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가들은 역사인식을 수반하는 의식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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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작가들은 역사인식을 수반하는 의식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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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의 고질병

ⓒ 뉴스타운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역사는 사람에 의해 흘러간다. 마찬가 지로 소설이나 드라마도 사람을 그리는 작업이고, 사람이 잘 그려지는 것을 전제로 그 성패가 좌우된다.

비근한 예로 박정희나 전두환을 온전하게 그려놓지 않으면 5·16이나 5·18은 왜곡되게 마련이이다. 역사 드라마도 이와 같아서 사람을 바로 그려놓질 않으면 특정 시대를 왜곡하게 된다.

KBS 2TV에서 방송되고 있는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보한재 신숙주 부자를 사실에 의거하지 않고 멋대로 그렸다하여 고령신씨 문중에서 방송국을 항의방문하여 신숙주 부자에 대한 날조부분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불응하면 법적조처를 취하겠다고 통고하였으나, 방송국 관계자는 <이 드라마는 상상력에 기초한 픽션으로 두 분의 명예를 훼손하려한 것은 아니다. 다만 흥미에 역점을 두다보니 본의 아니게 고령 신씨 선조가 등장한 것인데 좀 봐줄 수는 없겠느냐>고 대답한 모양이다.

드라마 제작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의 대답으로는 무지의 수준을 넘어서는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고령 신씨 문중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원에 제소하였다는 소식이다.

소설이나 드라마가 픽션(虛構)을 전제로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지만, 정사(正史-實錄)의 기록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픽션의 영역을 벗어난 무책임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이 같은 일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닌데도 한 결 같이 픽션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생각은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단세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의 생각으로 글을 쓰고 드라마를 만들 작정인지 같은 작가의 처지면서도 한심하기 그지 없다.

보한재 신숙주(1417~1475)는 조선 개국초 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에 이르는 다섯 임금을 지근에서 섬기면서 모든 벼슬자라를 두루 섭렵하였고, 특히 성종 즉위 초에는 원상(院相)의 막중한 소임을 다함으로써 자칫 혼란을 부를 수도 있었던 사회여건을 안정화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만큼 당대의 경세가이며 석학이다,

그가 24세 때인 1442년에 서장관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쪽의 지리, 풍속, 언어 등을 기록한 명저「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의 내용 중 「유구국방언(硫球國方言)」은 오늘의 일본국 언어학자들이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정도의 기록이라면 그의 언어학적인 소양도 발군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기에 세종을 도아 <훈민정음>창제에 공헌할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보한재 신숙주가 배신자로 매도되고 폄하되는 것이 사학자가 아니라 두 사람의 유명작가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월탄 박종화의 「목 매이는 여자」가 보한재 신숙주를 배신자처럼 그려 놓았던 것은 그 당시만 해도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정사사료에는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탓으로 위의 두 분 대가도 야사의 집대성이나 다름이 없는 「연려실기술」에만 의지하였던 탓에 정사의 내용이 소설에 반영되기란 거의 불가능하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은 국역이 되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더구나 인터넷으로도 검색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런 판국에 정사의 기록이 무시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가들의 공부가 부족하고, 사전 준비가 부실하여서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이며 또한 방송국의 PD들의 검증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시스템의 문제로 지적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어찌 「공주의 남자」뿐이겠는가.

「무사 백동수」도 제목대로 무사 백동수의 검술 위주의 창작스토리를 그려 가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가 있을 것인데, 거기에 뒤주에 갇혀서 죽은 사도세자를 끼어들게 하는 것으로 정사사실을 왜곡하게 되었다면 작가의 상상력이나 역사인식을 의심받아도 변명할 여기자 없어진다.

새로 시작한 「뿌리 깊은 나무」를 보면서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세종시대 32년이야말로 조선왕조 519년 중에서도 보석과 같이 빛나는 시기이고, 한글의 창제는 세종의 자랑이자 우리 민족의 프라이드로 간직해야할 빛나는 업적인데, 여기에 픽션임을 빙자하여 살인사건과 같은 음모를 흥미위주로 그려간다면 그 성패를 떠나서 가지고 있는 보물에 먹칠을 하게 되고, 또 상처를 내게 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은 자명하다.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에게는 전가의 보도처럼 뽑아드는 픽션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인식을 수반하는 작가의식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주었으면 좋겠다.

신 봉 승/극작가.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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