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그 벌은 나무에서도 꿀을 딴당게
스크롤 이동 상태바
여그 벌은 나무에서도 꿀을 딴당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성 가인 벌꿀마을

 
   
  ^^^▲ 가인마을에서 꿀을 따는 모습
ⓒ 장성군^^^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사랑과 죽음을 노래한 시인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그래, 시인 릴케는 꼭 지금과 같은 가을날, 자신을 찾아온 이집트의 여자 친구를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렸다지? 그리고 그 가시에 찔린 것이 병뿌리가 되어 결국 패혈증으로 그해 겨울에 죽었다지?

아침 저녁으로 목덜미와 겨드랑이가 선들선들하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닭살처럼 돋는다. 몸이 찌뿌드드하다. 한약이라도 한 재 지어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꿀떡 같다. 어느새 따뜻한 온돌방과 군밤 그리고 햇살 잘 드는 시골의 그 담벼락, 틈틈히 돌멩이가 채곡채곡 박힌 그 바알간 흙담벼락이 그리워진다.

그래, 올 가을에는 한약을 먹지 말고 저 먼 기억 속으로 떠내려가 있는 그 정겨운 시골마을... 바람이 살짝 불면 시뻘건 단풍잎이 핏방울처럼 뚝뚝 떨어지는 그곳... 골골에 노을이 질 때면 파아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연이어 달콤한 밥 익는 내음이 풍기는 그곳...

그래, 어머니의 달디단 젖내 같은 내음이 풍기는 그 마을... 단풍의 대명사, 내장산 백양사 곁에 다람쥐처럼 입을 옹송거리고 있는 그 마을... 만약 백양사가 벌집이라면 그 벌집 곁에 꿀벌처럼 붙어 있는 그 마을... 그래, 올 가을에는 그 가인마을로 낙엽처럼 뒹굴어 가서 그 달콤한 토종꿀을 먹어보자.

꿀... 그래,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이 자연을 너무나 잘 이용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즈음에는 꿀도 자연 벌꿀과 인공 벌꿀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가을에 우리가 보약 대신 먹으려고 하는 그 꿀은 내장산 골골이 피어난 아름다운 꽃에서 빨아들인, 오래 묵은 나무의 수액에서 빨아낸 그 천연 벌꿀이다.

벌꿀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자연에서 얻은 최초의 식품이었다.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 제신들의 식량이 꿀이라고 여겼고, 로마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이 바로 꿀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 이후 꿀의 사용은 점점 늘어나 약용으로 쓰이기도 했고 사체의 방부제나 미라 제작, 과실의 보존 등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벌꿀을 채집하여 약품이나 아주 귀한 식품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경파괴로 인하여 야생벌의 수효가 줄어들어 야생 벌꿀이 몹시 귀해졌다. 반면, 아예 사람이 벌을 길러 꿀을 채집하는 인공 벌꿀, 그러니까 양봉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인공 벌꿀을 어찌 토종 벌꿀에 비길 수가 있으랴.

단풍도 보고 토종 벌이 내장산의 맛이란 맛을 다 모아놓은 토종 꿀맛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내장산국립공원의 남쪽 자락에 들어선 백양사를 찾아야 한다. 피빛 단풍에 젖고 잇는 백양사... 백제 무왕 때 여환이 창건했다는 백양사에 이르면 매표소가 도깨비처럼 떡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그 매표소를 지나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한 곳에 산으로 올라가는, 아니 천당으로 올라가는 비밀통로 같은 조그마한 오솔길이 하나 보인다.

그래, 바로 그 비밀통로가 토종 벌꿀로 이름 난 가인마을로 올라가는 길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속한 이 가인마을은 요즈음 귀해진 토종벌만큼이나 적은 가구, 16가구가 백암산과 사자봉, 가인봉을 잇는 산줄기 아래 마치 둥지에 담긴 산새알처럼 알록달록 몸을 부비며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토종 벌꿀을 기르기 시작한 역사는 이곳 마을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을이 백양사 내에 있는 마을이어서 토종 벌꿀 말고는 다른 생업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아 그 역사가 아주 오래 됐을 것이라는 추측만 윙윙거리는 벌소리처럼 무성할 뿐이다.

"토종꿀을 채집하는 곳이 어디 여그 뿐만은 아니지라이~. 허지만 우리 마을은 사방 십리 안쪽이 국립공원 구역 안이라 농사를 못 지응께~ 농약 오염이나 이런기 없지라이~ ."

그랬다. 토종 벌도 벌이지만 이 마을에서는 벌꿀을 치는 일 외에는 마땅히 먹고 살 만큼 지을 만한 농사가 없다. 농사가 없다 보니 농약 또한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토종벌 역시도 무공해 꿀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인마을의 뒤에 드러누운 산자락에는 30여 년이 넘는 단풍나무와 참나무,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밤나무, 벚나무 등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벌이 꽃에서만 꿀을 따는 것은 아닝게~ 바로 여그 산에 있는 나무들에서도 꿀을 딴당게. 그랑께 여그 꿀이 더 달고 맛이 좋지라이~ 글고 여그 토종꿀은 고혈압과 저혈압에도 좋당게. 동짓달 추위 이기는데도 그만이고~."

가인마을의 토종꿀 채취는 낙엽이 지는 11월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듬해 음력 4월부터 6월까지는 분봉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래, 분봉작업을 하는 바로 이때가 가장 벌이 많아진단다. 이때가 되면 벌집 1통에 대략 1천마리 내외이던 토종 벌이 수만 마리로 불어난단다. 이 마을 1집에서 보유한 벌집 수는 대략 50통 정도. 그러니까 마을 전체를 합치면 대략 7백통 정도다.

"삿갓 같이 생긴 저 걸 유지뱅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여그 사람들이 위를 뱅뱅 틀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지라이~ 쩌그 쩌그도 볼거리라고 여그 오는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쌌는당게."

이 마을 사람들은 토종 벌꿀을 백화점 같은 곳에는 납품하지 않는다. 늘 아는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판매한다. 그것은 이 마을에서 채집되는 토종 벌꿀의 양도 그리 많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벌통을 늘릴 수도 없다.

 

 
   
  ^^^▲ 백양사 단풍
ⓒ 장성군^^^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수입도 변변치 않다. 이 마을 사람들이 토종 벌을 키워 1가구당 얻는 수입은 1년에 대략 350만원 정도다. 달로 따지자면 30만원 정도이니, 자식공부는커녕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다. 그래서 봄에는 고로쇠 수액도 채취하여 팔고, 요즈음 같은 단풍철에는 민박손님도 받는다.

토종꿀의 가격은 1되에 8만원에서 10만원 정도다. 1근은 2만원 정도 하는데, 주문을 하면 택배료는 주민들이 부담한다. 또 요즈음 이 마을에 가면 벌통을 그대로 잘라 꿀을 내리는 과정도 구경할 수가 있다.

그래, 올 가을에는 아이들과 함께 내장산에서 단내를 풍기고 있는 가인마을을 찾아가 보자. 붉은 물감 뚜둑! 뚜둑! 흘리고 서 있는 백양사를 바라보며, 토종 꿀을 한수저 듬뿍 입에 물어보자. 달착지근하게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말 그대로 꿀맛으로 녹아내리는 토종 꿀을 먹으며, 지난 여름 내내 땀으로 흘려버렸던 건강을 되찾아 보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