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1인 2역을 맡아 광해와 하선을 연기하면서 하선을 통해 엄격한 궁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왕의 남자'의 일상에서 카리스마 강하면서 이상(理想)을 찾아가는 군주(君主)의 모습과 코믹한 웃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어린 기미(氣味)상궁에 갖는 인간적인 연민(憐憫)과 그녀의 죽음을 통해 군주의 인간미를 돋보이게 하고, 대동법(大同法)‘과 ‘호패법(號牌法)’을 실시해 백성들의 삶을 염려하고, 당시 조정에 숭명배청(崇明排淸)이 만연했던, 명, 청 교체기의 군사, 외교적 관계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등 근래 광해군을 재평가하는 조류와 함께 폭군이 아닌 ‘군주다운 군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해군(이혼 李琿, 1575-1641)’은 선조와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둘째 아들로 선조 25년인 1592년 세자에 책봉되어 16년 후인 1608년에 왕위에 오른 인물로 서모인 인목대비(仁穆王后)가 낳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하고, 급기야 대비까지 폐위시켜 '폐모살제(廢母殺弟)'와 형인 임해군 사사 등 패륜자의 꼬리에 황음무도(荒淫無道)했다는 조선의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59년 사학자 이병도가 광해군을 ‘탁월한 와교 전문가’로 부각시키면서 1980년대부터 광해군이 구습을 타파하고 피폐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내정을 충실해 했고,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현명하게 적응하려 했던 개혁(改革)의 군주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궁궐을 중축하면서 백성의 원성과 국고를 탕진했으며, 이로 인해 공명첩을 마구 발행해 신분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율곡이 제안한 대동법을 즉위 초인 1608년에 시범적으로 경기도에 시행했으나, 지주들이 소작농들에게 대동세까지 얹어서 걷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본격적으로 시행되는데는 100년이 걸리기도 했다.

남인과 서인,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진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의 왕권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해 정치정인 파행을 걷는 등 국정수행의 난맥을 보였으며, 죄인들의 추국에는 왕이 직접 친국하는 것이 역대 왕 중에서 많다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라는 점이며, 결국 광해군 15년 3월(1623년), ‘폐모살제’라는 서인(西人)들의 명분에 왕권을 지키지 못하고 반정군 1500여명에게 왕위에서 쫓겨나는 군주가 되고 말았다.
류승룡이 맡았던 허균(許均)도 선조 2년인 1569년에 동인의 영수 초당 허엽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허엽과 허성, 허봉, 허난설헌 등 형제자매들은 문장에 뛰어나 후대에 ‘허씨 5문장가’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써 자신의 소망을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투영시킨 인물로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지고 ‘성소부부고’에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주장한 그는 시대의 희생물이 되어 새남터의 이슬로 사라졌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개봉 20여일과 추석연휴를 만나 관객 600만을 기록하고 있는 팩션 사극으로 평민 ‘하선’을 통해 카리스마의 군주와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등 ‘진정한 군주의 역할이 무엇인가?’ 메세지를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하겠으며, 한편으로는 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이라는 사실도 동시에 일깨워 주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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