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소개로 찾아온 19세의 Y군. 뺨과 턱 밑에 여드름이 두텁게 깔려 있었다. 공부를 잘해서 일본의 D대 장학생으로 유학할 예정이었는데, 떠나기 전에 두 달 동안만이라도 피부 치료를 하겠다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여드름의 원인을 ‘위장이 나빠서’ 이라고 진단하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그는 원래부터 소화기가 약해서 먹는 족족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유학 준비를 하면서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점점 더 위장 장애가 심해졌고, 고질적인 위장 장애가 우리 몸의 상초, 중초 하초를 순환하는 기운의 흐름을 막게 되었다.
기 통즉불통, 기 불통즉통(氣 通則不痛, 氣 不通則痛). 한의학에서 바라본 우리 몸 건강의 기본 원리이다. 기운이 몸 아래위로 잘 통하면 아플 일이 없지만, 기운이 어딘가 막혀 통하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위장은 우리 몸의 중심, 즉 중초의 기운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그런데 정 가운데가 소화불량으로 꽉 막혀있으니 기운이 흐르지 못해 몸 위쪽의 열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로 올라가 버리는 거예요. 그걸 한의학에서는 상열(上熱)이라고 하지요. 상열이 얼굴로 터져 나와 화농성 여드름이 된 겁니다. 손발이 유난히 찬 원인도 열이 아래로는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거랍니다.”
특히 그는 유학 준비를 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심장의 열까지 얼굴로 치받아 올라가 증상이 더 심해진 경우였다. 나를 찾아왔을 당시에는 이미 피부과에서 여러 번 필링 치료를 받았지만 별반 효과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왜 하필 얼굴에 여드름이 나나요? 이왕이면 발바닥처럼 남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데 나면 좋잖아요.”
역시 모범생다운 질문이었다.
“우선 이것부터 생각해봅시다. 한의학의 기본 원리인 ‘음양 이론’에 근거해 인체의 음양을 나눌 때 상체는 양에 속하고 하체는 음에 속합니다. 얼굴은 상체에서도 제일 위에 있기 때문에 양중(陽中)의 양(陽)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굴은 추위를 덜 타는 이유가 바로 얼굴의 양 중의 양이라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양의 속성을 가진 얼굴에 생기는 피부질환은 대부분 열이 원인인 거랍니다. 또 우리 몸의 내부 장기 기혈의 순환 통로인 경락들이 다 얼굴로 모이기 때문에 오장 육부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경락이 지나가는 얼굴 부위에 여드름이나 트러블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얼굴은 그냥 얼굴이 아니라 몸 속 건강의 거울이나 마찬가지다. 인체 경락의 집합체인 얼굴. 그얼굴에 트러블이 생겼다면 바로 오장육부의 건강 상태부터 체크하는 것이 옳다.
“얼굴에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여드름은 대개 소화기 장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태어날 때부터 열 체질인 소양인이나 열이 많은 태음인이 여드름 때문에 고생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피부 트러블이 생겼다면 위장부터 점검해보는 게 좋아요.”
만약 여드름 체질이 아닌데도 양쪽 뺨에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난다면 십중팔구 위장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이마에 빨간 뾰루지가 꽃을 피웠다면 심장이나 소장, 대장이 안 좋아서 몸 안에 독소가 쌓인 경우다. 또 입과 턱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 신장이나 방광, 여성의 경우에는 자궁을 체크해보아야 한다.
우선 그의 배에 손을 대고 복진(腹診)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위중(胃中) 담음(痰飮)이 심한 상태였다. 위중 담음이란 쉽게 말해 위장에 노폐물이 많이 쌓여있다는 얘기다. 간 혹 ‘배에서 물소리가 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위중 담음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의 경우는 원래 비위의 기운이 허약해서 담음이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평소에 자주 먹는 인스턴트 식품이나 유제품, 밀가루 음식도 담음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치료 기간 동안만이라도 반드시 찹쌀밥을 먹게 했다. 찹쌀은 위장에 부담이 없고 비위 기능을 튼튼하게 해주는 치료보조제로서 손색이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역시 그는 모범생답게 꾸준히 한방치료와 여드름피부용 화장품 처방, 한방에스테틱 관리를 받았고 치료를 시작한 지 8주가 지나자 그의 모습은 놀랄 만큼 달라져 있었다.
유학을 떠날 즈음에 찾아온 그는 얼굴색이 훨씬 맑아져 있었다. 복진을 해 보아도 위중담음이 많이 줄었고, 무엇보다 소화기능이 좋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화가 잘 되니 중초의 기운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그 덕분에 열이 위로 치받아 올라가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되었다. 턱 밑에 여러 개 나 있던 결절성 여드름도 거의 흔적만 남아 있었고, 몸이 편안해져서인지 그의 말투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지금 머나먼 이국 땅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그의 여드름은 지금도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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