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사랑으로 새해 인사를
스크롤 이동 상태바
지겨운 사랑으로 새해 인사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을 쉽게 빌려쓰면 깊은 함정에 빠져

최근 몇 건의 상담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내용이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상담한 내용에 대해서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반적인 내용만을 뽑아서 편지 형식(?)으로 이곳에 올려봅니다.

뉴스타운 가족 여러분.

나는 내 주변에서 인간관계의 기본 틀, 진행 과정, 문제 처리 방식이 잘못되고 서툴러서 본의와는 관계없이 서로 실수하고 싸움까지 비화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상당히 심각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상담해주었습니다. 이들은 최초 "사랑"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내 생각에는 사랑은 거론할 수준조차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면으로 받아쳐서 고정관념부터 깨뜨리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대면해보면 상대방을 깨부술 필요 없이 곧바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정관념부터 깨지 않으면 아예 이야기를 시작조차 할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를 언급하면서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세상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일과 이치와 사건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과의 사랑조차 평소에 진지하게 준비하거나 연구하지 않고 그럭저럭 지냅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터지면 허겁지겁 변명하고 합리화하기에 바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서로 싸우면서 최초에 만난 목적을 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근본조차 잃어버리고 악담과 악질 노릇까지 불사하면서 인간미나 정의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가 평소에 인간미나 사랑을 함부로 취급하고 살았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비교 방법이 선진국일 것 같습니다. 선진국은 우리처럼 관계 중심의 문화 자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고, 완벽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미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완성인 존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또한 혼자 힘으로 극복하겠다고 산으로 수양하러 가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수양했다며 나와서 자신이 일반인보다 높은 자리에 당연히 올라앉는 일도 없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장점을 모아서 협력해서 해결하는 쪽으로 지혜를 모아서 곧바로 실천에 옮깁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인간관계나 사회 문화를 관계 위주로 만들어버리면 항상 양화가 악화에게 끌려 다니며 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오랜 인류사를 통해 보았을 때 관계 중심의 문화는 순진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모순적인 것은 순진한 사람일수록 관계 중심의 문화에 잘 빠져듭니다. 뿐만 아닙니다. 순진한 사람일수록 쉽게 헤어나지도 못하며 헤어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수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미를 발휘하느라 최선을 다하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보람이나 가치로 여기며 기꺼이 감수합니다. 이는 개인적으로는 무지함이 원인이며, 더 이전에 문화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세뇌 당한 때문이며, 악화의 수법에 최면이 걸려버린 탓입니다.

그래서 서양이나 특히 미국은 개인의 존엄성과 사회분위기가 개인들의 사소한 관계들에 의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말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비나 싸움이 거의 없으며 그럴 소지를 대부분 없애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잠시 만나서 헤어지는 사람끼리도 웃음을 전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또한 틈만 나면 즐거운 농담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대에게 기쁨을 전달해주고 전달받습니다. 그렇게 서로 알아서들 표현하고 관계하지만 예의나 예절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랑이나 인간미를 빙자해서 상대방의 자유를 침범하고 간섭하고 제약하지도 않습니다. 제약할 기준이나 원칙이나 형식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아예 없애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선진국일수록 사회 문화 의식 전반에 대해서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는 가정 속에 방치해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 특히 인간관계는 항상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런 전제하에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를 세밀하게 대비해서 서로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혹시 문제가 발생되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그리고 문제보다는 서로 유쾌함을 주고받도록 세밀하게 확인해서 아예 불협화음의 소지는 줄여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를 방치하면 사회분위기까지 악화되어서 인생과 사회와 역사가 복잡하고 혼란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회라는 주제에도 충실하고, 개인에게 필요한 자유에도 충실하고, 서로의 관계에도 충실한 명료한 사회 문화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부터 상호 관계는 물론이고 차별조차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더구나 차별을 아예 없애려고 하기보다 모두들 양반이 되고 관료가 되려고 족보를 위조하고 뇌물을 쓰는 사회였습니다. 이런 비열한 의식과 만행들은 개과천선하고 석고대죄를 해도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도 이러한 사회적 안목에서는 인식조차 없이 오직 자기를 붙들고 합리화나 미화하기에 급급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 후진국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착하고 선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이 악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나라 정치인과 공무원과 선진국까지 모두 비난합니다. 또한 오직 자기들 생각대로만 살기 때문에 남들이 이렇든 세상이 저렇든 결국 그렇게 망하든 속수무책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각종 미사여구는 모두 붙들어서 미화하고 장식해서 무진장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 관계나 몸담은 사회를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엉망진창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남의 탓을 많이 해버려야 자신은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살면서도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시비나 손해라도 생기면 결코 좋게 진행하지 않습니다. 몽땅 떠넘기고, 바가지를 씌우고, 일확천금을 하려고도 합니다.

심지어 사회정의나 아름다운 사랑을 수없이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약간이라도 개인 감정이 상하면 토라져서 비난과 악감정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런 수준으로는 사랑과 사회정의는커녕 자기 인생조차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이론이나 이성이나 상식을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설명이 불가능한 웃기는 모순덩어리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처럼 적당히 살다가 일단 문제가 터지면 아주 복잡해집니다. 나는 이에 대해서 수많은 관점으로 들여다보고 수없이 정리하고 점검해서 나름대로 최상의 모델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 연구하고 입증하는 방법으로 우리 가정에서 가족을 상대로 실제로 적용하고 지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내와 아들(고3과 중1) 둘입니다.

우리 집은 최근 1-2년 동안 서로 얼굴을 찌푸린 일이 단 한번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5년을 본다면 아마 1번이든지 많아도 2번일 것입니다. 사실은 기억이 없으니 적당하게 1-2번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평소에 각자 알아서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지냅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욕 섞인 장난말과 웃음소리는 반복됩니다. 사실 우리 가족은 존댓말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서로가 친구처럼 반말이나 막말을 주고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개를 숙여서 인사도 하지 않습니다. 형식이나 가식이나 꾸밈이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스스로 지닌 존엄성을 위주로 스스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체계가 잡혔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는커녕 남의 집의 단란한 가정을 함부로 취급하고 평가하는 등 자기 수준 이상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만일 우리 가족이 다른 사람이나 가족을 보았을 때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는 우리 수준 이하로 보는 정도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야만인이나 미개인이나 흑과 백을 반대로 주장하는 위선자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존엄성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글이라 일방적으로 심하게 표현해서 죄송하지만 양해 바랍니다. 내가 심하게 표현하는 것은 고정관념이나 어리석음을 합리화해버린 사람들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성적이고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이치에 설득되어서 자신을 바꾸거나 양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한계에 봉착되면 변명하다가 상대를 무시하거나 공격까지 해댑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 보호막으로 숨지 못하도록 신경을 거슬리거나 감정을 건드리는 방향으로 글을 쓰거나 접근합니다. 괜히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설사 나에게 처음에는 감정이 상하거나, 반발을 하더라도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되돌아볼 기회라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합리화나 미화를 해버린 사람이나 사회나 국민들은 항상 스스로 좋아지기보다는 기어코 버텨보다가 뼈아픈 고통이나 혼란을 대가로 지불한 이후에 다시 가능할지 불가능할 지가 확인되게 됩니다. 이는 이중으로 피곤한 답답한 짓이지만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빈 병에 물을 붓는 것과 오염된 병에 물을 붓는 것과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율적으로 좋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항상 먼저 그 사람의 실체(그릇)부터 깨부수는 작업부터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사람은 자기를 보호하거나 미화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용하기 싫어하고 실제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낱말이 두 개 있습니다. 이는 "사랑"과 "완벽"입니다. 이 두 낱말은 내 책이나 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혹시 남의 말을 인용하거나 일반적인 표현에서 한 두 번은 사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랑"에 대해 정리하면서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상투적인 자기 변명으로나, 이기적인 심리와 어리석음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나, 감정적인 정서나 분위기와 야합할 때나, 더 이상의 반성과 깨우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무를 때나, 이후 습관적인 버릇처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사랑"이란 단어를 쉽게 사용할 때마다 오히려 속이 들여다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임시로 "사랑"이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아픔과 상처는 물론이고 생활 속의 불편과 다양한 심정들을 자신이 먼저 깨달아서 상대방이 모르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해서 승화하는 연속적인 과정을 가친 이후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어서 상대와 함께 하는 밝고 명랑한 생활과 분위기」라고 정의를 내려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나는 "완벽"이라는 단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듣기 싫을 정도로 완벽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제 글(우리 국민성의 총정리)에도 있지만 "100% 완벽한 사람, 사회, 나라, 시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는 초등학교 어린이도 알고 있을 정도로 상식적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만일 100% 완벽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병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논리나 능력에 한계를 느끼면 상대방이 마치 100% 완벽을 주장하는 것처럼 함정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100% 완벽할 수 없다."는 상식적인 쪽에 서버립니다. 이는 상대방을 완벽이나 꿈꾸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이는 자신의 무지함을 만회하기 위해 상대방을 유치원 수준이나 정신병자로 몰아버리는 진인하고 야비한 짓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은 상대방의 말이나 주장을 듣고 나서 "100% 완벽할 수는 없다."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화 중에 "완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평가절하를 하고 상대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를 점잖게 지적해서 안 듣는 사람은 이후 진실한 대화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화가 진행되다가 정말 흉금을 털어놓고 서로를 확인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보람을 맛보아야 할 때가 되면 자신의 방어 막 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해보면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간 나는 이런 사람들이게 너무 많은 정열을 쏟아보았으며 시간도 많이 낭비했습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아름다움", "사랑", "정의", "순수", "진실" 등의 단어들도 진정으로 세상과 상대방을 위하고 "아름다움"과 "사랑"과 "순수함"과 "정의"와 "진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기 위해 동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 문제가 되어 있는 실상의 1%부터 99%까지의 내용을 속속들이 확인하면서 문제를 분석하고 연구하고 집중할 능력도 애정도 관심도 생각조차 싫은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능력이나 애정이나 자질이 떨어지면 진지하게 자세를 갖추고 배운다든지, 진심으로 묻든지, 미안하게 생각하든지 해야 하는데도 금새 주제를 피해서 완벽이란 단어를 붙들고 늘어지면서 합리화하고 회피해버립니다. 결국은 인류 역사가 수십 만년이란 긴 세월과 똑같은 과정을 지나왔지만 오직 자신은 자기 수준일 뿐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내 아들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육체의 성장은 몸 바깥에서 몸 안으로 (음식물을)가져와야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신의 성장은 반대로 계속 자기 것을 바깥으로 내다 버리고, 몽땅 버리고, 계속 버려야만 꼭 그만큼 성장이 가능하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자기 것을 손해본다거나, 빼앗긴다는 의식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내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거나 생각을 고수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당연한 것처럼 배우면서 다양한 관점과 소재로 대화가 가능합니다.

나는 연애 박사라고 말할 정도로 여러 번 사랑을 경험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좋게 지내던 사람들의 무질서하고 갑작스런 태도에 놀라고 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물론 내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스스로 연거푸 놀라면서 더욱 솔직해졌습니다. 이후 깨우침에 탄력이 붙었으며 생활과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무의식과 의식을 투명한 물 속을 들여다보듯 모두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모든 관계나 현상들을 상식적이고 유기적으로 분석하고 연결시켜서 존엄성을 극대화해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나와 직접 대면했던 사람 중에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배워서 전혀 다른 자신을 찾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찾은 것이지 내가 해준 것은 절대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이 고민하다가 직접 두드리고 회의하며 고민하다가 솔직해지지 못한 사람은 절대 자기 스스로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내용으로 깊이 파고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람들은 엄청난 세상 이치, 의미, 교훈들을 대충 보고 들어본 정도의 수준으로 대부분을 자기 자신에게 가져다 붙여놓습니다. 이는 자신이 끊임없이 반성하고 변화하는 등 진지한 과정에 충실하기보다 지극히 초라한 자기 앞으로 세상의 엄청나게 수중한 낱말들을 가져다 붙여놓고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쓰고, 변명도 하고, 합리화도 하고, 미화도 하고, 갖가지 요령도 피웁니다.

이런 삶은 꼭 자기 자신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인류가 되풀이했던 방식이며 지금도 그렇게들 살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 한계를 이미 자기가 정해놓은 것입니다.

둘째, 초라한 자신부터 먼저 붙들지 않고 세상이나 사회나 역사나 진실 등을 두루 구경하고 확인하면서 그대로를 느끼고 배워가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것을 억지로 붙들거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거나, 자기와 연관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바꾸거나 깨뜨리는 힘든 과정이 없어도 쉽게 배우며 향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려서부터 비교나 차별에 주입되지 않고 순수하게 자라난 선진국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미리부터 의식이나 습관에 멍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치나 사물이나 상황을 순수하게 바라보고, 순수하게 생각하고, 순수하게 몸담고, 순수하게 선택하고, 순수하게 행동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진국은 어릴 때부터 각종 이유를 붙들고서 순수함에서 빗나가고, 선입견과 편견에 붙잡히고, 서로 비교 당하고, 경쟁까지 해대면서 곳곳이 멍들기 때문에 매사를 자기 자신과 연결짓는 습성이 세뇌된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진국은 배우지 못해도 열등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차이나 차별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열심히 배워놓고도 열등의식을 갖는 희한한 나라입니다. 또한 지식이나 배움이나 공부를 최고로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충분히 배웠지만 성공이나 이익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이익 계산에만 밝습니다. 때문에 배울수록 계산에 급급한 나머지 오히려 실천에서 국민적인 장애가 생긴 것입니다. 이는 상식이나 교육이나 지식으로 해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나라이며 국민이며 인간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부모들은 배우지 못하고 계산도 하지 못했기에 자녀를 10명도 낳아서 길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우고 훨씬 더 잘 알면서도 자녀를 1-2명만 낳거나 아예 낳지 않기도 합니다. 또한 1-2명인 아이조차 제대로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배움으로 수없이 계산함에도 불구하고 겨우 자기 계산에만 익숙해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과 인생에 대한 주제 파악과 애정과 열정은 빠진 채 단지 계산해서 계산이 맞아떨어져야만 움직이는 무능한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피곤하게 연구하고 앞장서고 개척하고 탐구하고 도전하겠습니까. 이공계 괄시와 기피 현상도 이런 의식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행복한 줄도 알아야 하며 얼마나 속물처럼 살았는지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 모습 그대로일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

상담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여기에 올려놓은 것인 만큼 나쁜 감정은 갖지 말아주기 바랍니다. 사실 상담할 때는 여기에 표현된 내용보다 훨씬 살벌한 대화와 분위기까지 갔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정리해서 체계적으로 들어가는데 사람들은 이리 저리 주제에서 벗어났다가, 변명하고 흥분했다가, 엉뚱한 사람이나 사건을 붙들고 둘러대거나, 자기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충실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살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 시작할 때는 들쭉날쭉 무질서한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후반에는 완전히 손을 들고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솔직해집니다. 그리고 오히려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꼬집어 달라고 사정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엄성을 새로 발견한 것은 물론이고 그토록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미쳐 몰랐다가 깨달은 때문입니다. 내가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아무리 가르쳐주려고 해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세상에서 유사이래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낱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약한 자신에게 곧바로 가져다 써버리거나, 자신에게 찰싹 붙여놓으면, 깊은 함정이 너무 많아서 지극히 위험하며, 더구나 엉망인 사회 속에서 자지 자신을 합리화하고 미화까지 해버리면 치명적인 독약이 되게 됩니다."라는 말로 간단히 요약하고 마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서 한 해의 모든 것을 하나씩 직접 만들어 가는 한 해가 되길 빌어드립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