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성에 대한 총정리
우리 국민성에 대한 총정리
  • 최익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05.01.1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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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잘못만 뒤지고 사는 철부지 국민성

취지

거의 모든 국민이 나라 현실과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절대 다수의 걱정과는 달리 실제로는 비난, 공격, 대립, 싸워서 끌어내리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우리 나라의 문제는 오 천년 동안 복잡하게 얽혀서 꼬여버렸기 때문에 국민들은 절대 스스로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원인 분석도 반성도 변화 발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피해자와 고통만 누적되고 있다.

여기서는 그간 우리 국민성이 왜곡되고 날조되면서 위축되고 망가진 국민성 전반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우리 역사, 문화, 국민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음양(陰陽)에서 문제를 찾아보았다.

이를 계기로 우리 각자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국민의식을 대대적으로 손질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특히 우리 현실과 장래를 걱정하는 등 의식이 살아있는 분들이 이를 통해 자신을 진지하게 살펴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

Ⅰ. 독재 정권이 직접 저지른 만행

1. 생명과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협박과 위협

독재 정권에 반발하거나 저항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위협, 신체적 고통을 직접 가했다. 체포, 구금, 투옥, 고문, 쥐도 새도 모르게 행방불명이 되기도 했다. 독재정권은 이들의 측근(친척, 선후배, 이웃 등)에게도 심한 피해의식을 주었다. 심지어 가족조차 외면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우리 국민은 이처럼 쫓기는 사람을 외면하면서도 독재정권은 무너지길 기대하는 등 마음과 행동이 서로 다른 이중성을 보였다.

우리 역사에서도 충신과 의인들이 모두 실패해서 유배나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서민들은 모른 척 외면하거나, 마음으로만 한탄하면 그만이었다.

2. 공포심과 두려움을 조장했다.

절대 다수 국민에게 생계 위협, 가족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 조성 등 각종 피해의식을 이용해서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감을 조성했다. 특히 언론 지상을 통해 "엄중 경고, 원천봉쇄, 체제 전복세력, 불순 세력, 단호히 대처, 강경 대응, 발본색원" 등 수시로 위협적인 발언으로 엄포 함에 따라 국민의 행동과 활동과 심리와 사회분위기가 끝없이 위축되어버렸다.

3. 은폐, 조작, 축소, 왜곡 등.

투옥, 고문 등 만행이 사실로 드러나면 진실이나 사건을 은폐, 조작, 날조, 왜곡, 호도, 축소했다. 또는 엉뚱한 사건을 터뜨려서 국민의 관심사를 의도적으로 돌려놓았다.

이 역시 "힘없는 사람은 아무리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이렇게 짓밟는데는 어쩔 수 없다."는 막연한 상황으로 지속되었다.

4. 국민 정서를 감정과 갈등으로 이끌었다.

국민성을 이용해서 이념대립과 지역감정과 반미반일 감정으로 유도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기성세대의 잘못을 끌어안고 나라 장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 일부를 정치 판으로 끌어들여서 선동하고 부추겨서 세대갈등을 일으킬 정도다.

Ⅱ. 독재정권이 국민에게 저지른 회유와 기만

1. 기득권과 봉건 서열이 우선하도록

바람직한 변화나 개혁개방을 방해하기 위해 과거 문화, 전통, 정서 등 과거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를 위해 과거 분위기나 정서적인 부분을 전면에 띄워서 여론을 주도했다.

① 자발적인 순종과 복종을 유도.

"동방예의지국", "충효사상", "어른 공경", "바른 예절"을 강조해서 감히 정권을 거역하거나 맞서지 못하게 했다.

② 순박한 사람들의 정서를 이용

"아름다운 금수강산", "하늘이 푸르고 물이 맑은 나라"를 선전해서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희석시켰다.

③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국민성을 이용

"단일 민족", "백의민족"을 강조해서 미래를 위한 개혁개방과 변화보다 오히려 전통, 문화, 과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유도했다.

④ 우수성으로 연결시킴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 "현명한 조상의 얼과 지혜" 등 우수성을 부각시켜서 정권의 정통성과 연결해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웠다.

⑤ 내면 문화를 강조

"겸양", "겸손", "중용", "인품"을 강조해서 선진국 문화나 유행이 경박하고 경솔한 것처럼 유도했다.

⑥ 똑똑하면 찍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유도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튀는 사람은 다친다."는 것을 경고함과 동시에 국민에게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게 했다.

2. 부와 출세를 미끼로 허수아비 역할을 시켰다.

과거 일제 치하에서 부와 출세를 위해 앞잡이가 된 사람이 많았다. 독재정권에서도 이런 꼭두각시들이 부지기수로 나왔다. 심지어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에 절대 복종하면서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또한 어용들이 나와서 적극적으로 활개쳤다. 이들 중에는 무지해서 허수아비 노릇밖에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일반인에 비해 학벌, 직업, 가문 등 외양이 번듯한 지식인들을 하수인으로 만들어서 국민을 우롱하고 선동하고 기만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다른 지식인들은 개인의 인격과 품위를 붙들고 지하로 숨어버렸다. 이 때도 지식인들은 현실 문제에 당당하게 대처해서 국민을 안내해주지 못하고 원망과 변명으로 사회적 책임을 기피했다. 그리고 음지에 숨어서 세태를 개탄하고 냉소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러나 답답한 국민들은 이런 사람들을 '정의의 사도'나 '민주주의 지도자'로 착각해버렸다.

3. 불가항력적인 국민성인 것처럼 무기력하게 만들어.

"반도 기질", "지정학적 환경과 조건" 등 우리 상황이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는 "아름다운 금수강산", "푸른 하늘과 맑은 물"이라며 마치 우리가 최상의 자연 환경을 가진 나라처럼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금새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것처럼 선전했다.

4. 스트레스나 울분을 발산시킬 기회와 통로를 제공.

다수 대중은 바르고 정의롭다. 하지만 군중은 단순해서 선동에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등 다혈질인 약점이 있다. 그래서 흥분하면 곧장 행동에 옮기지만 깊은 사상이나 철학이나 신념은 없다. 때문에 쉽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어쨌든 국민의 감정과 시간과 능력과 체력과 정신을 분산시키기 위해 스포츠로 유도했다. 또는 반미 감정이나 반일 감정이나 각종 사건으로 관심을 유도해서 울분과 감정과 스트레스를 발산시킬 통로를 제공해줬다.

5. 교육을 대기업의 일꾼 양성소로 몰아줘 버려.

최초에 우리 교육은 무지를 벗고 잘먹고 잘사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학문을 수박 겉 핥는 식으로 가르쳐서 우수 인력을 대기업으로 끌어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공무원과 중소기업과 노동 시장과 자영업에 차례로 편입되었다. 이는 암기를 위주로 필요한 사람만을 골라내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학문 연구나 지식 탐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겉 핥기 교육이었다.

때문에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으며 대기업에 취직하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대기업은 "xx 맨". "엘리트 집단"으로 불려지면서 "단일민족"이나 "백의민족"보다 월등한 그룹(양반 계급)에 포함된 셈이었다.

이렇게 국가 교육과 국가 정책과 법 제정을 대재벌들을 위주로 펴나갔다. 이런 대가로 정치권과 재벌, 공무원과 재벌은 더욱 깊이 유착되고 밀착되었다. 따라서 재벌 기업에서 거액의 정치자금 제공, 개인적으로 뇌물 수수, 술과 골프 접대, 각종 향응과 고액의 영수증 처리, 은퇴 후 협력 업체 경영, 기업 임원이나 사외 이사로 발탁 등 서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6. 각 단위의 벽을 두껍게 해서 여러 층의 기득권을 형성했다.

정권이 각 분야의 대표만을 상대하거나 취급해줌으로써 자신에게 도달되는 벽을 두껍게 쌓았다. 예를 들어서 각 종교의 대표들만 상대하고 추켜 세워주면 각 종교의 내부에서는 그 대표의 권위가 높아진다. 이렇게 각 단위의 대표만을 상대하고 나머지는 철저히 무시해버리면 그 대표를 밀어주고 키워주고 지원해주는 효과와 함께 정권의 권위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특히 이런 방식은 군사력에 의존하지 못했던 민간 정권에서도 활용했다. 우리 나라에서 이것이 먹혀들면서 더욱 기득권 천국인 나라로 전락되었다. 특히 종교계나 독립투사나 재야 원로들을 간혹 초대해서 예우만 갖춰주어도 금새 고통받는 서민을 잊어버리거나 오히려 감지덕지 하기도 했다. 이처럼 각 단위를 제2-3 기득권으로 만들어 줘버린 탓에 군사 독재가 끝났지만 국민에게 참다운 주권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독재 이후에도 나라를 장악하기 위해 힘을 가지고 세력을 형성하려는 집단이 계속 생겼다. 특히 이들은 독재가 무너졌음에도 주도권을 쥐기 위해 특권, 권위, 이기심, 학벌 등으로 뭉쳐서 세력을 만들고, 자리를 나눠 갖고, 편을 나눠서 싸우는 등 결국 후진적인 사회의 비열하고 야비한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입증해주었다.

7. 시민단체조차 국민을 등에 업고 주인공은 자기들이 가로채.

이제 시민단체까지 제 2, 3, 4의 기득권 대열에 가세할 정도다. 심지어 일부 시민단체들은 서로 연대해서 국민들을 주인으로 모실 것처럼 앞장섰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이 공과를 가로채서 정계로 진출하는 등 주인공이 되었다. 때문에 지금은 시민단체까지 악순환의 고리를 연장해서 반복하는 주역에 가담했다.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들은 계속 정치권을 붙들고 정치 관련 활동들을 하면서 그들에게 포문을 열고 비난과 투쟁과 시위까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시민단체의 입장이 높아져서 정치개혁에 직접 참여하거나 주도하면서 정치에 진출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정치 개혁이 실패한 책임은 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시민단체의 정치적인 태도로 본다면 「정치권은 계속 시민단체에게 비난받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며, 시민단체는 결과야 어떻든 책임은 지지 않고 비난을 되풀이할 수 있을 것이며, 기회를 틈타서 정치로 진출해서 출세할 수도 있을 것이며, 언제든지 국민을 등에 업고 대변자로 나설 수 있을 것이며, 수많은 활동해도 불구하고 책임은 정치권으로 떠넘기고 계속 유리한 입장과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며, 잠시 국민을 주인처럼 올렸다가 떡고물은 물론이고 주인공까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며, 낡은 정치인이 무너지고 서민들이 신용불량과 자살로 수없이 죽어가도 시민단체는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는 한 사람도 쫓겨나지 않을 것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계속 우위(기득권)를 확보해서 탄탄대로를 걸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시민단체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그 동안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해야 하며 정치권보다 더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나 정부나 정당처럼 말만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원인 분석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운동이 실패하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독재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남의 잘못에 빌붙어서 연명하면 안 된다.

특히 시민단체는 과거 어리석은 독재자나 대통령들처럼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16대에 이은 17대 국회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는 비난할 자격조차 없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16대 국회나 17대 국회의 정치 수준과 나라 분위기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이후로는 진솔하게 국민에게 묻고 진심으로 국민을 존중해야 한다.

Ⅲ. 왜곡ㆍ날조 이후 나타나진 국민성

1. 인생은 그렇고 그런 것이다.

"초라한 개인의 인생이 그리 대단하고 복잡할 것이 있겠냐?",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살면 되는 것 아니냐?", "덧없는 세상만사 근심 걱정 모두 털어 버리고 웃고 사는 것이 행복이고 최선이 아니겠냐?" 등 인간의 존엄성, 자신의 가치 발휘, 향후 후손들의 장래, 인류 미래에 대한 책임은 안중에 없이 마치 속물이나 철부지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자신이 왜 시계를 차고 있는지, 냉장고와 컴퓨터는 세상에 어떻게 나왔는지 등 자기 능력과 시야와 이해관계에서 한 발짝만 떨어지면 무지 속에 숨어서 이기심을 붙들어버린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나는 남에게 도움을 받지도 않으며 남을 도와주지도 않는다. 내 것을 내가 벌어서 먹고산다."라며 무지를 자신의 인간미나 삶의 철학처럼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나이가 정년에 들었지만 사회 전반에 대한 책임은커녕 천박한 음담패설이나 신소리를 지껄이면서 마치 현실을 초월한 문학가나 현인이나 시인처럼 행세하기도 한다.

2. 존엄성을 포기하고 착한 선심을 붙든다.

자신의 능력과 활동을 사회, 국가, 미래, 후손, 인류를 위해 구체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간단히 돈이나 봉사로 대신한다. 불우이웃 돕기, 장애자 돕기, 이재민 돕기, 장학금을 기부하거나 후원하고 봉사한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훨씬 월등한 능력과 자질과 경력과 경험을 가지고도 단순히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에 국한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사회나 국가나 후손이나 인류의 문제들이 마치 부질없는 짓인 것처럼 무시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나도 과거에 이런 저런 일들을 수없이 시도해보았지만 너무나 주변 여건이 열악해서 성공할 수가 없었다. 그냥 작은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사는 것이 좋다."라며 자신이 실패했던 기억을 남의 실패로 기정사실화 시켜서 단정해버린다.

3. 돈만 있으면 주인이 되고 주인공으로 대접해준다.

인류 발전과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작은 능력들(시간, 돈, 정신, 체력, 자질 등)이 서로 모여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뭉치면 존엄성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우리는 비교하고 시기하고 견제하다가 서로 위축되어버렸다.

이렇게 비교하고 질투하고 무시하다가도 거액을 가진 부자나 권력자에게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그들을 금새 주인과 주인공으로 내세워주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까지 해준다. 서로의 힘으로 돈과 권력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고 돈과 권력에 쉽게 빌붙는 사람들은 아무리 수가 많아도 역사 발전은 불가능하다. 이렇듯이 우리 국민은 모이면 존엄성이 살아나기보다 서로를 무시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싸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든 사회든 개인이 돈을 몽땅 내놓으면 나머지는 참석해서 얻어먹고 손을 들어주는 수준이었다. 이는 인간 다수가 주인으로 나서서 중심이 되고 주인공이 되어서 보람과 책임과 결실을 함께 거두지 못한 이유다. 양반과 상놈으로 나누어진 우리 역사에서도 서민들은 구경꾼에 불과했으며 돈 많은 양반에게 몽땅 몰려들어서 얻어먹었다. 이의 연장선으로 지금도 돈이 있으면 곧바로 주인이고 주인공으로 모셔주는 국민성이다.

그래서 "일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고 입만 가지고 말만 해댄다. 그러나 결코 힘을 보태지는 않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다시 말해서 거액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하면 함께 참여해서 시원하게 돈을 쓰고 받아먹겠다는 본심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사회의식이 거의 저능아 수준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존엄한 인간이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 없는 사람은 아예 일도 못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배고픔도, 민주주의 발전도, 사회 부조리도, 사회정의도, 국가 개혁도 돈이 없으면 못하거나,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수준이다.

이런 부류의 말 대로라면 우리 나라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 그렇지만 왜 돈이 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는가. 그리고 혼자 시작할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진 부자가 나서지 않으면 한국은 미래가 없다는 것이 된다. 지금까지 한국이 엉망이 되어버린 책임은 필요한 돈을 십시일반하지 않고 거액만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있다. 또한 누군가가 거액을 내놓으면 몽땅 몰려들어서 얻어 쓰려는 부패한 국민성에 책임이 있다.

4.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다.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좋아졌다.", "급속도로 발전했다." 등으로 과거와 비교시킴으로써 잘못이나 문제를 눈가림했다.

과거의 것들을 살펴서 점검하고 반성해야 함에도 갑자기 과거 빈곤을 거론함으로써 현재가 다행인 것처럼 둘러댔다.

다시 말해서 자유, 평등, 인권, 복지, 봉사, 공헌을 상상조차 못했던 과거를 열심히 반성하기보다 과거 빈곤(양적인 부분만)과 비교시킴으로써 더 이상의 발전이나 향상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나 사치나 시기상조처럼 둘러대며 안주해버렸다.

특히 이는 정권의 계속된 실정과 무능과 부패 속에서 비판을 잠재우고 칭찬까지 받는 사기나 기만 전술이기도 했다.

5. 개인적인 태도로 나아가도록 유도.

수신제가나 행복 등 전통적인 가치를 붙들었다. 이는 사회나 국가적인 문제들 앞에서 총력을 기울이기보다 개인 삶을 붙들고 주저앉은 꼴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자신을 잘 닦으면 가족을 잘 다스릴 수 있고, 가족을 잘 다스리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고, 나라를 잘 다스려야 세상을 평정할 수 있다.)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개인과 사회와 나라와 세상을 망치게 만든 것이다.

인간은 수신이든 제가든 치국이든 평천하든 평생 동안 어느 하나만 계속해도 이루기 어렵다. 또한 자기 자식 한 명도 제대로 키우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적인 현실 속에서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조금씩 반성하고 배우고 발전하는 존재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런 고사성어는 자신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수신을 하다가 그대로 삶이 끝나버리면 세상과 인류에게 엄청나게 빚만 지고 죽는 꼴이 된다.

그런데 마치 제가를 못하면 수신이 안 된 사람처럼 여겨지거나, 스스로 활발하지 못하게 되는 등 모순과 오류와 부작용과 병폐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신은 수신이고, 제가는 제가이며, 치국은 치국이다. 그런데 이를 연속적인 과정으로 연결 지음으로써 대부분 사람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궁녀를 몇 백 명에서 몇 천 명씩 거느리는 왕은 수신이 얼마나 되었는가. 또한 제가는 어떻게 했는지 명확한 기준이나 과정이나 증거가 없다. 하지만 순진한 사람일수록 이런 고사성어의 의미에 충실해서 자신을 반성하지만 뻔뻔한 사람은 자기 것을 숨긴 채 남의 약점을 물어뜯고 깎아 내린다.

우리처럼 "수신"이나 "제가"라는 원칙이나 순서나 관점조차 없는 유럽이나 미국이나 선진국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자기 자신도 잘 관리하고, 가정에도 훨씬 더 충실하다. 그리고 우리보다 수신과 제가를 훨씬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많지만 서로들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선진국과 강대국을 만들었으며 복지국가를 이뤘는지 생각해야 한다. 한마디로 동양에서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진리가 아니라 사람을 위축시키고 멍들게 만들고 서로들 통제하고 무시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나타난 효과나 결과는 엉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 중에는 지금도 배우자나 가족의 복잡한 문제나 사건에 대해서 수신이나 제가를 못한 것처럼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은 배우자와의 관계를 처리하면서 너무나 인간적이고 훌륭해서 타의 모범과 존경을 받아야 할 정도로 대단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가정이 깨졌다는 것만으로 수신과 제가가 안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 착각하며 오히려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서양인들은 수신이나 제가를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음은 물론이고 몇 번씩 이혼을 되풀이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상대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초라해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어린이들도 "나는 우리 아빠(엄마)의 몇 번째 여자(남자)에게 태어났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다.

더구나 우리가 치국이나 평천하를 대단한 영웅이나 위인처럼 생각하는 반면에 서양인들은 감히 개인이 평천하를 하겠다는 미친 짓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토록 넓고 큰 세상에서 겨우 자기 자신을 붙들고 나대는 "수신"이나, 자신이 가족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방식의 "제가"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활동하면서 활발하게 자기 존엄성을 극대화시켜서 가치를 발휘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배우자든 자녀든 똑같이 존엄하고 자유로운 존재여서 다스리고 통치하는 객체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아내나 자녀를 상대로 이렇게 말하고 태도를 취할 경우에는 나이 차별, 성차별, 존엄성 무시, 자유의 침해, 통제나 간섭으로 인식되어서 이혼은 물론이고 신고까지 당할 수도 있다.

어쨌든 국민성이 바르게 쭉 뻗어나가지 못하고 서로들 나누고 쪼개서 분열하고 차별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면 독재는 더욱 쉬워진다.

6. 현실을 무시하고 정신 세계나 초야에 묻혀.

더럽고 속된 사회나 사건들을 보면서 정의롭고 순수한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ㆍ연구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등지고 초야에 묻히거나,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현실을 외면하고 기피하면서 정신 수양과 수행을 해버릴 정도로 사회적 태도가 저능아에 가깝다. 고사성어에는 "죽림칠현", "독야청청"이 있다. 이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 아니고 왕이었던 시절에 통용되었던 것들이다.

우리 나라에는 이처럼 순수한 수행 정진을 통해 정신 세계의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너무 오래 정신을 붙들고 살아온 탓으로 사회적인 판단력과 활동력은 마치 어린이처럼 순진하고 순박하다. 하지만 의식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이는 마치 육체만을 붙들고 살아버린 것과 같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무능하고 답답해진 것이다. 따라서 산적한 국가적 문제들 앞에서 겨우 개인을 붙들고 산으로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구시대적인 잔재다. 어떤 사회에서 정상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취할수록 독재자나 부패한 사람들이 유리해진다. 이들로 인해서 다수 국민들은 더욱 무기력해지거나 위축되는 현상도 생긴다.


7. 과거를 붙들고 살도록 유도한다.

서양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활발하게 살아나서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과정이 있었다. 그들은 '현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반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나 밑받침이나 변화의 시작이라고 인식되면서부터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함없는 농경지 사회의 특성으로 인해 미래나 현재가 과거(농사 수확량)에 의해 미리 짐작되고 예측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농사를 지은 수확량에 의해 향후 일 년이 계산되어서 대소사 등의 중요한 예정이 잡혔다. 이처럼 우리는 과거가 기준인 사회와 함께 양적 개념을 기준으로 미래가 설계되고 좌우되는 방식(현 시대에서는 후진성)이 무의식 속에 세뇌되었다. 때문에 일을 도모할 때도 "평생 먹고살 것을 벌어놓지 못했다."며 주저앉는다. 이는 일을 시작하면 미래가 훨씬 좋아짐에도 이미 벌어놓은 것으로 미래를 계산하는 답답한 버릇이다.

사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때는 이런 농경지 사회의 의식구조나 사회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은 독재를 지속하기 위해 선진의식을 꺼려한 나머지 국민의식이 과거에 머물도록 방치했다.

그래서 국민의 활동 대부분이 사람이면 누구든지 할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것들을 붙들었다. 즉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결혼식, 장례식, 돌, 생일 잔치, 회갑, 칠순, 계모임 등 과거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이는 '현재'가 '미래'를 위한 계기나 디딤돌이 되어야 하는 선진국형으로 나아가지 못한 치명적인 실수였다. 때문에 우리 나라는 우수한 머리, 월등한 잠재력, 현명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과거 목표(돈벌이)와 근시안적 목표(성공, 출세)에 치중해버렸다.

심지어 특별한 자질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꼭 자신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 속에 파묻혀서 개인적인 인기나 흥미를 위주로 시간과 정신과 비용을 소모하는 사회적 낭비와 비효율이 겹치고 쌓였다.

Ⅳ. 국민끼리 비난하고 끌어내리는 야비한 국민성

1. 정의로운 사람이나 시도를 공격하는 재료

해방 후 우리 국민은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이렇게 현실에 안주해서 그럭저럭 사는 사람들은 독재와 비리에 맞서는 정의로운 사람을 외면했다. 하지만 자기 도덕성에 상처를 입지 않으려고 앞장서는 사람을 공격까지 해댈 정도로 야비해졌다.

"너 혼자 나선다고 가능하겠냐?", "세상 천지에 100% 완벽한 사회는 없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너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도 신중히 관망하고 있다", "우리 민주주의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한술에 배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는 상대방을 100% 상식에 가둬놓고 1%만 벗어나도 상식도 없는 미친놈이나 정신병자처럼 취급했다.

2. 극단적으로 속물 취급을 해버려.

"정치는 더러운 사기꾼이나 도둑놈들이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나 정치인을 극단적으로 몰아서 기피 대상이나 혐오스런 분야처럼 취급해버렸다. 이는 정치나 사회 문제를 꼼꼼히 따지고 파고들지 못하도록 마치 속물이 판치는 혐오 집단처럼 매도해서 팽개친 것이다. 이런 태도 때문에 권력자나 정치인들이 국민의 간섭과 날카로운 감시 없이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나라를 좌지우지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의로운 생각과 사명감으로 나서려는 사람에게조차 "너 같이 깨끗하고 순진한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 "너 같이 물이 맑으면 고기가 모여들지 않는다." 등으로 무지한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의로운 상대까지 포기시키고, 서로 포기하는 것이 마치 깨끗하고 현명한 처사인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포커나 고도리 판으로 유도하거나, 모여서 술판이나 벌이거나, 등산을 다니는 등 몸담은 사회 현실을 적극 외면했다.

3. 주저앉도록 만들어.

열악한 조건에서도 어렵게 나서는 사람을 도와주기보다 완벽하지 못한 이유들을 지적해서 끌어내린다.

"내용이 장황해서 지루하다.", "내용이 너무 간단하다.", "이상적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논리적이지 못하다.", "체계적이지 못하다.", "경비 조달 방안이 없다.", "그렇게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는 주변에서 힘이든, 비용이든, 시간이든, 기타 필요한 것을 함께 보태줘야 할 상황에서 상대의 부족함만을 따지고 공격하고 팽개쳐버린다. 이는 홍수나 지진이 난 동네를 목전에 두고 "너나 나의 도움만으로는 모두를 해결해 줄 수 없으니 필요 없는 짓은 하지 말자."고 돌아서는 꼴이다. 이는 주변에서 어찌할 바를 고민하며 망설이는 사람들까지 찬물을 끼얹는 짓이다.

4. 배부른 짓으로 취급해서 혼쭐나기를 바란다.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먹고사는 자기 수준으로 취급하고 설명해서 팽개치고 주변의 도움까지 차단한다. "먹고 살만하니 고생을 사서한다.", "배가 고파봐야 정신을 차린다." 등으로 평가절하 한다.

이들은 자신이 주저앉기 위해서 "과거보다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합리화했다. 그런데 상대방을 끌어내릴 때는 "조만간 고생할 것"으로 몰아 부쳤다.

Ⅴ. 동양에서의 음양(陰陽)의 이치

동양 문화 특히 우리 나라는 음양의 이치(진리)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나라에 종교나 학문이나 사상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음양(사상, 이치, 오행)이 문화, 전통, 관습, 풍습, 제도, 생활, 생로병사, 길흉화복, 수복강령, 의식, 무의식까지 깊숙이 영향을 끼쳤다. 이후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나 학문이나 사상도 우리 민족에게 깊숙이 뿌리 박혀버린 음양의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서양의 종교나 사상이 우리 나라에서는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변질되었다.

어쨌든 비뚤어진 우리 국민성은 오 천년 이상인 음양의 역사와 함께 연결되기 때문에 여기서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음과 양을 '여자와 남자', '육체와 정신', '물질과 마음'의 의미로 내용을 전개한다.

1. 동양의 음양 사상.

동양은 음과 양을 세상의 이치나 진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음과 양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식하거나, 서로 분리 가능한 별도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음과 양에 대해서 서로의 관계, 도리, 역할, 차이를 위주로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했다. 때문에 "음양"을 세상 진리로 이해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현실에서는 복잡한 양상이 전개되었다. 또한 음양이 수없이 거론되었던 것에 비해서는 음과 양에 대한 각자의 개념을 세부적으로 깊이 파고들지(과학적 사고)도 못했으며 명확하게 정리(학문적 체계)하지도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음양을 서로 구별한 다음 종속관계로 만들거나, 서로 차별해서 상하관계로 만들거나, 강약을 따져서 우열을 가려놓거나, 상대를 소유해서 독차지해버릴 정도로 빗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양이 분리되면 서로의 가치가 상실될 뿐 아니라 참다운 존재 의미조차 없어진다는 것은 철저히 무시했던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은 음양의 차이점을 찾아서 강자(남자)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거나, 상대를 소유해서 육체적인 쾌락의 수단으로 삼거나, 약자를 물건처럼 소유해서 부귀영화를 누리기에 바빴을지도 모른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한편에서는 물질과 쾌락 위주의 경박한 세태를 개탄하면서 정신세계에 유달리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2, 서양에서의 음양.

서양은 음과 양을 불가분의 일치된 개념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서양에서는 음양을 차별했던 흔적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양은 남녀차별, 어른 공경과 같이 상하를 따지는 예절과 예의, 존대 말 등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인권 차원에서 검증되지 않는 것을 문화나 전통이나 미덕이라며 억지를 쓰며 고수하는 일은 없다.

이렇게 서양은 서로 우열이나 차별이 없는 동등한 조화의 개념으로 출발했다. 그래서 문화나 의식이나 사회분위기가 음양의 차이나 관계에 붙들리지 않고 평등하고 조화되고 일치되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곧바로 연결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음양의 조화와 일치라는 월등한 관점을 통해 음양(자연 현상)과는 전혀 다른 자유, 평등, 인권, 복지라는 월등한 개념의 기초 뼈대를 뽑아냈다. 이처럼 전혀 다른 차원의 초월적 개념, 승화된 개념으로 방향을 잡음으로써 세상 속에 숨겨진 이치들을 과학적인 사고와 학문적 체계로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3. 음양이 분리된 우리 사회와 국민의식.

동양의 도인과 종교는 주로 정신을 붙들고 나댔다. 이는 정신 못지 않게 중요한 육체를 무시해버린 것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잘못에 빠진 셈이다.

이는 오른손이 왼손을 짓밟아서 머슴으로 만들어놓고 주인 노릇을 하려는 것과 같다. 이처럼 처음부터 스스로 장애를 만들어서 고통을 짊어지고 힘겹게 살기 시작했다. 때문에 마음보다 물질을, 남자보다 여자를, 정신보다 육체를 더 천하게 여겼다. 이로써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거나, 차별하거나, 종속시키거나, 간섭하거나, 지배하거나, 소유할 정도로 무지하고 답답한 의식과 문화와 사회와 인생과 세상은 이미 받아놓은 밥상이었다.

심지어 하늘로부터 받은 진리이며 선물인 인간의 성과 육체적인 쾌락을 혐오스럽게 취급했다. 이처럼 순수한 세상 이치를 존중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강요하고 억지를 부려서 마치 도리와 미덕과 예절처럼 합리화하거나 반대로 속물처럼 취급해버릴 정도였다. 다시 말해서 음양을 분리할 경우에 나타나는 눈앞의 것들(이득과 차이)을 따지거나, 취하거나, 확고한 원칙을 만들거나, 유리하게 규정하는 방향으로 빗나가버렸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편견으로 바라보고, 이기심으로 해석하고, 아집과 편의로 접근해서 억지까지 부린 셈이다. 결국 음과 양을 분리시켜서 차별함에 따른 폐단과 병폐와 죄악은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이로써 여자와 육신과 물질이 천시 어겨지고, 소유물처럼 취급되면서 존엄성이 뿌리부터 망가졌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우위를 점유했던 남자도 권위와 위엄을 붙들면서 존엄성을 잃었다.

이는 정신을 팽개치고 육체만 가지거나, 여자는 팽개치고 남자만 살려는 것과 같았다. 심지어 음양을 편견과 차별과 이기심으로 뒤범벅을 만들어놓고도 마치 대단한 학문과 문화와 전통과 사상과 인격과 수양과 진리와 철학이 담긴 것처럼 미화했다. 또한 이것이 수천 년간씩이나 국민에게 고스란히 먹혀들고 우수성과 아름다움으로 미화될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었다.

이후 수많은 문제와 부작용이 발생되었음에도 오히려 변명하고 합리화해버린 나머지 모순과 위선과 기만과 가식과 형식과 관행이 서로 뒤범벅되어버렸다. 결국 수천 년 동안 극심한 차별이 당연히 행해지고, 차별이 유전자처럼 세뇌되고, 차별에 의해 고통이 심해지고, 부작용과 병폐가 얽히고 설키면서 국민의 삶과 나라 운명까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4. 모든 인간이 조물주보다 존엄하고 위대한 존재.

정신과 육체는 조화되어야 하며 제대로 일치할수록 가치를 발휘한다. 하지만 따로 분리되면 아무 의미도 없거나 차라리 없는 만도 못하다. 세상의 이치든 조물주의 진리든 인간이 편의대로 쪼개고 분리하고 차별하는 것은 큰 죄악이 된다.

설사 조물주가 최초에 세상과 인간을 만들었더라도 이후 세상에서는 인간이 신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이며 상위 개념이다. 그리고 이는 지구 존재 이후, 인류 역사 이래 그대로 사실이었고 현실이었다. 다시 말해서 조물주가 세상에서 상위개념이라면 세상사나 인간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했거나, 모두 알아서 주도했어야 한다. 또한 조물주가 인간을 상대로 그토록 많은 이야기나 이치를 풀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한마디로 세상에서는 인간이 엄청난 조물주의 작품과 의미를 겨우 음과 양으로 양분시킬 정도로 건방질 수도 있고, 조화와 일치를 통해 엄청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창출해낼 수도 있는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인간이 세상 이치를 분리시키거나 함께 존재하는 평등한 이치(인간)를 편의대로 분리하고 차별해서 관계와 형태를 규정해놓고 강요하고 통제하고 간섭하는 것은 세상 진리를 거스르는 짓이다. 이는 자연의 이치나 무한한 우주 섭리를 소수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인위적으로 끄집고 가는 꼴이다.

따라서 진리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치우쳐서 의식, 문화, 권위, 특권, 계급, 차별, 비교, 경쟁, 소유, 독점이 연속적으로 만들어진다. 결국 이런 사회는 효율성과 합리성은 상상조차 못한 채 소모적이고 위선적인 어리석음에 빠져서 계속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는 세상 만물과 현상들에 담긴 경이로운 이치를 향해서 구성원들이 진지한 태도로 협력하기보다 어리석은 인간끼리 도토리 키 재기하면서 대충 살고 노는 꼴이다.

지금도 우리 국민은 심오한 이치 속에 몸담고 살면서도 세상을 진지한 태도로 경외하기보다 서로의 이해 관계나 유행이나 흥미에 빠져있다. 때문에 주제 파악과 주체 파악과 개념 정립이 없이 경박한 생각과 언행, 경박한 관계와 이익, 경박한 계산과 처세, 경박한 유행과 생활로 일관하고 있다. 이처럼 기나긴 일생을 자신이 타고난 능력 이하의 일들로 막연히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음양이라는 우주 진리를 겉모양만 붙들고 서로 비교하고 차별해서 강자의 편의나 주도권을 노려왔다.

따라서 음은 양을, 양은 음을 적극 존중하고 존경해야 한다. 그러면 음양의 조화와 일치를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와 보람과 가치가 창출된다. 그리고 계속 얻어진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존중과 존경을 되풀이하면 차원 높은 이치를 계속 찾아가게 된다. 특히 정신과 육체, 마음과 물질, 남자와 여자가 조화와 균형 속에 일치되어야만 현실과 이상, 정신과 물질, 너와 내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현실과 미래를 추구하고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Ⅵ. 존엄성 상실에 대한 요약

1. 존엄성을 인식조차 하기 힘든 이유

인간은 자기 몸뚱이 하나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게 태어난다. 이후 반복되는 실수와 실패와 시행착오를 진지하고 순수하게 감당해야만 점차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존엄성이 인식되려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문화, 관행, 전통, 예절, 종교, 사상, 교육에 의해서 인간의 사고력이 방해를 받지 않아야 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해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때까지는 생각과 행위와 생활과 인생이 최대한 자유로워야 한다. 만일 관행적인 것들에게 지장을 받아버리면 금새 선입견과 편견과 비교와 열등의식으로 연결되어버린다.

그래서 계급, 신분, 서열, 예절, 예의, 도리, 미덕이 강요되었던 과거일수록 존엄성은 인식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현대에서도 국민의 존엄성이 살아날 수 있는 여건을 제대로 갖춘 나라들이 많지는 않다. 특히 종교 국가들은 진리나 신의 뜻이 횡행함으로써 인간 중심의 존엄성은 싹도 트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후진국에서는 오래 굳어진 관행이나 관습에 의해 존엄성은 인식조차 불가능할 정도다. 또한 독재 국가는 독재자의 의도적이고 지능적인 책략에 의해 국민성이 심하게 왜곡, 굴절, 말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외에도 많은 국가들에서 국민의식이 정지된 채 엉망이 되어 있다.

설사 독재자의 핍박과 통제에서 벗어났더라도 존엄성이 적극적으로 인식ㆍ보장ㆍ존중ㆍ발휘되지 못하면 자유, 평등, 인권, 복지 등의 질적 가치나 공통 목표를 이뤄낼 수가 없다. 결국 존엄성을 분명하게 발휘하지 못한 국민들은 기나긴 일생을 욕구충족과 생존경쟁이라는 본능적 수준에 머문 채 이를 위한 이익과 계산과 분쟁과 비교와 경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2. 독재자가 존엄성을 말살하는 이유.

독재자는 자기 국민들이 선진 의식을 갖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탄압과 박해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런 독재자는 그래도 순진한 편이다. 악랄한 독재자는 독재권력을 더욱 완전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계획적으로 존엄성(생각, 표현, 활동 등)을 통제하고 말살한다. 그리고 교묘한 전략전술과 무자비하고 잔악한 짓을 지능적으로 저지른다.

왜냐하면 존엄성을 짓밟아놓으면 국민이 가진 능력(시간, 비용, 정신, 활동력)들이 결집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분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의 국민들은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이라는 일차원적 수준에 머물러서 살게 된다. 특히 서민들은 먹고사는 본능 수준으로 전락되어버린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적인 사람들이 선(善)과 같이 감정적인 내면 정서를 붙들거나, 추상적인 종교를 찾거나, 비현실적인 진리에 삶의 의미나 자기 가치를 부여하거나, 아예 침묵해버린다.

이는 부정한 사람들이 마음껏 설쳐대고 살도록 사회를 고스란히 넘겨 줘버린 꼴이다. 이런 후진국들 중에는 희망이 전혀 없이 곧바로 망국으로 기울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손해나 피곤을 무릅쓰고 앞장서기보다 전통적인 의식구조로 되돌아 가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비해 충분히 먹고살면서도 여전히 생계유지, 호의호식, 입신양명, 부귀영화를 쫓아버린다. 때문에 이런 사회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종 비리와 사건과 혼란과 죄악 속에서 주인이 없이 구경꾼들만 우왕좌왕하는 꼴이 된다.

우리 역시 왕권주의에서 생겨난 천박하고 후진적인 국민성이 일제치하와 6.25와 독재를 통해 대물림되면서 계속 악화되고 있다. 심지어 평화로운 현대에서도 백성(민족)이 같은 백성(민족)을 무시하고 고문하고 차별하고 공격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개혁으로 무장한 채 세대를 차별하는 반인륜적이고 반민족적인 행위까지 저질렀으며 그럭저럭 넘겨졌다.

3. 현대에서 더욱 심하게 망가진 국민의 존엄성.

군사독재 시절에는 국민의 적극적인 활동을 계획적으로 방해하고, 잠재력 발휘를 억제했으며, 국민을 무지 속에 가두기 위한 시도들이 극치에 달했다. 물론 이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의 고질적인 현상이다. 여기에는 어용학자와 어용언론인들이 대거 동원된다.

어용들은 국민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함에 따라 마음껏 활개친다. 다시 말해서 무지에 갇힌 국민을 상대로 어용들까지 가세해서 제 2의 영역(제 2, 3의 연쇄적 기득권 층)을 차지해서 노른자위를 확보하는 지능적인 시도들이 생겨난다. 이들이 상황과 사건과 인연에 따라 저질렀던 술수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의 교활한 술수는 원리는 단순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복잡해서 그들조차 헷갈릴 정도로 서로 꼬이고 얽혀버렸다.

이는 지능에 의존해서 전략과 술수로 살다가 스스로 발등 찍히는 꼴이 되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독재의 횡포나 군사문화가 병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질적인 분석이나 연구나 대안이 없었다.

특히 우리 국민의 영리한 지능은 서로를 차별하고 방해하고 이용하고 끌어내리는 쪽으로 발달했다. 물론 자기 직장에서는 지능이 제대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나 국가나 역사나 후손에게는 이기적인 잔머리에 불과했다. 때문에 우수한 학력과 학벌을 가지고도 대통령이 되었거나, 국민에게 존경을 받은 인물은 없었다.

독재는 어느 시대나 국가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가정한다면 당연히 독재는 문제다. 하지만 독재를 당하고도 다양한 분석이나 대안이나 연구조차 하지 않은 국민도 잘못이다. 다시 말해서 세월이 지나면 독재자는 물론 어용들과 지식인과 일반 국민까지 차례로 책임이 있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칼을 추켜들거나, 우위를 점유하거나, 비난과 공격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시 연속적인 비극을 연출해냈다. 이는 너무 오래 심하게 굽어지고 변질되고 왜곡되고 조작된 국민성에 머문 채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물론 이처럼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반성ㆍ변화ㆍ발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미 망가진 존엄성으로 인해 후진국의 전형적인 현상(문화, 전통, 관습, 국민성 등)들이 다시 방해 요소가 된다. 이는 많은 고통과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가서는 특정 계급이나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버린다.

특히 사람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용서해야 하지만 책임전가와 잘못을 따지면서 충돌해버린다. 심지어 과거 문화, 전통, 미덕, 민족을 운운하며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이것들 때문에 더욱 싸우고 분열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사실 우리 문화와 전통과 민족정신은 이미 조작되고 변질되고 왜곡되었다. 때문에 체계적인 사상이나 개념 정립은 불가능할 정도로 내용이 부실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독자적인 사상, 철학, 학문, 영역으로 자리를 잡지도 못한 채 수많은 부작용과 혼란과 병폐의 원인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마치 훌륭한 문화, 미덕, 전통인 것처럼 위장해서 이름만 빌려 썼다.

심지어 우리 나라에도 악습과 폐습이 예절, 예의, 존대 말, 존칭, 어른공경, 효도 등 미덕에 붙어서 그럴듯하게 위장한 채 기생해왔다. 이러한 위장과 착각과 기만적인 모순과 죄악을 여기서 모두 거론할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국민은 밑바닥에 똑같은 불구덩이 화덕을 놓아둔 채 한 솥 단지 안에서 이율배반과 위선과 모순에 갇혀서 서로를 들들 볶아대고 비난하고 끌어내리다가 지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비웃고 살고 있다.

4. 뼈를 깎는 반성이 최우선되어야.

우리 사회와 문화와 국민성을 피상적으로만 살펴보면 어느 민족에 비해서도 월등하게 보인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이처럼 엉망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처럼 수신을, 제가를, 수양을, 해탈을, 영생을, 인격을, 예절을, 미덕을, 중용을, 겸양을 중시여기고 강조하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개인적으로 추구해온 목표들이 국가 사회에 과연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연구나 설명은 없다.

비단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후진국 국민들은 서로의 잘못을 따질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이들은 독재자,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재벌, 역사, 문화, 시대, 국민성 등에 골고루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반성, 용서, 포용, 협력하지 않고 싸움판을 벌여서 더욱 혼란에 빠진다.

우리 역시 국민의 존엄성이 침체되면서 서로 얽히고 꼬였다. 그래서 사회 분위기와 국민의식이 억제, 위축, 통제, 상실, 말살되었다. 결국 우리 국민성은 산산이 나눠지고 쪼개져서 마치 모래알처럼 분산된 상태다. 따라서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소수를 다수 국민이 감당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이런 억압과 통제에서 벗어난 지금에도 화합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이성을 잃고 흥분하고 비난하거나, 서로 분열해서 싸우고 있다.

이처럼 존엄성이 인식되지 못하면 순진하고 순박한 사람이 대단한 것처럼 착각되기도 한다. 심지어 주도권 장악을 위해 세대까지 쪼개서 차별하고 무시하는 등 반인륜적이고 반민족적인 짓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위기와 망국을 자처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때문에 이제는 막연한 반성이 아니라 뼈를 깎는 각오로 스스로를 버리고 바꾸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해결 방법이 없다. 따라서 수신을, 제가를, 영생을, 해탈을, 인격을, 예절을, 미덕을 적극적으로 버려야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관점들이 보여지고 확보되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다.

Ⅶ. 우리 국민의 사회의식 수준 요약

1. 상처투성인 환부가 아물 날이 없는 국민들

원래 인간은 성선설과 성악설에도 불구하고 순진하고 순박한 존재다. 그러나 선악과 같은 기초 정서가 존엄성으로 연결되지 못한 탓에 우리 국민은 곳곳에서 상처를 받았으며 피투성이인 역사와 고통스런 인생으로 지속되었다. 이처럼 숱한 차별과 고픈 배를 움켜쥐느라 엄청난 만행들을 관행처럼 여기며 젖어 살다가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는 같은 시대에 몸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함께 보고 듣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생각해서 아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실천에는 심한 장애가 생겼다. 그리고 막연히 과거를 되풀이해온 나머지 사고력의 장애와 국가적인 병폐로 이어지면서 효율성과 합리성이 상실되어버렸다.

특히 복잡한 세상사를 단지 아는 것으로 그쳐버리면 의식이나 사물이나 상황이 명료해질 수 없게 된다. 매사가 명료하지 못하면 자신감과 확신을 가질 수도 없다. 이처럼 우리는 현대에서조차 우리 문제를 우리 힘으로 풀지 못할 정도로 답답해졌다. 뿐만 아니라 지역갈등도 해결하지 못한 채 덮어두고 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과거사 정리"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이를 거론할 자격조차 없다. 왜냐하면 "과거사 정리"는커녕 더욱 야만적인 "세대 차별과 갈등"까지 조장하고 묵과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믿을 사람도 분야도 없는 것 같다. 때문에 서로 싸워서 부스럼만 키울 일이 아니라 역사를 나라를 국민이 껴안고 포용해야 한다. 국민이 포용하지 못하면 가장 큰 고통과 불행도 국민에게 돌아온다. 왜냐하면 그들이 싸우는 것은 노리는 것과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계속 망가지고 무너지고 피멍이 들면서 고통과 불행을 고스란히 도맡을 수밖에 없다.

미안하게도 한국 역사에는 백성이나 서민을 위해주고 끝까지 책임졌던 왕도, 정책도, 휴머니즘도 없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우리 국민이 주체이고 주인공이고 동시에 중심이 되지 못하면 또 누군가는, 어떤 분야인가는, 어떤 계층인가는 피해와 고통을 떠맡을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국민은 과거 노예나 천민이나 상놈에 의한 역 심리(현상)부터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조상들이 당한 차별과 억눌림이 역으로 발산해서 하급자에게 대우받고, 약자에게 대접받고 살았던 의식을 다시 반대로 바꿔야 한다. 심지어 지식인들이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한 채 곳곳에서 대우를 받고 지냈다.

이제 우리 국민도 장애자와 노약자는 책임을 지고, 청소년과 부녀자는 보호하고, 불특정 다수와는 친구처럼 협력하고, 동종동업의 상대와는 건전하고 당당하게 경쟁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2. 정치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

오 천년 역사는 그렇다고 치자. 우리 현대사에서 벌써 8-9명의 대통령이 지나갔다. 그럼 그들은 처음부터 개혁을 포기했을까? 아니면 하고 싶었지만 실패했을까? 특히 세상의 모든 독재자들이 선진국을 실현하는 방법을 알면서도 독재를 저질렀을까? 그럼 지금 정치인은 정치개혁과 국가개혁을 알면서도 싸움하며 국민에게 욕을 벌고 있을까?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그렇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잘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똑같기 때문이다. 일반 서민과 정치인의 차이가 정말 대단한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같은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이미 환경, 사회, 문화, 역사, 교육이 똑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부모와 생김새와 가정 환경과 태어난 지역 등 약간의 차이 뿐이다.

그나마 선진국은 개인이 타고난 다양성과 자질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주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과 기질이 엄청나게 크게 벌어진다. 그러나 후진국은 단순하게 짜여진 문화나 전통이나 관행이나 종교의 틀에 맞추어지기 때문에 다양성과 자질이 인정되지 않는다. 때문에 후진국의 사람들은 지극히 단순하고 나약하고 무지해서 인구가 많을 뿐 특별히 서로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정치는 이미 수많은 인물들이 실패했다. 그런데도 자기 자신은 잘할 것으로 생각하는 상투적인 정치인이 너무나 많다. 심지어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남을 비난하고 공격해서 긁어내릴 정도로 당당하게 나서고 있다.

특히 이후 정치 지도자로 나설 사람들은 작가로서 자기가 새롭게 만든 일들, 감독자로서 무대 배경과 인물과 장치 등을 새롭게 바꿀 일들, 주인공으로서 나라 전반을 다시 살리고 방향을 유도하고 합리적인 철학과 정책으로 설득할 일들을 준비해야 한다.

3. 지식과 지위에 관계없이 양심이 살아있는 국민들.

지식인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비단 우리 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어쨌든 요즘은 지식인이든 지성인이든 없어졌다는 것이 대부분의 견해다.

심지어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를 미리 예상하고 안내하고 방안을 준비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사건이 터지면 비로소 거들며 나선다. 이는 분야의 지식을 가진 전문가라고 본다면 오히려 애정을 가진 일반인보다 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혹자는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다운 전문가, 양식을 갖춘 전문가는 없다고 혹독하게 평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존경받는 인물들은 평소에 애정을 가지고 각종 문제를 적극 끌어안고 스스로 고민하고 연구하고 열정을 쏟아서 엄청난 자기 집중력을 발휘해준 사람들이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고민하고 반성도 한다. 그러나 보통은 고통과 위기와 절망과 죽음이 예상되면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 가버린다.

그러나 존경받는 인물은 다수가 좌절하고 포기할 때 위험과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위기나 죽음 앞에서도 평범한 삶을 적극적으로 포기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자기 목적이나 가치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서 지식인이든 지성인이든 우리는 그들이 쌓아놓은 어느 한 부분에서 몸담고 살고 있다.

그런데 지식인들이 사회적 책임과 공헌과 애정은 그들에 비교할 수조차 없이 미약하면서도 호의호식하고 대접받는 것은 그들의 수십 수백 배나 월등하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수십 수백 배는 배은망덕한 것과 같다. 심지어 우리 지식인 중에는 약간만 피곤하고 짜증나고 손해고 입장이 난처하고 자존심만 상해도 곧바로 이기심으로 돌아버리기도 한다.

우리 지식인들의 공통점은 아직도 자기 자신, 상대방, 사회, 나라, 문화, 사건 등에 대해서 옳으냐 그르냐, 잘했냐 잘못했냐, 좋으냐 나쁘냐, 이익이냐 손해냐 등의 원론적인 관점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높은 지식에 비하면 일반 국민이나 차이가 없거나 봉사정신과 포괄적인 애정 면에서는 일반 서민보다도 못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지위나 신분을 떠나서 애정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도저히 시작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권이나 정부나 대통령이 뭔가를 하겠다고 말하거나 나서더라도 그 내용과 결과는 굳이 보고 듣지 않아도 뻔하다. 때문에 양심이 살아있는 순수하고 순박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다시 한번 피곤과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4. 스스로 환부를 드러내서 상처를 치유할 용기와 의지를 가져야.

인간은 세상에서 수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생각과는 달리 고통과 불행과 외로움에서 곧바로 상처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통과 불행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상처를 받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이처럼 사랑, 인연, 행복, 관계, 믿음, 친구, 연인 등 인생에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 것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심지어 배신감과 실의와 외로움에 빠져서 자살할 정도로 심하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와 같이 평소의 기대, 신뢰, 희망, 미래가 무너지면 상처를 입는다.

둘째,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로부터다.

종교, 문화, 관습, 전통, 예절, 미덕, 도덕, 윤리 등으로부터 상처를 입는다. 다시 말해서 최초 인간은 서로의 편의를 위해 이런 것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인간보다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이들에게 억눌려 지내거나, 통제를 당하거나, 지나치게 간섭을 받거나, 차별과 지배까지 당한다.

이는 인간이 그 어떤 것보다 최고 상위개념이 되어야 함에도 중간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어떤 목적인가에 의해서 빗나가버린 때문이다. 사실 위에서처럼 인간은 개인과 개인과의 접촉이나 관계에서만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인류는 인위적인 것들로부터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받으면서 서로 죄악을 저지르고, 다른 분야나 후손에게 전파시키고, 다시 씨앗을 뿌려서 대물림시켜왔다. 특히 이런 현상은 후진국에서 심하게 자행되어 왔다. 우리 나라 역시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각종 "예절과 예의와 미덕 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보다 상위개념으로 올라서서 오히려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유를 억누르고, 평등을 해치고, 인권을 무시하고 탄압하는 구실로 사용되는 등 엄청난 비극을 연출해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오래 속고 살면서 수없이 당하기만 했다. 이미 우리 조상들이 당했으며 우리가 당하고 살았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후손들이 유행과 개방의 물결 속에서 혼동과 혼란을 겪으며 부작용을 치르게 된다. 물론 너무 오래 묵혀진 문제들이어서 우리가 완전하게 해결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상당 부분 해낼 수 있으며 얼마든지 바꿔놓을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시작해주는 것이 후손에 대한, 인류 미래에 대한, 조상이 치른 희생과 고통에 대한 도리다. 따라서 이는 주저하고 망설일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이미 의무나 마찬가지다. 또한 이를 해결한다면 우리가 후진국들에게 훌륭한 교훈과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당하게 인류 미래의 중심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나설 수도 있고 모두가 따라 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 국민이 인류 역사로부터 받아놓은 소임을 기피할 때는 보통으로 심각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상처를 받으면 오히려 사랑이든, 사람이든, 세상이든 두려워하거나 피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오히려 진심이나 진실을 저버리게 된다. 또한 가식과 형식을 취하거나 아예 거짓을 꾸며대거나 일찍 좌절해서 포기하고 눈치를 살피는 등 활발하고 자율적이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명랑하고 쾌활한 모습을 잃어버린다. 때문에 이런 사회는 차원 높은 형이상학으로 나아가지 못함에 따라 서로의 잘못을 따져서 물고 늘어지거나, 수많은 편견과 아집과 이기심을 붙들고 서로 분열하고 비난하고 싸움하며 혼란을 치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이런 사회와 세상과 인생을 끝도 없이 겪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후진국들은 이런 수준에 머문 채 존엄성은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만이 아니라 후진국들의 비참한 역사, 사회, 문화, 전통, 종교, 의식, 관행, 관습이었다. 때문에 특히 서민들이 수없이 상처받고 멍들고 나약해지고 사악해진 원인이며 결과이고 대가다.

Ⅷ. 맺음말

1. 우리 국민의 반성과 결단이 해결의 관건

원래 획기적이고 진취적인 일은 개인이나 소수가 먼저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불완전한 조건과 전후 상황들 속에서 고민에 빠진다. 이렇게 앞장선 사람들은 주변의 동의나 칭찬이나 지원을 기대하지 못한 채 스스로 판단해서 자발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공감대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에 고생을 죽도록 하거나, 설상가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계기만 만들어놓고 죽기도 한다. 어쨌든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아름다운 일들은 누가 억지로 강요하거나, 이해관계를 계산하거나, 인간관계를 따져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선진국 사람들에게는 강요나 의무나 억지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독재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 자기 양심에 따라 스스로 참여하고, 스스럼없이 의견과 이견을 제시해서 가부나 찬반을 정하고, 각자 역할과 스스로 분담할 몫을 내놓는다.

여기서 대단한 점은 그들은 처음에는 자기 이해관계와 다양한 입장과 주변과의 인간관계를 신중히 고려한다. 하지만 갈수록 이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서 결론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한번 일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공정하게 진행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의 잘못으로 실정과 무능과 부정이 되풀이되고, 혼란과 갈등과 대립과 분열이 심해졌으며, 위기가 현실로 닥쳤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의 똑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일제시대나 독재 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전이나 그 이후인 현대에서도 왜곡된 국민성으로 인해 고통스런 삼절(좌절, 굴절, 변절)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왜곡되어버린 후진성이 그대로 자기 의식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현대에서는 외국의 침략도 없었고, 전쟁과 굶주림도 없었으며, 강대국에 의한 입김도 사라졌다. 그런데도 서로가 물어뜯어서 긁어내리는 비열한 국민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반성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무작정 일본, 독재자, 정치인, 미국, 앞 세대까지 차별하고 비난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우리의 후진적인 의식수준과 비열한 국민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물론 여기서 아무리 지적해본들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고통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시 언급하지만 우리 국민은 너와 나를 구분해서 차별할 필요조차 없이 민주주의의 구성원으로서나 인간적인 면에서 자질 이하이며 자격 미달이다.

심지어 우리는 서로를 도토리 키 재기해서 비난하고 공격해서 책임전가해서 분열해놓고도 당당하게 민족정신과 인권을 거론할 정도로 인간적으로 열등해졌다. 하지만 지금도 국민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태도다.

지금 우리 국민은 감옥에 수감 중인 죄수나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와 다름없을 정도로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대책이 없다. 비록 몸은 묶여있지만 양심적인 죄수나 환자들 중에는 진심으로 반성하며 엉망인 현실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2. 왜 대한민국이 역사적 소임을 부여받은 나라인가.

현재까지의 인류 역사를 모두 합쳐서 가장 압축되고 함축되어 세상을 대변할만한 대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 속에서의 최악으로 얼룩진 상황(전쟁, 빈곤, 무지, 차별, 독재, 투쟁)부터 첨단의 현대 과학문명(민주주의, 산업화, 첨단 정보화)까지를 최단 기간에 거쳤던 지구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나라다.

특히 놀랍고도 괄목할만한 사실은 지구상에서 지극히 좁은 땅덩어리임에도 어느 하나의 사상, 문화, 종교, 이념에 편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이토록 좁은 나라지만 세상의 모든 사상, 문화, 종교, 이념, 제도들이 거침없이 들어와서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주의 심오한 이치가 담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당장은 뼈아픈 반성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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