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리더십 화두..역사를 행간으로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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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리더십 화두..역사를 행간으로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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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 시간 버리고 이웃나라의 표준시간 사용

신 봉 승/극작가.예술원 회원

ⓒ 뉴스타운

요즘의 화두는 단연 세종대왕이다. 어디를 가나 정치지도자들이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배운다면 나라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화두가 난무하고 있다.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실상은 표피적인 세종대왕만 거론될 뿐 그 분의 참 모습은 잘 들어나고 있질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 원인은 역사를 문자로만 읽은 데서 오는 편견에서 기인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역사는 행간(行間)을 읽어야 숨겨진 뒷 배경을 찾아낼 수가 있다. 또 행간을 읽음으로써 오늘의 현실과 대비할 수가 있다. 역사가 지나간 시대의 기록만이 아니라 미래로 이어지는 맥락이라는 사실은 다가오는 미래가 이미 역사에 거론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종실록은 그런 점에서 리더십을 공부하는 보전(寶典)이지만 그 또한 행간을 읽지 않고는 담겨진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 중의 하나가 세종이 지녔던 국가 자주성의 확립이다. 국가 자주성이라는 말은 얼핏 당연한 것 같지만 당시의 사정은 그렇지가 않았다.

 

당시의 조선은 명나라의 속방(屬邦)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사건건 명나라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그들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한양(조선)에 살면서 북경(명나라)의 시간에 의지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에 세종은 당시대 최고의 과학자들인 이순지(李純之), 김담(金淡) 등을 불러 우리에게 맞는 일력(日曆:양력)과 월력(月曆:음력)을 계산하게 하였다. 국가 자주정신의 발현이 아닐 수 없다. 명나라의 시간이라는 것은 곧 북경(北京)의 시간을 말한다. 북경의 시간은 한양의 시간보다 2시간 늦다. 한양에 살면서 북경의 시간에 매이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세종은 원나라의 「수지역법(授時曆法)」, 명나라의 「통궤역법(通軌曆法)」, 심지어 아라비아의 「회회역경통경(回回曆經通經」까지를 참고하여 한양을 기준으로 하는 우리역법을 만들게 함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세종시대에 아라비아의 역법을 상고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양에 아라비라 사람(回回人)들이 수백 명이 귀화하여 살고 있었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한 세종의 따뜻한 마음 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천문서적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의 완성은 15세기 조선 천문학의 수준을 가늠하는 쾌저가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는 탄젠트, 코사인이 없었지만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들은 탄젠트, 코사인, 루트를 응용하여 칠정산내외편의 내용을 점검하였다. 그랬더니 1년이 365일 점찍고 2425 등 소수점 이하 6자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후일에 제정되는 훈민정음(訓民正音)과 함께 국가 자주정신을 함양한 위업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사정은 어떤가.

 

아직도 우리는 일본의 수도 동경의 시간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식민지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했던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동경과 서울의 시차가 30분이나 되는 데도 우리는 지금도 동경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자존심의 차원이 아니라 독립국가의 체면으로도 말이 되지를 않는다.

 

세계 10대 교역국의 처지로 제나라의 시간을 버리고 이웃나라의 표준시간에 따라 교역, 계약, 납품은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 출퇴근 시간까지를 동경을 기준으로 한 남의 나라의 시간에 맞추고 있다. 이러고도 민족의 자주성, 자존심을 입에 담을 수가 있을까.

 

세종은 위대하다. 왜 우리는 세종의 리더십을 배워야 하는가. 온전한 독립국가의 처지도 아니면서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하여 우리만의 시간을 찾아서 쓰게 하였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우리만의 글자를 새로 만들어 쓰면서도 상국(上國)이나 다름이 없었던 명나라와의 아무 마찰도 일으키지 않은 리더십이야 말로 국가의 자주성과 자존심을 살펴낸 세종의 위업이 아니고 무엇인가.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만, 그 핵심을 찾아 읽어내는 능력을 아직도 태부족인 것은 역사를 행간으로 읽을 줄 모르는 데서 기인되는 아쉬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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