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의 독립운동가 이희승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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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의 독립운동가 이희승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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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말살정책에 저항한 우리말 지킴이

▲ 2012년 10월 독립운동가 이희승 선생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광복회(회장 박유철)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이희승(李熙昇·1897.4.28~1989.11.27)선생을 2012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0월 한 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희승 선생은 1897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1910년 관립 한성외국어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1930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학 및 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전문대학 교수가 되어 국어와 국문학을 가르쳤다.

선생은 1930년 조선어학회에 입회하여 간사와 간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어학회는 10여명의 국문학자가 1921년 조직한 조선어연구회로 시작됐다.

조선어학회는 ‘한글맞춤법통일안’제정,기관지인‘한글’간행, ‘조선어 표준말 사정’공표,‘외래어 표기법 통일안’과 ‘조선어음 로마자 표기법’발표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말 수호와 국어의 통일과 보급운동을 지속해온 학회이다.

일제가 1938년부터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금지하는 등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을 강화하던 중, 1942년 함경남도 홍원군 영생고등여학교 재학생의 일기에 반일적인 내용이 있다고 하여 교사 정태진(丁泰鎭)을 조사했다.

이후  정태진 선생이‘조선어사전’편찬에 참가한 것을 빌미로 조선어학회를 민족운동 단체로 지목하고 이희승 선생을 비롯한 조선어학회 회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하였다. 이 사건(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선생은 함흥형무소에서 해방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광복 후에도 국어에 대한 연구활동을 계속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고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10월12일 이희승 선생의 후손인 이은경 선생과 관련 학회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전시개막식과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조선어학회에서 1929년에서 1942년까지 13년 동안 작성한 원고의 최종 수정본으로, 국가 지정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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