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으로 살을 대신하고 새끼로 힘줄을 대신해
사람 형상 하고 우두커니 서 있네
심장도 없고 뱃속도 텅 비어
이 넓은 천지간에 보도 듣도 않는 허수아비여
앎이 없으니 싸울 일이 전혀 없겠구나
| ^^^▲ 돌계단과 스님 ⓒ 법연원^^^ | ||
성운(成運)은 16세기 때 남명 조식 등과 어깨를 겨루던 조선 중기 "처사형 사림"(處士型 士林)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성운은 성리학의 이론탐구보다 현실적 실천을 강조한 대표적 학파인 남명학파의 원조 조식과 가장 친했던 벗으로, 그의 학풍과 처세관도 조식과 많이 닮았다.
성운은 특히 1545년 <을사사화>로 그의 형 성우(成遇)가 희생되자 벼슬길을 통한 현실정치 참여를 포기하고 속리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산수를 벗삼아 자신을 수양하고, 현실정치에는 늘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입지를 끝까지 지켜 나간 인물이다.
또한 성운이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속리산 일대는 남명 조식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이 시절이 하수상 할 때마다 모여 현실정치의 잘못을 비판하고 토론하는 주요한 지역이 되었다. 그와 더불어 성운의 대나무 같이 곧고, 소나무처럼 늘 푸른 학풍은 이 일대를 중심으로 뻗어나갔다.
"짚으로 살을 대신하고 새끼로 힘줄을 대신해/사람 형상 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시의 정치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속리산에 은거한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 오죽했으면 "심장도 없고 뱃속도 텅" 빈 허수아비에 자신의 모습을 비유했겠는가. 또한 오죽했으면 "앎이 없으니 싸울 일도 전혀 없"다고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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