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혁규 전 경남지사 ⓒ 중앙선관위^^^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총리로 임명한다고 하는 이야기 때문에 요즘 정가가 시끄럽다. 한나라당은 당을 버리고 떠난 인사를 총리로 임명한다고 하는 것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가운데 흔히 개혁 지향적이라고 하는 이들은 김혁규 전 지사의 몇 가지 문제를 들어 김혁규 총리 임명에 반대하고 있다.

논란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난 지금 상황을 살펴보면 김혁규 총리 임명에 반대하는 여론은 그리 높지 않다. 한나라당의 '김혁규 불가론'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나름대로 한나라당이 선전하긴 했지만 아직 한나라당이 진정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 국민들이 쌓고 있는 그 벽의 그림자는 한나라당 위에 어둡게 드리우고 있으며 그 덕택에 김혁규 전 지사는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형국이다.

'김혁규 총리' 어떤 파장을 불러 올 것인가

김혁규 총리 임명은 참여정부의 동진정책 출발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의 근거지 영남지역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상대적으로 장악하기 쉬운 부산·경남지역을 장악하겠다고 하는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이제 앞으로 있을 조각 등 최고 임명권자의 의중이 미칠 수 있는 정부 인사에서 열린우리당 측 영남인사들은 상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역시 영남에서 열린우리당 지지 세를 넓히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영남 출신 인사들이 대거 상당한 권력을 갖게 되는 주요 직위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이 되면 영남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열린우리당 측 영남 인사들과 교류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나라당이 영남 지역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남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열성적인 한나라당 지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영남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관계에 민감할 수 밖 에 없는 그들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호남 지역주의, 흘러간 이슈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어느 언론에서 호남 지역주의는 사라졌고 영남에서만 지역주의가 남아 한국 정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논리가 제법 설득력을 갖고 대중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호남은 상대적으로 의석 수가 영남에 비해 적다. 이런 호남에서 민주당은 전남에서 5개 의석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현 대통령이 영남 출신이고 아직까지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명되는 정동영 전 의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지역 색이 옅은 인사들이 열린우리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호남의 열린우리당 선택이 일방적인 지역주의적 선택의 결과라고 밀어붙이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운 사실은 호남 지역주의를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흘러간 이슈가 되어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영남 지역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호남 지역주의는 문제가 안되냐고 반문해 봐야 자리에서 핀잔만 듣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영남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지는 호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상대적으로 한나라당보다는 여전히 분배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는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선택한 것이 과거의 지역주의 식 투표 행태를 떠나 이념과 현실적 이해관계에 맞는 냉정한 선택을 했다고 분석하는 것도 나름의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영남 지역주의는 한나라당이 인정을 하건 안 하건, 한나라당에 불리하건 혹은 이득이 되건 우리 사회의 중심 이슈가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이슈를 선점하고 끌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헤게모니를 열린우리당 지지세력이 쥐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혹 어떤 이는 그것이 방송과 일부 언론의 편파보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이제 더 이상 작은 문제를 큰 문제의 중대한 원인인 것 마냥 지적하고 흥분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두도록 하자.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강력한 헤게모니 어디서 왔나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강력한 헤게모니는 바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서부터 그들끼리 만든 사회에서 서로 담론을 주고받으며 형성되어 왔다. 권위주의 정권에 반항했던 젊은이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했고 그 문화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의해 생성된 사회 불만 계층에게 광범위하게 파급되면서 우리 사회의 저변으로 급속히 확대된 것이다.

바로 그런 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라온 세대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일부 언론을 장악했으며 우리 사회 문화계 전반을 장악하고 무사안일과 권위주의, 강압과 오만에 젖었던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들을 오늘날 때리고 있는 것이다.

방송의 문제점을 아무리 지적해봐야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지지세력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이상은 그 비판이 확실한 설득력을 갖기도 힘들뿐더러 대중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최근 한나라당의 개혁 움직임이 일단 그 내용이 어떻든 반가운 것이며 앞으로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김혁규 총리'로 대표되는 열린우리당의 동진정책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한나라당의 지역기반은 흔들릴 것이며 열린우리당의 지역기반은 강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혁규 총리로 상징되는 열린우리당의 '보수' 색채는 더욱 강해질 것이며 영남 보수 유권자들에게 있어 열린우리당 지지선택에 한 줌의 부담으로 남아있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문제는 차츰 희석되어 갈 것이다.

노무현· 정동영 정국 운영의 키를 확실히 쥐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전 의원은 정국 운영의 키를 확실히 쥐었다. 열린우리당이 계속 보수의 깃발을 들고 우로 우로 전진한다고 해서 열린우리당의 기존 지지층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프라이즈에서 '개혁'성향 네티즌과 '실용'성향 네티즌이 충돌한다고 해서 그들의 표심이 쉽게 민주노동당으로 달아나고, 한나라당으로 달라붙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한나라당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그들이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며 민주노동당은 그들의 대안이 되기는 아직도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마 열린우리당 지지자의 주류가 '사회주의 좌파'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해가 안 될지 모르겠으나 열린우리당 지지자의 주류와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주류는 서로 다른 이념적 방향을 갖고 있고 그것이 지금 열린우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보수적 경제정책과 인사정책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열린우리당이 '물구나무를 서도' 지지자들이 대부분 변함없이 열린우리당을 선택할 것으로 믿어지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지지기반 잠식을 위한 열린우리당의 동진정책은 그 힘과 속도를 더해 계속 될 것이다.

물론 열린우리당 내에서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발은 치열한 내부 논쟁을 거쳐 한나라당 토벌을 위한 단합의 형태로 승화될 것이고 거기서 생성된 무서운 에너지는 한나라당의 숨골을 꿰뚫는 강력한 창끝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칼자루 쥔 열린우리당과 칼끝을 쥐고 있는 한나라당

지금 한나라당이 선택할 바는 '김혁규 총리' 논란에서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미련없이 손 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혁규 총리 인사 청문회와 같은 검증절차를 게을리 하라는 말은 아니다.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검증을 할 수 있다면 제대로 해보되 별로 유권자들에게 먹히지도 않을 '배신자 불가론' 따위를 내세워 다시금 강력한 여론과 맞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별로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없는 논지를 내세워 대통령과 각을 세워봐야 국정의 발목을 잡고 사사건건 대통령을 방해하는 '쿠데타 세력'이라는 악담만 듣게 될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영리하기 짝이 없는 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한나라당의 결함과 현실을 너무도 뻔히 알고 있다. 한나라당이 반발할 수 밖 에 없는 카드를 한나라당 정면에 제시하고 한나라당이 자멸의 길로 빠져들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은 김혁규 총리 카드란 이슈를 꺼내들고 또 다시 이슈를 선점하고 국민들의 관심사를 지금의 힘든 경제상황과 같은 것에서 김혁규 총리 문제로 돌려놓으려는 치밀한 정치 책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찬반논쟁의 형태로 서프라이즈와 같은 조직이 기능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서프라이즈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은 한나라당의 길을 말없이 걷는 것이다. 국민의 의사가 만족할 때까지 한나라당은 한나라당 내부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이슈 전략에 말려들어가면 결국 상처입는 것은 한나라당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