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품리왕에게 시비가 있었는데, 그 시비가 임신했다. 상(相) 보는 자가 점을 쳐 말하기를, '귀하게 되어 왕이 될 것입니다'고 하자 왕은 '내 아들이 아니니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했다. 시비(侍婢)가 말하기를 '무슨 이상한 기운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더니 임신한 것입니다'했다. 드디어 아이를 낳자 왕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하여 돼지우리에 내다 버리니 돼지가 입김을 불어 보호해 주고, 마구간에 내다 버리니 말이 젖을 먹여서 죽지 않게 해 주었다. 이 아이가 자라서 마침내 부여(扶餘)의 왕이 되었다."(이것은 동명제東明帝가 졸본부여卒本扶餘의 왕이 된 것을 말한 것이다. 이 졸본부여卒本扶餘는 역시 북부여北扶餘의 딴 도읍이다. 때문에 부여왕扶餘王이라 이른 것이다. 영품리寧稟離는 부루왕夫婁王의 다른 칭호이다) ."
중국 사료도 이와 비슷한 사료가 존재한다. 물론 북리니, 고리국니 혹은 탁리국이라는 형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주몽설화와 동명 설화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한 부류는 주몽설화와 동명 설화는 같은 설화인데, 동명 설화는 주몽설화를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한부류는 별개의 부류라고 표현한다. 전자는 이병도를 시작해서, 홍기문, 장주근등이며, 또 한부류는 김정학, 이홍직, 나경수, 홍성우등인데, 현재 교과서에는 전자의 설을 정설로 채택하여 동명성왕=주몽이라는 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705년에 만들어진 <천남생묘지>의 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전해진다.
"동명은 기에 감촉되어 호천을 건너서 나라를 열었고, 주몽은 태양에 잉태하여, 패수에 임하여 도읍을 열었다."
즉 동명과 주몽은 별개의 존재임을 말해주는 셈이다.
이런 주장은 조선시대에도 "동명이 나라를 세우고, 주몽이 이어받았다."는 시가 나왔을 정도였다. 문제는 현재 존재하는 책들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정설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정설로 채택할뿐, 부여의 건국신화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부여가 고구려의 뿌리라는 점을 볼때 이병도를 비롯한 주류 학자들이 주장한 전자의 학설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근데 문제는 수서 <백제전>에 나오는 기록이다. "동명이 고려국 출신" 즉, 고구려 출신이라는 것이다. 동명은 분명 부여를 세웠다고 백제전에 기록되어있는데, 만약 <수서>의 기록대로 한다면 고구려는 부여의 북쪽에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부여의 동명 설화를 기록한 <논형>, <위략>,<수신기>,<후한서>,<양서>등의 남하설을 뒤집은 이 책은 곧 후학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두우의 <통전>은 이런 고민을 분국설로 풀이한다. 즉 고구려가 나누어져, 북쪽과 남쪽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혀 근거없는 풀이이지만, 수서의 기록이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고구려의 주몽설화가 부여의 동명설화를 베낀 것인가? 아니면 부여의 동명설화가 고구려의 주몽설화를 베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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