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와 정도전- 고려의 충신과 조선의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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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와 정도전- 고려의 충신과 조선의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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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이야기 - 글 학술 마을지기 박종국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수 있으랴.

이 시조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정몽주의 <단심가>이다. 이 시조를 읽고서, 조선 17대 임금인 효종은 눈물을 흘렸다고 할 정도이니, 대단한 명시다. 정몽주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수하인 조영규에게 죽긴 했지만, 그를 죽였던 태종은 그에게 영의정 벼슬을 추증하였고, 정몽주의 손자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자, 세조가 특별히 구제하여 살려주었을만큼 정몽주에 대한 조선의 추앙은 상당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조선의 창업자 정도전은 이와 달리, 변절자, 기회주의자라는 오명을 남겼다. 왜 그랬을까?

정몽주는 경북 영천 출신이고, 정도전은 경북 봉화출신이었다. 그리고 이색에게 같이 수학한 친구들이었다. 이색의 제자들로는 정몽주를 시작해, 권근, 이숭인등이 있었다. 그들은 공민왕이 죽자, 우왕이 공민왕의 친명정책을 버리고, 친원정책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여, 정몽주, 이숭인, 권근, 정몽주등 신진사대부 전부가 귀양가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정몽주가 귀양가면서, 정도전에게 <맹자>를 주었는데, <맹자>에는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고, 택군(신하가 임금을 선택할 수 있다.)논리가 담겨있어서, 조선에서는 금서까지 될 정도였다. 이런 <맹자>를 정몽주가 정도전에게 주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몽주는 1381년, 일본의 왜구 침략 근절를 위해 일본으로 떠났고, 정도전은 그로부터 3,4년후에 귀양에서 풀려, 이성계를 찾아갔다.

이성계는 함경북도 함흥출신으로, 이자춘의 아들이었다.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당시, 아버지와 함께, 이를 내응하여, 고려땅으로 수복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그뒤 홍건적의 난, 김용의 난을 진압하고, 한반도에 쳐들어온 왜구들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워, 국민으로부터 일약 영웅 대접을 받았다. 더구나 황산대첩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활솜씨(활 하나로 적장 10를 잡았다는 믿기 어려운 일화)는 민중의 경외를 받을 만했다.

이런 이성계에게 정도전은 다가갔다. 정도전은 이때부터 이성계의 책사가 되었고, 정도전은 이때부터 이성계의 밑에서, 위화도 회군이후 이성계 집권이후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 조정은 또한번 피바람이 몰아쳤다. 최영 사망이후, 조민수와 이성계의 권력다툼이 시작되었다. 우왕 폐위이후, 창왕을 세운 조민수는 이성계에 맞써 대항했으나, 이성계의 경제 책사 조준의 과전법에 의하여, 결국 조민수는 귀양가게 되었고, 거기서 병사한다.^

1390년, 우왕 복위 사건이 일어난다. 위화도 회군 이후 폐위되었던 우왕이 일부 반 이성계파에게 이성계를 제거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이때 한 사람이 이것을 이성계에게 밀고함에 따라, 우왕은 죽임을 당하고, 창왕도 죽임을 당했다. 공양왕이 즉위하였는데, 이때부터 정도전과 정몽주는 같은 길을 가던 동지에서, 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정도전과 정몽주의 대립은 창왕 폐위 후 누구를 왕위로 세울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친이성계파는 이성계를 왕위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몽주는 이에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신종의 7대손인 공양왕이 즉위했는데, 이때 정몽주는 친이성계파의 주장을 정도전이 사주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 정몽주파와 이성계파의 대결은 계속되었다. 그뒤 1392년 세자가 명나라에서 돌아오게 되자, 이성계가 황주에서 사냥을 하던중, 낙마하여, 떨어지게 되어, 조정에 출사하지 못했다. 이 기회를 노린 정몽주는 대간들을 시켜서, 친 이성계파인 조준, 정도전등을 탄핵하였다. 정도전을 탄핵한 명목은 "가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원래 정운경이라는 사람의 아들이지만, 어머니는 관비출신이었다. 그래서, 일종의 열등감도 존재하였다. 비록 이색 문하에서 배우긴 했지만, 세상의 멸시와 천대로 결국 혁명사상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친이성계파가 귀양가게 되자, 다급해진 이성계는 조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정몽주의 마지막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근데 정몽주는 위화도 회군 이후, 우왕, 창왕 폐위를 찬성하고, 공양왕 즉위를 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성계파의 논리대로 우왕, 창왕이 신돈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래서 폐가입진(거짓을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논리에 찬성한 것인가?

어쨌든 이방원이 그를 자신의 편에 세우기 위해, 정몽주의 뜻을 떠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엉켜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렇게 얽히어 백년까지 누리고져.

라고 하지만, 정몽주는 단심가로써 이것을 뿌리치고, 고려 멸망 앞둔 자신의 심정을 노래했다.

결국 이방원은 그의 속뜻을 알아차리고, 결국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선죽교 앞에서, 정몽주는 이방원에 의해 피살당하고, 역신이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로부터 3개월뒤 공양왕은 폐위당하고 조선은 세워지게 된다.

정도전은 정몽주 죽음이후 귀양이 풀려, 조선 창업에 앞장섰으며, 조선 법제, 정치, 경제등 조선의 기초가 되는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쳐가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한양천도도 그가 앞장섰으며, 경복궁이 지어지자, 경복궁이라는 이름부터 시작해서, 근정전, 사정전 같은 모든 이름이 그에 의하여, 지어졌다.

경북궁이라는 이름은 시경 대아편에 있는 구절로 ""임에게 영원토록 큰 복을 내리소서"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정도전이 지은<조선 경국전>은 <경국대전>의 기초가 되었을 정도로 조선의 창업주는 태조가 아니라, 정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인물이 왜 조선 역사에서 왜 비난을 받고 있을까? 그건 바로 태조의 의중에 따라, 막내 아들 방석을 왕위에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맹자의 사상따라 왕도정치를 꿈꾸었고, 왕도정치 실현을 위해서라면, 왕권보다 신권이 더 강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방원(나중에 태종이 됨)은 정도전과 반대로, 왕권이 더 강해야 믿었기 때문에, 정도전과 방원과의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정도전은 세자 방석을 왕위에 세우는 과정에서, 왕위 계승 싸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세자의 형들을 지방으로 보낼 것을 요청한다. 그뿐만 아니라, 요동정벌 추진을 한다는 명목으로, 왕자들의 사병을 모두 회수할려고 해, 왕자들의 반발을 사게 되고, 왕자들의 반격으로, 정도전은 물론이고, 세자 방석까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왕자의 난이다.

정도전은 결국 죽임을 당했고, 그의 역사적 업적은 무시된 채, 그를 변절자, 역적, 기회주의자로 낙인찍고 말았다. 그리고 이숭인, 이색등의 죽음을 그의 사주로 인한 것으로 왜곡시켰다(정도전보다 태종의 사주일 가능성이 더 많다) 정도전은 죽은뒤 500년이 지나서야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이후에서야 시호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업적이 되찾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정몽주라면, 고려의 충신이고, 단심가의 지은이라는 것을 알지만, 경복궁을 들리면, 항상 보게 되는 경복궁 현판이나, 사정전, 근정전등의 현판을 쓴 사람이 바로 정도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정몽주는 조선 이후 모든 왕들에게 칭송을 받았지만, 정도전은 지금까지도 잊혀진 존재이다. 이제는 그를 위해 명예를 회복해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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