬러, 그런 직관, 그런 센스, 그런 컬러는 언제 가꾸어 지는 것일까? 물론 배움에 시기가 없는 것처럼 그것들도 일생 내내 가꾸어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에 집중적으로 그 줄기들이 형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 가꾸는 매너는 계산이 깔린 매너일 수 있다. 때문에 자연미가 없고 실수가 많고 앞뒤가 다를 수 있다. 나이가 어려 감수성이 예민할 때 형성된 인격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미가 흐른다. 저-고급을 막론하고 음식점에 가서 무엇을 주문하고 요구하는 언행에서도 인격과 품위와 정서의 물기가 흐른다.
이런 것들,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것들을 기르는 시기는 언제일까? 고등학교에서는 학습하는 능력과 인지의 센스와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기초 소양을 쌓는 계절일 것이다.
그러면 대학교에서는? 폭넓은 독서의 계절이요, 외로움과 싸우는 사색의 계절이요, 미적 감각을 기르는 계절이요, 웅대한 상상력으로 꿈을 키우는 계절일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고독하고 가장 낭만적인 인생을 사는 계절이 바로 대학의 계절일 것이다. 육체의 에너지가 많은 만큼 축적하는 것도 많아야 하는 그런 계절이 청춘을 묻고 사는 대학의 계절일 것이다.
대학이 이런 폭넓은 소양과 교양을 쌓는 계절이라면 대학원은 무슨 계절일까? 교양을 쌓는 계절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쌓는 계절이다. 무엇을 전문으로 하든지 간에 전문분야로 들어가면 그 키워드는 분석(analysis)이다. 대학시절의 ‘폭넓은 교양’과 대학원 시절의 ‘분석’에는 분명 학문상의 신분 차이가 있다. 대학은 4년, 석사과정은 2년이지만 대학과 대학원 사이에는 학문상 엄청난 신분 차이가 있다. 대학원에서는 응용능력이 필수이지만 대학에서는 그게 필수가 아니다. 응용능력과 재창조 능력 없이는 대학원 2년을 마칠 수 없다.
석사과정은 2년이지만 박사과정은 표준이 3-4년이다.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미국의 경우를 보면 석사과정은 하루에 6시간을 자고, 받는 스트레스는 박사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50% 정도일 것이다. 박사과정에서는 하루에 4-5시간 자고 받는 스트레스는 석사과정의 2배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전제로 하고 한번 생각해 보자. 이 세상의 모든 순간들은 다 문제요 의사결정을 요하는 순간들이다. 같은 현상, 같은 문제를 놓고 대졸 출신이 판단하는 것과 석사출신이 판단하는 것과 박사출신이 판단하는 것에는 물론 예외적인 노이즈현상들이 있겠지만 그 줄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보의 질은 판단력의 질이다. 재판의 질도 판단력의 질이다. 인생의 품위도 판단력의 질이다. 대통령도 판단을 하고 정치인들도 판단을 하고 장관과 공무원들도 판단하고 회사의 경영자들도 판단을 한다.
사회가 복잡하고 규모가 커질수록 판단력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선진국들은 판단력 훈련을 한 석학들을 고용하여 판단(의사결정)을 하지만, 한국은 고등학교 출신과 대학교 출신들이 직접 판단한다. 판단력의 질도 문제이지만 거기에 더해 이념적 색깔이 덧칠돼 있다.
무식자가 식자를 몰아내고 무식하게 사회를 휘두르고 있으니 어찌 타이타닉호가 침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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