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넘은 31년사랑 드라마
53세 베트남 노총각과 54세 북한 노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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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넘은 31년사랑 드라마
53세 베트남 노총각과 54세 북한 노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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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동안 기다릴수 있었던 이유는 육체적인 사랑이 아니었다'

(하노이=연합뉴스) 권쾌현 특파원=지난 13일 하노이 시립운동장옆 체육회관에서는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있는 매우 의미있는 결혼식이 열렸다. 하객 1천여 명이 모인가운데 진행된 결혼식의 주인공들은 하노이 사이클연맹 회장인 53세의 베트남 노총각 팜응옥카잉 씨와 54세의 북한 노처녀 리영희 씨.

이들은 50대의 나이에 남녀 모두 초혼이라는 점과 북한과 베트남 남녀의 첫 공식 결혼식이라는 점만으로도 신문 사회면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했다. 이들의 결혼식엔 예상대로 베트남과 북한의 정부 주요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인근 도로를 두시간여 동안 혼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이 국경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 드라마 속에 31년의 긴세월만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양국 정부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았다. 황빈장 베트남 체육위원회 부위원장의 주례로 진행된 결혼식에서 50대의 두 신혼부부는 31년간의 꿈이 이루어진데 따른 행복감과 주위의 고마움을 억누르지 못한 채 시종 눈물만 흘리며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71년 7월 22세의 젊은 베트남 유학생과 23세의 북한 처녀는 흥남 비료공장의 압축기 귀퉁이에서 처음 만났다. 눈으로만 인사를 나눈지 꼭 31년 5개월만에 온갖 난관을 뿌리치고 꽃을 피운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답다못해 숭고하기까지했다.

베트남 아인어이(젊은 남자의 호칭)와 북한 에미나이의 눈물젖은 사랑드라마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시작됐다. 호치민 베트남 주석과 김일성 북한 주석의 약속에 따라 국비유학생으로 함흥화학공업대에 유학을 간 카잉 씨가 71년 7월 실습장으로 선정된 흥남비료공장에서 공원으로 일하던 리영희 씨를 만났다.

흥남화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65년 이 공장에 취직해 일하던 리씨는 처음 본 외국인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고 첫 만남을 회고한다. '첫눈에 반했다'는 카잉 씨는 이후 1개월마다 실습장이 옮겨지고 리씨의 근무시간이 주야를 거듭해 한달에 두세번 밖에 만날수가 없었던데다 그것도 남의 눈을 의식해 눈인사밖에 할 수가 없었으나 서로 사랑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카잉씨는 엄격한 외국인의 체재 규정과 바쁜 일정 속에서도 리씨를 보고싶은 일념에 몰래 리씨의 집을 찾았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카잉씨는 어느듯 1년반 기간의 일정이 끝나고 귀국이 결정돼 기약없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리씨의 주소만을 들고 베트남으로 돌아온 카잉씨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편지를 교환했다. 그러나 허전한 마음은 채울 수가 없어 76년 상사들과 북한대사관을 졸라 함흥 출장을 받아냈고 꿈같은 재회를 실현할 수있었다. 다시 헤어져야만 했던 두 남녀는 기약없이 헤어졌던 73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만나 반드시 결혼하자고 언약했다.

곧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되던 두 사람의 결혼은 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두나라의 관계가 악화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졌고 그나마 끊이지않던 서신 교환도 91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협상이 시작되면서 단절되고 말았다.

91년 북한대사관에 요청했던 결혼승인 요청도 묵살됐고 93년에는 '리영희씨가 시집을갔다'는 가슴아픈 통보가 카잉씨의 대문에 걸렸다. 93년 응웬만컴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할 당시 다시 결혼 요청을 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결혼했다'는 똑같은 전갈뿐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던 카잉씨는 지난 5월 천득렁 주석의 평양 방문 때 다시한번 이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 측도 더 이를 묵살하지 못한 채 '결혼했다'던 리씨가 아직도 미혼으로 함흥에서 살며 두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리씨는 5년전 같이 살던 어머니가 사망하자 몸이 약해져 계속 근무하던 흥남 비료공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드디어 지난 8월 25일 리씨와 카잉씨는 동시에 두 사람의 결혼이 승인됐다는 양국 정부의 통보를 받았다. 10월 1일 하노이역에서 기차를 탄 카잉씨는 4박5일간의 기차 여행의 피로도 잊은 채 10월 6일 평양에 도착해 북한측 주선으로 10월 17일 이제는 노인이 다 된 리씨를 평양시내 청년호텔에서 만날 수 있었다.

31년간의 세월을 기다린 두 사람은 더 기다림이 의미가 없다는듯 다시 만난지 하루만인 18일 북한 주재 도티화(여) 베트남 대사의 준비로 간이 결혼식을 대사관에서 올려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었다. 10월 27일 기차편으로 하노이에 도착한 신혼부부는 한달여의 준비 끝에 지난 13일 정식 결혼식을 치름으로써 31년의 세월과 국경을 넘은 사랑 드라마를 마무리하게 됐다.

카잉씨는 노인이 다 된 부인을 아직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31년 동안 기다릴수 있었던 이유는 육체적인 사랑이 아니었다'는 말로 일축하고 그 동안 혼자 타던 오토바이에 부인을 태우고 신바람나는 드라이브를 즐기고있다. (끝) 2002/12/2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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