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자는 추억을 먹고 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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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자는 추억을 먹고 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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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호실은 3층 복도 제일 끝에 있었다. 연지는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문을 닫고 열쇠를 벽에 붙어있는 열쇠 함에 꽂았다. 그래야만 전원에 불이 켜지기 때문이다.

방은 다른 방보다 평수가 넓고, 북한강을 내다볼 수 있어 비싼 편이다. 천장은 거울로 만들어져 있어 옷을 벗고 누우면 온 전신이 눈에 들어와서 성적 자극을 더해 주도록 꾸며져 있고 원형 물침대며 한쪽 구석에는 온갖 성행위를 즐길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여러 번 이 방을 이용했지만 단 한번도 의자를 사용한 적은 없다.

연지는 커튼을 걷고 수상스키를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무엇이라도 발견한 듯이 훈이를 창가로 불러냈다.

“저기 좀 봐요.”
훈이는 연지의 곁에 와서 어깨에 손을 갖다 얹었다. 갈대밭이 있는 저 편에 두 연인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나이가 많이 들어보였다.

“저 사람들도 부부는 아니겠지요?”
“그럴 테지.”
“고등학교 3학년 때 생각이 나요. 내 옆에 앉은 정아라는 짝꿍이 있었는데 공부를 잘했어요.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 얘 것을 슬쩍슬쩍 보고 적어 넣어도 상위권에 들었거든요. 그래서 공부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 버릇을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부인 있는 남편을 커닝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인생살이가 모두 커닝이잖아. 그리고 남의 것을 도둑질해서 먹는 것이 더 맛이 좋거든. 내 것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더 맛있어 보이잖아.”

“그것도 그래요. 내 남편이 아무리 잘하려 해도 마음에 들질 않아요. 당신이 몇 배 좋으니 말입니다.”

연지는 얼굴을 훈이의 가슴에 파묻었다.

“우리는 절대 이별하지 말아요. 당신이 날 버린다면 저는 죽고 말겁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새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가 흙이 신발에 잔뜩 묻었는데 아무리 씻어도 새 운동화가 될 수 없듯이 이젠 새 운동화로 돌아갈 수 없어요. 이미 마음속 깊이 흙이 묻어버렸거든요. 그래도 후회는 절대하지 않아요. 흙이 묻은 운동화에는 흙이 묻은 만큼 추억이 묻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여자는 추억을 먹고 산답니다. 당신이 생각날 때면 당신이 주고 간 선물을 들여다보고 만끽하지요. 거울 앞에 앉으면 생일선물로 사준 영양크림이 생각나고 손을 비빌 때면 당신이 사준 반지를 들여다봅니다. 그러니 당신의 얼굴을 지울 수 없어요. 온통 나를 사로잡아 둡니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거들이며, 팬티까지도 모두 훈이가 사 준 것이었다. 힙이 올라가는 거들이 있다며 당신을 위해 잘 보이려고 하니 사 달라고 졸라대면 주저 않고 사주기도 했다.

연지를 사랑하는 데는 오랜 세월도 약이었지만 그만큼 투자한 금액도 상당했다. 아내가 입고 나갈 원피스 한 벌 사달라고 졸랐지만 돈 없다고 한마디로 거절하면서도 연지에게는 손가락에 비싼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연지가 돌아설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꾸어 온 화초인데 이젠 버리기에는 투자한 돈이 너무 아까웠다. 연지에게는 훈이가 투자한 대가만큼 제공할 것이라고는 야들야들한 팔등신 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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