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는 옷을 벗어 옷걸이가 있었지만 집에서처럼 구석에 차곡차곡 쌓았다.
“당신 먼저 샤워하고 오시죠?”
침대에 누워 있는 훈이를 흔들었다. 그때 마침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요란했다. 연지는 잽싸게 쫒아가서 핸드백을 열어 젖혔다. 무슨 소린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훈이의 모든 신경은 핸드폰에 가 있었다.
“당신이야? 친구 만난다니까”
“일찍 갈 거야.”
“응, 그래요. 알았어요."
연지는 단 세 마디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핸드백 속에 집어넣었다.
“남편이야?”
훈이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톤이 굵었다.
“응,”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나한테는 매일 싸운다고 하지?”
“그럼 전화인데 싸움이라도 하란 말이에요? "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찍 간다면서?”
“일찍 간다고 해 놓고 늦을 수도 있지 뭐”
“불안하잖아.”
훈이는 퉁명스레 뱉어 놓고는 벌떡 일어났다.
“우리 둘이 있을 때 왜 남편 이야기를 꺼내세요. 이렇게 부담을 주시면 저는 만날 수 없어요. 집안이 편안해야 당신을 만나는 것이 부담 없어요. 노골적으로 거부하게 되면 미행할 우려도 있고요. 어저께는 핸드폰에 찍힌 전화번호를 놓고 한바탕 싸웠어요. 누구냐고 따지지 않겠어요. 사생활을 침범하지 말라고 했더니 뒷조사를 해봐야겠다느니. 아이들만 없으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갖고 나오고 싶었어요.”
연지의 표정은 빳빳이 굳어 있었다. 훈이가 아이들처럼 보챌 때는 연지는 미칠 것만 같았다. 언젠가의 일이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핸드백 때문에 훈이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 남편이 외국 나갔다가 오면서 핸드백을 사 왔는데 고리가 한개 빠져 나가 고리를 사러 백화점을 이 잡듯이 다녔다는 이야기와 핸드백이 따를까봐 아까워서 들고 다니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가 일주일이나 삐쳐 말도 하지 않은 적이 있다. 괜히 말을 꺼내 훈이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후회했지만 밖으로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연지는 훈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을 때는 핸드폰을 꺼야 하는데 급하게 방으로 들어오면서 끄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꺼 놓으면 남편은 분명히 핸드폰을 꺼 놓고 무엇했느냐고 따질 것이 뻔하다. 둘 중에 하나는 버려야 하는데 두 가지를 갖기는 너무나 힘이 든다는 것을 연지는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 힘들어. 나를 좀 풀어줘. 이렇게 옥죄이면 나는 자신이 없어.”
연지는 벗다 남은 옷을 더 이상은 벗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지잔 말인가?”
훈이는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았다.
“우리 두 사람이 만나면 되었지 전화의 내용이 뭐냐고 따지면 나는 어떻게 해요. 남편은 의무감 때문에 있는 것이지 내 모든 것은 당신이 다 가져가 버리지 않았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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